
이미지_양승규
- Date: 2025. 02. 05 – 03. 01
- Place: 다이브 서울
- Location: 서울 광진구 천호대로 625, 지하
- Hours: 월 – 토, 13:00 – 18:00
- Contact: @dive.seoul.art

며칠째 그 문은 열리지 않았다. 다소 비극적이긴 했으나, 특정한 옳고 그름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이 앞장서 내게 다가왔기에 얼마간 안도했다.
‘한 떨기 세상에서 나는 외롭고 깊은 때를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무뚝뚝한 인상의 사물들을 마주하며 하루를 사납게 보내다, 문득 이를 깨닫곤 한다. 그럴 때마다 밖엔 새카만 비가 세차게 내리고, 이를 상아색 창가에서 바라보는 광경이 머릿속에 우거진다. 그 숲은 하염없이 불타다가도 먹빛 나무들로 금세 빽빽해진다. 검은 억수 아래서 많은 생각을 해왔다.
“일말의 가능성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도 있고, 해의 고장 난 뒷면에 대한 사실을 넌지시 전할 수도 있다. 굳이 네가 아니라도 혼잣말로 빚은 군중이 지금도 주변에 넘실거리기에 별수 없다는 듯 그들에게 무엇이든 말한다면, 무릇 대화란 결국 완결을 지향할 수밖에.”
바닥에 물이 흘렀다. 그 흔적은 사무적이었다. 머지않아 사라질까. 어째 확신할 수가 없다.
밖은 심하게 구름 낀 하늘이었다가 구름 한 점 없는 무일푼이 되곤 했다. 두 상태는 긴 시간을 두고 교대할 때도 있었지만, 몇 분 안 되는 사이에 여러 번 바뀌기도 했다. 그렇게 한밤중이나 대낮에도 낮과 밤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일상을 두 뼘 정도 위로 올리거나 아래로 내린 듯했다. 어쨌든 원래 자리는 아닌 것이다.
낮도 밤도 아닌 때 검은 나비 무를 수렴한다.


시작은 알 수 없지만, 줄곧 해오던 일이었다. 오늘 나는 근면으로부터 얼마쯤 떨어져 있을까.
예사로움에 심지를 붙여 그곳에 불씨를 심은 사람은 그였다고 생각한다.
그와 알고 지낸 지 4개월가량 되었다. 첫 만남을 지금도 뚜렷하게 기억하는 건 당시의 소음과 그의 인상착의가 무척 잘 어울렸기 때문이다. 회색빛으로 점철된 시기에 유일하게 원색적인 순간이었다.
메마른 가지가 몸집에 과분한 소리를 내며 두 동강 났다. 이는 잡다한 생각들을 불러일으켰으며, 그것들 각각은 보통 하나의 입을 가졌지만, 걔 중에서 유별나게 입이 세 개인 녀석도 있었다(입이 둘인 경우는 없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예의 생각들은 그들의 총합보다 많은 입으로 소리를 생산했다. 공장지대 부근에 사는 사람이 소음에 노출되듯 나 또한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회상한다. 공해에 시달리며 차츰 초점을 잃어갈 때 말쑥하게 차려입는 그가 보였다.
통이 큰 바지는 견고한 성벽처럼 미동조차 없었다. 바짓단은 기묘했으며 두 발을 빈틈없이 감싼 신발은 상당히 추상적이었다. 허리께까지 두르고 있는 겉옷은 의복이라기보단 순수한 천의 인상이었다. 피륙은 제 물질성을 고스란히 발하고 있었다. 이 종합적인 모습 앞에서 사물의 색채란 그저 총체에서 한 발 뒤로 물러난 요소 같았다.
“일상은 안기도 그렇다고 내버려두기도 뭐해서, 이거 참 곤란하게 됐습니다.” 그가 말했다.



