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3억 5천만 달러로 ‘소리의 제국’을 손에 넣다

삼성이 오디오 전문 자회사 하만 인터내셔널을 통해 Bowers & Wilkins, Denon, Marantz, Polk Audio를 한꺼번에 인수했다. 금액은 3억 5천만 달러. 숫자만 보면 요즘 AI 인수전이나 위성통신 시장과 비교해 크지 않아 보이지만, 오디오 업계에서는 판도를 뒤흔드는 수준의 빅딜이다.

이번 인수로 하만은 포터블 오디오뿐 아니라 하이엔드 오디오와 홈시어터 시장까지 품게 되며, 그야말로 ‘사운드 풀 스택’을 갖춘 브랜드가 됐다. JBL, AKG, 하만카돈과 같은 브랜드로 포터블 시장을 장악했던 하만은 이제 본격적으로 집 안 오디오 영역까지 영향력을 확장한다.

각 브랜드의 상징성은 오디오 덕후라면 다 알고 있다. Bowers & Wilkins는 조각처럼 집착적으로 디자인된 노틸러스와 제플린 스피커로, Denon은 CD플레이어 시절부터 디지털 오디오의 선구자로, Marantz는 따뜻한 사운드로 아날로그 팬과 AV 마니아에게 사랑받아 왔다. Polk는 하이엔드는 아니지만 가격 대비 퍼포먼스 면에서 벽을 울릴 수 있는 실속 브랜드로 인기가 높다. 이 조합은 마치 전성기 시절 시카고 불스나 퍼거슨 시절의 맨유처럼, 각기 다른 스타일과 강점을 가진 전설들을 하나의 팀에 넣은 셈이다.

이번 매각의 배경에는 Masimo라는 의료기기 기업이 있다. 이 회사는 2022년 Sound United를 10억 달러에 인수하며 위 브랜드들을 손에 넣었지만, 의료용 센서와 모니터링 기술에 특화된 기업이 고급 오디오 브랜드를 보유한 것은 애초에 어울리지 않았다. 투자자들의 압박이 거세졌고, 결국 CEO가 물러나며 이번 매각으로 완전히 손을 뗐다.

하만은 이미 자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는 플레이어다. 포터블 오디오에서 이미 시장의 60%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번 인수는 고급 AV와 홈시어터 라인업을 완성하기 위한 수직 통합 전략의 일환이다. 삼성은 이제 TV, 스마트폰, 이어버드에 이어 거실 오디오 시스템까지 하나의 ‘청각 언어’로 연결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했다.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브랜드 각각의 철학과 음향 정체성을 살리면서, 기술적 통합을 자연스럽게 끌어내는 것이다. 예를 들어, Denon의 신호 처리 기술이 들어간 사운드바, Marantz의 튜닝 감각을 담은 삼성 TV, 혹은 B&W의 사운드 디자인이 깃든 갤럭시 버즈가 나올 수도 있다. 이런 조합은 단순한 브랜드 합체가 아니라 실제로 소비자들이 열광할 제품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만든다.

물론 반대 시나리오도 있다. 이름만 남고 실체가 사라진 ‘껍데기 브랜드’가 되는 경우다. 오디오 마니아들은 이런 전례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하만이 JBL과 AKG의 정체성을 해치지 않고 잘 유지해온 전례를 볼 때, 이번에도 충분히 기대할 만하다.

이번 인수는 삼성에게 대중 시장을 겨냥한 전략이 아니다. 오히려 브랜드의 깊이와 기술력, 감성의 결을 높이려는 시도다. 만약 갤럭시 스마트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Bowers & Wilkins의 스피커와 같은 음향 DNA를 갖게 된다면, 우리는 그 차이를 분명히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이, 삼성의 진짜 노림수다.

소리는 곧 기억이고, 경험의 질감이다. 삼성은 이제 그 질감의 방향을 스스로 디자인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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