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 《The Codex of Returns 반복의 기록》

《The Codex of Returns 반복의 기록》감민경, 박지원, 배윤환, 윤여성, 조호영, 허우중, 챕터투, 2025.07.10 – 08.14, 이미지_양승규
  • Date: 2025.07.10 – 08.14
  • Place:  챕터투
  • Location: 서울 마포구 동교로27길 54
  • Hours: 화 – 금 10:00 – 18:00 / 토 12:00 – 18:00
  • Contact:https://instagram.com/chapterii_

감민경, 나는 그의 은유였다 테르시테스의 등, 2021, oil on canvas, 181.8 x 227.3 cm ,이미지_양승규

어디선가 금속음이 연이어 들렸다. 단단한 것들은 여지없이 부딪쳤으며, 그렇게 주위에 던져진 소리는 어깨를 움츠리게 하였다. 나와 들녘의 신장 차이는 머리 하나 정도인지도. 별안간 만족을 쏘아붙인다. 사방을 향해 급히 돌린 고개. 고서(古書)의 머리말은 누군가 이고 진 텅 빔의 가치로 얼룩진다.
발걸음을 붙잡는 기분에 사로잡힌 채로 사물을 얼마간 삐뚜름하게 보는 일이 고색창연했던 발치를 불러일으키게 될까. 바깥을 가만가만 보는 이의 속은 무엇으로도 울렁거렸다. 일주일을 때울 끼니의 수로 파악하는 그가 말을 아끼며 잠에 든 지 벌써 사흘이나 되었다고. 기틀은 모든 일마다 제 윤곽을 드러내려 점잔을 빼었다.

가짐의 대상보다 그것의 방식이 더 중요한 시간이었다. 앞으로 나아가는 시침과 분침은 밖으로 나온 찬 것처럼 제 모습을 뚝뚝 흐르는 물로 자아내며 더위를 식혔다. 공중을 삭혔다. 한도 끝도 없는 자랑이 한 곳으로 물밀듯 밀려오는데, 존재 양식은 실체를 덧쓰고 애꿎은 외곽을 배회한다.

박지원, 통제된 풍경 3, 2023, oil on canvas, 193.9 x 130.3cm, 이미지_양승규

늦은 밤과 이른 새벽은 공유하는 바가 있었다. 그는 한때 이에 몰두했지만, 지금은 그 일을 돌이켜보지도 않는다. 종종 그랬었다는 사실이 잘못 발송된 빚 독촉장처럼 날아와 사뭇 비극적으로 존재했다. 동질적인 어둠을 틈타 그가 하려고 했던 건 대체 무엇이었을까.

풍경은 잔뜩 굶주린 채 움츠린 존재들을 제멋대로 비약하며 피곤한 두 발을 교차한다. 왼발은 주로 오른발에 업혔다. 대상을 둘러싼 명암이 눈에 띄게 불었다.

다소 무리한 일정이라도 마땅히 해야 하는 생활에 어느새 기꺼움이 내려앉고. 이에 대한 파악 대신 깊은숨을 들이켜는 것은 마른 저변을 젖게 하는 꼴일지도 모른다. 양태에 섞인 존재를 양상은 한쪽 입꼬리를 겨우 올리며 기억한다. 큰 차이 없는 일에 작은 새로움을 느끼려 하루나 이틀은 아무렇지 않게 쓰고, 끝내 익숙한 쪽의 발은 후에 내딛게 됨을 삼켜 인지할까, 한다. “장면에 귀속된 휘하( 麾下)는 어디서 작대기를 이어받아 삶을 지탱하오?” 수수한 이의 의문이었다.

조호영, Stand Still, 2020, the conveyor system, 35cm ball, 50 x 200 x 100 cm, 이미지_양승규

고르지 못한 평판에 구심점을 수놓았다. 골목은 위상이 모여드는 골짜기나 다를 바 없었고, 낮은 그나마 밝은 밤으로 변모하곤 했다. 적막한 동네가 동적으로 느껴진 데에는 명확한 계기가 있었을 터였다. 순식간에 아득해진 정신은 어둑한 복도도 세상 물정에 아둔한 사람도 한 번에 끌어안고, 입구는 하나지만 출구는 여러 개인 안도를 고스란히 눈앞에 드러냈다. 당분간은 하얀 조약돌을 숨겨야 할지도 모른다.
말수 근처를 배회한 걸음과 신출내기의 신중함을 겹쳐 찬 곳에 두었다. 놓기도 전 존재를 발휘하는 한기에 공교로움은 분해된다. 작디작은 소동이 흩어지며, 속이 훤히 보이는 의도가 바람 멎은 날에도 양껏 나부끼며.

