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제주 4·3을 소설로 기록하다

제주로 가는 길, 우리가 잊고 있던 이야기

제주도로 향하는 비행기 안. 창문 너머로 검은 현무암 위에 부서지는 파도가 반짝인다. 매년 1,300만 명이 찾는 이 아름다운 섬. 그러나 활주로 아래에는 우리가 잊고 있던 슬픔이 묻혀 있다.

2007~2009년 제주공항 일부 구역을 발굴한 조사단은 60여 년 전 정부군에 의해 학살된 수백 명의 유해를 발견했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은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1947~1954년 제주에서 일어난 비극적 학살을 다룬다. 그는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폭력을 꾸준히 탐구해 왔다.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을 받았고, 『소년이 온다』에서는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을 그렸다.

지난해 10월, 한강은 한국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의 작품은 역사적 트라우마를 직시하며 인간의 취약성을 시적으로 드러낸다는 평가를 받는다.

제주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

『작별하지 않는다』는 다큐멘터리 제작을 중단한 인선과 소설가 경하의 우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인선은 학살의 기억을 안고 살아온 어머니를 돌보며, 친구 경하의 꿈을 영상화하려 한다. 하지만 손가락이 잘리는 사고를 당하고, 경하는 폭설 속 제주도로 향한다. 그녀의 여행은 섬의 어두운 과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신비로운 여정이 된다.

4·3 사건, 잊혀진 비극

1948년 4월 3일, 제주에서는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는 봉기가 일어났다. 이승만 정부는 이를 강경 진압했고, 미국도 이를 방조했다. 그 결과 마을 수백 곳이 불타고 제주 인구의 10%에 달하는 3만여 명이 희생됐다.

이 참상은 수십 년간 정부에 의해 은폐되었다. 민주화 이후에야 공개 논의가 시작되었으며, 공식 조사는 2000년대에 들어서야 이루어졌다.

소설 속 장면들은 실제 사건, 사진, 증언과 연결된다. 인선은 제주공항 발굴 현장에서 발견된 유골 사진을 보고, 웅크린 모습이 잠들지 못하는 우리 자신과 다르지 않다고 느낀다.

한강의 문체는 불편하지만 동시에 따뜻한 위로를 전한다. 그의 문학은 리얼리즘과 환상을 넘나들며, 살아 있는 이들과 죽은 자들의 경계를 허문다.

문학이 불러낸 역사적 기억

제주 4·3 역사문화연구소의 전영미 씨는 “한강 작가의 소설과 노벨상 수상이 제주 4·3 사건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중요한 계기”라고 말했다. 현재 제주 4·3 평화기념관에는 한강 작가를 기념하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비행기는 제주공항 활주로 위로 내려앉는다. 멀리 눈 덮인 한라산이 보인다.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는 마음 한편에 눈물이 고인다. 이것이 바로 한강이 보여주는 세계다. 고통 속에서도 잊어서는 안 될 역사를 마주하며 나아가자고 말하는 문학의 힘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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