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스터 디자인_박희민
- Date:2025.03.10 – 2025.03.16
- Place: 문래예술공장 1층 갤러리M30
- Location: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경인로88길 5-4
- Hours: 월-일, 09:00 – 20:00
- Contact: @hee.m.b

고독과 오독

새벽을 뒤흔드는 느낌은 어둠 속에서 자랐다. 그것의 형태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기에 주인 없는 물건을 선점하듯 모습을 정했다. 느낌은 무성한 수풀로서 존재한다. 더불어 갖춘 자격이 내실 있는 구조의 건물로 드러나 견고한 외관을 떨칠 때, 부실한 이름 둘이 구설에 오른다. 상념은 향연이 되어 소산한다. 비가시적 영역이 눈앞에 보란 듯이 펼쳐져도 새벽은 여전히 요동하기에 수풀은 숲으로, 바닥이 보이지 않는 수해로 달아나듯 변모한다.
넉넉하지 않은 시간에 쫓겨 헌 옷이든 축 늘어진 새끼줄이든 뭐든 잃고, 늦장에 부린 고집과 함께 상하좌우를 넘나든다. 아침은 번안된 새벽, 받아들일 수 있는 이국의 정서가 기호를 어지럽힌다. 무질서. 타인에 무지한 행태가 비로소 둥근 윤곽의 사물에 닿았다. 고독의 실태는 현상 유지에 힘쓰며 생활의 얄궂은 부분 또한 삼키려 애썼다. 도로(徒勞)에 갇힌 이가 포기한 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 허투로도 피지 않는 안색과 허투루 취급한 경험의 부재를 조소에 섞어 두었다. 그것이 색을 잃는다면, 이는 내게 막대한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소리 없이 비가 내리는 날 귓등은 떨어졌다. 마치 장대에 부딪히기라도 한 듯 충돌이 빚은 추락이었다. 주변은 갈수록 짙어졌으며 벽은 이따금 외마디 변명을 짖었다. 그것은 울음 같기도 하고 기나긴 선언의 일부 같기도 했다. 진한 커피로 허무맹랑함을 달래는 지금은 시간과 공간으로부터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알 수 없다. 검은 액체가 액막이로서 제 역할을 다하면 그다음은 막연한 풀이뿐이다. 수식 없는 시공에 온 마음을 두니 이제 한때가 되어버린 지금을 지독하게 평가 절하하는 꼴이었다. 아직 닿지 못한 연락이 되어 수신을 떠받들며 사는 몸, 그것은 붙박이별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다량의 존중으로 구성한 밑변은 고백의 것으로도 쓸 수 없었다.’ 능력 부재의 확장 및 그것에 대한 뼈저림은 혼잣말이 되어 이맛살을 찌푸렸다. 밀림에서 불쑥 튀어나온 손을 잡는 것만으로도 주름이 한 보 뒤로 물러나는 듯하다. 사건의 시비를 가리다 문득 마주한 책임. 그것은 맡은 바 애물이었던가. 장물아비 단죽(短竹) 꺾는 행동이 장마로 기록되는 오늘은 그 여느 때와 다르지 않다.


자신을 양분하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는 정확히 자신을 반으로 가를 수 있었고, 그 과정은 첨예한 의견의 대립과 지나친 갈등을 초래했으며, 세상 모든 활자를 거꾸로 뒤집는 일이기도 했다. 둘로 나뉜 자신으로 무엇을 했는가(이 물음에 사상성이 결여되어 있는 듯하다). 그저 둘로 나눌 뿐이었다. 이 행위가 창출한 생산성 따윈 없었다. 분리는 다소 느리거나, 금방 이루어졌다. 효율이란 말보다 떼까마귀란 말이 흔한 정물로서 존재했다. 이야기의 끝은 다음과 같았다. ‘존재의 수가 늘어난 것이 아니라 그것의 양태가 변화한 것이다.’
만성적인 결함이 야기한 통곡은 통보되었다. 그럴 때면 한달음에 부엌으로 이동하며 곡기를 채웠다. 앞선 활동이 자의적이지만, 본인이 없는 행위 일반을 나타낸다고 생각하자 일 끝내고 자신을 일구었던 곳으로 던져졌다. 여전히 아무도 없다. 만약 이곳에 누군가 있었다면 우린 둘이었다가 셋일까. 넷이 될 수도 있을까. 아직 끝나지 않은 하루에 오도카니 존재한다.
마른 헝겊으로 무채색의 책상을 닦았다. 그것 위에 흐르는 것과 꼭 붙은 것은 없었다. 얕게 숨을 들이쉬고 깊게 뱉었다. 호흡의 불균형은 부조리로 이어진다. 그 과정에서 과장과 생략은 빈번하게 이루어졌으며 인고의 지점이 말갛게 도드라지곤 했다. 세상과 서먹한 불합리를 통해 현관과 통성명하였다. 인사는 작은 화단에서도 숲을 이루었다. 책상과 동떨어져 있는 의자를 창가로 옮겼다. 품 안의 가구는 퉁명스럽게도, 내성적이게도 느껴졌다. 부정을 저지른 듯한 생각에 착각이라도 보길 원했다. 의자 끄트머리에 걸터앉아 죽은 풍경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보았다. 허공에 가로선을 여러 차례 긋고, 그중 제법 두꺼운 밑줄을 눈 밑으로 삼았다. 편지인지 고지서인지 아니면 한낱 책의 낱장인지 알 수 없는 글을, 숨을 거둔 풍경 보듯 보았다.
발치에 드리운 그림자가 운 적을 논한다. 흔적이 흐려지다 결국 사라지는 투로 서툰 살갗이 부르틀 때, 무관심은 이상 무. 무리해서 우리에게서 벗어난 존재가 걱정이었다. 둘 중 하나는 줄곧 외로워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