미끄러지듯 이동한 거리를 단숨에 따라잡고 도약하기 전 조촐한 표정을 펴고 접는다. 줄곧 뒷모습뿐이던 이에게 도리어 그것을 선사하는 과정은 마지막이 반이었다. 떨어지듯 하늘에 뜬 구름 몇을 보고 불과 하루 전을 점친다. 늦장의 낯짝은 가히 이렇게 붉어질 수가 없다.

윤여성, O의 겹침 2, 2022, korean paper, pencil, conte, charcoal, lacquer, 90 x 72 cm (4), 이미지_양승규

아무 무늬 없는 게 그 벽의 무늬였다. 무직 자체가 직업인 그가 신경 써 신발을 신고 혹여나 어깨에 먼지가 묻어있을까, 양쪽을 여러 번 털었다. 아침은 무채색의 그림자를 곳곳에 드리우고 있었다. 버스에 몸을 싣고, 지하철을 단념하고 바라본 밖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전부 예의 벽을 형상화한다고 느꼈다. 그것을 처음 의식에 떠올렸을 때가 언제였는지 장담할 수 없다는 게 괜한 낙담을 불러일으켰지만, 한동안 멈추지 않고 이동하는 버스가 상한 감정을 신선케 하였다. 그에게 졸음은 예상보다 이르게 찾아왔고, 그가 사물을 제대로 분간하지 못하는 사이 신호는 평소보다 자주 바뀌었다. 잠결에 뜻을 알 수 없는 소리를 들은 듯하나, 파악은 제때가 아니었다.

‘무수한 정류장을 지나는 건 정작 힘써 두 발을 놀리는 사람이었으니, 사실상 환경의 무난함은 결국 그를 위한 대우인지도 모른다.’
누군가 벨을 눌렀다. 그는 서둘러 내렸으며 그의 존재만큼 공간이 비었다. 그곳에 떠밀리듯 자리 잡은 이는 무수히 그어진 사선을 두르고 광활한 광장을 보았다.

허우중, Lines 8, 2024, oil, colored pencil on canvas, 116.8 × 91 cm, 이미지_양승규

풍광에서 넋을 읽어낸 건 자칫하면 표정으로 비칠 수 있었다. 까닭 없는 웃음도 그을린 주머니에 담아 입구를 단단히 봉해야 하는 상황은 종종 울걱거렸다. 한 평에 불어닥친 소외감은 자신이 정체라는 것을 가진 적이 있는지 자문하며 바지런하게 손을 놀렸다. 타성일 뿐인 뜨개질, 허공을 표류한다.
날벌레는 처마 밑을 점유라도 한 듯 오직 그곳에서 비행 일색이었다. 누군가 그것에 이름을 지어 부른다면 한쪽 날개를 부르르 떨며 공중에서 휘청일 날것이었다. 어저께까지 내리던 비는 더 이상 볼 것 없다는 듯 모습을 감췄고, 작열하는 태양만이 그침을 그려냈다. 그것이 취한 방식이 얄궂으면서 허술해 복잡한 생각뿐이었다. 눈을 감을 때마다 유독 잘 들리는 소리가 있다.

제 바탕이 넓은 질그릇 하나, 절로 무(無)를 담고, 그와 동시에 이를 답습한다. 침침한 시야 저편엔 새로움이 있을까. “얼굴을 붉혀 면할 상황이란 것도 결국 부질없기는 매한가지지요. 난 가만히 허물에 허무를적소.”

배윤환, Golden Soup, 2017 charcoal, acrylic on canvas, 181.8 x 227.3 cm, 이미지_양승규
seunggue Yang
seunggue Yang

새로운 아침을 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