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지_양승규
- Date:2025.03.06 – 04.12
- Place: 갤러리SP
- Location: 서울 용산구 회나무로44가길 30
- Hours: 화-토, 10:00 – 18:00 *03.25 – 29 임시휴관
- Contact: @gallery__sp

어디에도 있어
It’s Everywhere.
변화의 걸음은 다소 늦게 시작되었다. 행진의 자락이나 그것의 일부가 되어 어느 의견이든 내면에 받아들일 수 있는 자질을 갖추는 데 적잖은 시간이 소요되었기 때문이다. 본의 아니게 펼친 늦장이 바닥에 드리운 그림자를 자를 수 있는 – 유일한 도구인 – 가위를 가져온다고 해도 공로에 대한 치하는 없을 터였다. 변화는 거듭 앞으로 나아가고, 그 뒤를 쫓는 과정에서 땅에 떨어진 꼬리를 주어다 기우(基宇)에 떨이로 넘긴 이는 몇 수를 내다볼 뿐 그 앎이 선각으로 나아갈 순 없으리라. 뒷말썽. 선명하고도 파리한 벌판 중앙에 홀로 핀 새끼줄이 찬 공기의 증명을 바랄 때 대게 익숙한 시늉으로 나날을 게운 섶은 가무스름한 파악으로 마구 한 평 남짓 지천을 뒤흔들었다. 지붕 밑으로 파고든 숨은 어느 꿈자리를 분별하는가. 수도세와 섬의 관계로부터 시작된 응대는 곧은 사물을 비스듬하게 하였다. 그 위로 내리쬐던 볕이 변변치 않은 상태를 유독 꼬집듯 비출 때 허연 결말, 이국적인 기후 그리고 그 이외의 타성을 이끄는 것 모두가 밑변을 찾기 위해 하늘의 뚜껑까지 열어젖힌다. 방만한 선을 피해 여태껏 여백 앞에 섰다. 그간의 사유는 사사건건 구릉이었다.
맑음에 뒤엉킨 밝음이 몸부림치기 전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허공에 투명한 균열이 일어도 이를 알아차리지 못한 이들은 곳곳에 정박했다. 더 이상의 이동은 이제 허락하지 않으려는 듯. 보편에서 벗어난 하루는 종종 자신을 어제에 빗대고 내일을 빚었다. 둘 중 무엇도 봐줄 만한 솜씨는 아니었지만, 그 조악함이 세간의 미움을 사지는 않았다.
‘일주일 뒤에 우중충한 날씨가 시작될 것이다. 이는 개인의 정서와 집단적 사고, 혹은 그 자체로 존속하는 발굴에 위해가 될지도 모른다. 구름 낀 하늘 아래 어정쩡하게 굳은 어둠에서 희구의 활로를 보았다고 내친김에 토로한 등잔은 필히 불모가 숨긴 노른자 땅이다.’
허구 없이 잠록하다. 눈을 뜨고도 그런 줄 모른다. 현재 처한 상황의 연장으로 삼을 대상이 없다는 게 지나친 먹이었다. 까짓것 아름다움을 논하고, 그 애먼 파편 중에 뭉툭한 것 하나 없음을 줄곧 이상하게 여겼다. 거듭된 소요를 콕 집어 터트릴 재간은 소식이 감감하다.


점차 스침이 발하는 고개 위로 원형 틀이 등장했다. 그것이 만들어낸 원의 형태는 어느 시점을 경계로 다각으로 나아가는 듯하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사태는 지금도 벌어지며 종종 산사태를 흠모하는 억양으로 누구의 역량을 파악한다.
의식의 상을 결정할 수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 됐든 심미적이되 미적이진 않을 것. 혀를 떼어낸 입안의 공동(空洞)이 모서리를 갉아 찾음이 없는 시행을 꾀했다. 그것은 확장에 관심이 없는 생물처럼 보였고, 그저 현재 상태를 빈사로 갈음하기도 하였다. 비존재로서 존재를, 또 휘몰아치는 일종의 격정으로써 무를 실행한다. 갈망은 각졌으며, 걱정과 더불어 의도라는 것이 없었다. 고집스러운 잔향 현상에 움트고 추레하게 먼동을 의식한다. 눈밖에, 그 타고난 뒷발에 언 마음이야 허수들의 팔자로 뒷굽을 녹였다.
삶의 저변과 앞날의 도래가 맞물려 돌아간다. 이는 당연한 처사임과 동시에 한 겹에서 출발한 지 여러 해가 지났지만, 아직 두 겹에 못 미친 여정이다.
다수의 묘목으로 숲을 일구려던 참이었다.
문 두드리는 소리 등 뒤에 얽혀 있다. 뒤를 돌아볼 자격이 없는 건 현재의 매무새가 고집과도 같기 때문일지. 무엇을 향해 생의 의지를 관철하는지 묘사할 수 없는 나는 그저 다른 삶을 모사하는지도 모른다. 지금껏 실현과 흉내 사이를 다달이 오갔다. 그러는 동안 견딜 수 없는 마음도 물론 경험했고 속이 빈 – 자못 투명한 – 물병을 참 많이 보았다. 그것들의 양상은 벅차오른 구정(丘亭)이었으니, 말 그대로 사람이 살지 않을 뿐 그 밖의 존재는 의심 없이 살아갔다. 그 안에서 온갖 종류의 생명이 기거한 것이다.
사물은 의식적으로 호흡한다(그럼으로써 수고한다). 남들이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게 들고 나는 숨 하나하나에 이름 붙여 온종일 그것들을 부른다. 발화의 양은 지난주보다 조금 늘었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경우의 수를 그제야 덧붙이는 듯.
무탈한 안부와 소탈한 생활의 균형은 연신 기록적이다. 연식이 오래된 중고차가 영원에 가닿는 형국으로. 인식을 마무리하는 데 덧셈은 필요하지 않다. 이보다 더한 불필요는 없을 거라고 가득 앎을 흐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