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Date: 2025.08.13 – 09.04
- Place: PCO
- Location: 서울시 중구 서애로 15-6, 3층
- Hours: 화 – 일, 12:00 – 19:00
- Contact:https://instagram.com/pco.seoul

남몰래 모아온 것이라곤 투명한 셀로판테이프 정도다. 수집에 열정을 쏟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될 테로 되라는 식은 아니었다. 그 행위에 나름의 규칙이 존재했으며 심지어 금기도 있었다. 이 모두를 관장하는 뚜렷한 동기가 오늘도 여전히 허공에 흔적을 새기고 있다.
한때 달리기에 몰두했던 적이 있었다. 앞선 몰입은 제법 근사한 것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상황상 달리지 못하는 날이면 우울을 넘어 절망을 느꼈다. 내색하지 않았지만, 사실 생각보다 더 근사하게 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맑은 날을 칭송한다.
상황의 문턱을 넘을 때마다 드는 생각 내지 불평은 힘을 잃어 축 늘어진 형태로서 드러난다. 그것의 외형은 값비싼 꿈에 들러붙은 한낱 반복 기호처럼 어딘가 서글픈 구석이 있는데, 자의적인 감상에 서슴없이 드나들 이견은 고사하고 의견도 없다.

유독 허기진 오후, 갈증은 멀찍이 돌아섰다. 이렇게 순수하게 배가 고플 수 있다니, 하고 감격하지는 않았지만, 얼마간 그런 징후가 있었다. 적당한 거리에서 적당한 가게 찾기는 사뭇 적당한 일이었고, 무던한 식사와 목적지 없는 몸짓은 느리게 이루어졌다. 날이 저물기까지 남은 시간은 영원에 견줄 만했다.
오래된 건물을 부정하는 듯 실외기는 무척 새것이었다. 방금 공장에서 만들어진 녀석을 수완 좋은 사람이 즉시 공수해 온 건지도 모른다. 그의 이름은 결국 공상을 찢지 못할 터. 아무튼 단조롭지 않은 풍경을 눈에 담았다는 것이 뙤약볕 아래 버젓이 존재할 자긍심에 기여했다.
아침에 이따금 마주치는 자동차의 미등은 절반쯤 먼지를 뒤집어썼다. 눈을 감은 채 시간의 주검을 빚어내다가 문득 예의 미등이 생각나곤 한다. 그럴 때마다 손등은 까닭 없이 따끔거렸다. 탁한 불빛, 건조한 함성. 하루의 시작은 시의적절한 시합으로 변모한다.

지나친 낙관과 비관 사이에 구부정한 자세가 서린다. 인적이 드문 거리에 있는 낡은 대문. 그것은 하루에 몇 번이나 열리고 닫히려나. 아픈 다리를 잠시 쉬게, 그러는 동안 까짓것 숨도 고르고 일정한 멍함을 유지하기 위해 버스정류장 벤치에 주저앉았다. 무려 두 시간가량 앉지 못했다는 사실이 내게 쓰임 있게 다가온다.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처지의 그림자를 본 이후로 그렇게 외롭지는 않았다. 하늘은 소매로 눈가를 훔쳤다. 자아는 여지없이 과잉되었다.
새벽도 아니고, 달밤도 아니고 더군다나 정오도 아닌 시간에 체조하였다. 이럴 때일수록 마음은 엷다. 굳은 생각과 영구적인 가르침은 어째 별 의욕이 없어 보인다. 나의 유일한 체조 파트너인 그는 어제 파도를 접었다고 했다. 심드렁한 표정을 보니 예사로운 일인가 보다. 통장은 점점 말라가며 외면하기 어려운 통보를 하는데, 오늘따라 유독 리듬이 흥겹다.

나는 바쁜 이들을 몇 알고 있다. 그들의 이름은 하나같이 투박하고 행동은 어딘가 좀스러운 구석이 있어 보이지만, 모두 대체할 수 없는 매력을 지녔다. 지금부터 시작하는 새로움은 새된 소리가 되어 우리의 의식 저편까지 울려 퍼질까, 하고 생각을 마친다. 이렇게 순서 없는 무용에 나는 시간을 떨치곤 한다.
가깝기 때문에 도리어 먼 곳. 손등에 올려 둘만한 행운. 둘도 없는 사이와 마침표의 가난. 오늘 점심 겸 저녁으로는 무엇이 좋을까. 대수롭지 않은 책을 살 때면 그렇게 괴로울 수가 없었는데, 손해보다는 훼손에 가까운 느낌이었지.
대낮 같이 환한 지하도를 걸으며 하늘에 관한 단상을 눈앞에 끼얹었다. 내일에 대한 부연 감각이 조금 맑아진 듯한 기분이었지만, 나는 그대로인 것을 생각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여전함이 조용히 흘러내린다. 더러운 배수로로, 깨진 유리 파편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