일요일은 평소에 비해 조금 늦었다. 발밑은 기대에 못 미친 까닭으로 가득 찼다. 넘쳐 난 이유가 제때 오지 그랬냐며 상기된 얼굴의 요일을 탓하는 듯하다.
많은 시간의 이면엔 대체 어떤 그림자가 있을지, 그것은 그을음과 닮은꼴일까, 결국 섬 곁엔 나뿐인가, 하는 생각을 소리 없이 한다.
생각은 원래 소리 없이 하는 것, 입 밖으로 나올 때조차 웅크려야 하는 것. 만남의 형태와 상관없이 마주하면 분명 반가울 테지. 번거롭게 울 수도 있고. 피차 마찬가지라면 서로의 얼굴을 붉혀 이미 지나쳤거나, 지금이거나, 혹은 언젠가 다가올 놀을, 퍼렇게.
새파란 시절이 내게 물은 건 무릇 뒤로 물러야만 하는 변수 내지 잘못 든 번지수였지요. 천성이 물러서 난 그때 아무 말 못 했지만, 사실 대답했는지도 모릅니다.
어물쩍 흐르는 시간은 사절이야. 사철이 울긋불긋할 때도 있다고 해. 적당량의 푼수가 지난한 어제의 기품이 될 때, 매일은 헤어 나올 수 없다.
힘들이지 않고 언덕배기를 오를 때마다 꼭 중간쯤에서 우뚝 멈추게 된다. 호흡은 변함없는 무관심처럼 그대로다. 위로 올라가 꼭대기에 닿든 아래로 내려가 제자리로 가든 선택지는 배려 없이 동일하다. 이 중에서 조금이나마 나은 걸 판별하려 든다면 등 뒤로 구석진 쑥대밭이 펼쳐져 거친 땅에도 기어코 살아가는 생물을 조만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단번에 알아본 일로 저 앞에 놓인 명주가 결례를 무릅쓸까.
가끔 나도 어쩔 수 없음을 받고 싶어서.


바위는 얼었다. 이는 비일비재한 일이라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는 현상같이 치부되었다. 언 바위를 새삼스럽게 느끼는 건 그가 줄곧 겉돌았기 때문일까. 이방인의 처우는 개선될 여지가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자신에게 준거 집단이란 거꾸로 선 호수임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기에 저 건너의 숲이 뒤늦게 울창해져도 이를 관대하게 이해하는 마음이었다. 한때 집단적 사고의 시도는 뼛속 깊이 시린 추위를 불러일으켰으며 그는 황급히 외딴곳을 찾을 수밖에 없었는데, 발이 닿는 곳 어디든 인적 없는 섬이었다.
들풀이 뿜어낸 연기는 여느 연기와는 달랐다. 그 차이가 한쪽 눈으로 본 세상에 감은 눈을 더하고 흐릿한 오후를 한 꺼풀 벗겨냈다. 그럼에도 전과 다를 바 없는 광경에 경험은 실족한다. 자정을 앞둔 시점에서 구석 부근에 쌓아 둔 무더기 걸음을 보고, 그것들이 앞으로 갈지, 뒷걸음칠지 생각한다. 부디 개별이 아닌 한 몸으로 움직이길 바라며 지금까지 상상으로 이고 진, 풀 한 포기의 삶을 허물에 내려놓았다. 언제나 나는 먼지보다 연기에 가깝다. 자욱한 시야 무언가를 감추려는 듯 점점 두꺼워진다.
남 일 보듯 네 뒷모습 바라보는 게 순간 첫눈에 혹할 일이었다. 이에 특징적인 면모는 없으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영원이었다. 시작과 끝이 없는 광풍이 분다. 어설프기 때문에 교묘한 심정으로 존재 여부와 상관없는 군상을 물리쳤다. 기어코 한 글자 계절이다. 소원은 불과 같고 이제 막 밤은 햇수로 4년이 됐을 뿐이다. 시의적절하게 멀어진 생각이 어느 순간 보이지 않아도 그것이 사방으로 번지고 있다는 걸 알아서. 시작보다 더한 끝이 한참이나 의미에 앞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