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 《브랜디를 마실 것 같은》하이트컬렉션 젊은작가전

《브랜디를 마실 것 같은》하이트컬렉션 젊은작가전, 강예빈, 이오이, 조은시, 조은형, 하이트컬렉션, 2025.10.24 – 12.13, 이미지_양승규
  • Date: 2025.10.24 – 12.13
  • Place:  하이트컬렉션
  • Location: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 714 하이트진로빌딩 B1, 2F
  • Hours: 화 – 토 12:00 – 18:00
  • Contact:https://instagram.com/hitecollection

조은시, 홈 그라운드, 2025, oil on wood panel, brick, 95 x 240cm, 이미지_양승규

문 앞엔 국경이 여럿 섞여 있었다. 나는 일순간 얼굴을 구겼다. 구경거리로 전락한 사람들, 바깥의 좀먹음. 이 따위의 생각을 나열하며 어제를 점친다. 이럴 때마다 과거는 과장되게 기억되곤 한다. 항상 먹고 마시는 우리가 데면데면하며 살아가는 사회는 이차원에 갇힌다.
창문에 비해 지독하게 작은 풍경을 오히려 들여다보며 방금까지 투명한 유리잔이 반짝거리던 것도 잊고, 식기가 저들끼리 부딪쳐 내는 소리도 놓고 탈출을 빙자하였다.
발간 무화과는 징검다리처럼 늘어선 꽃망울을 밟고 이곳에 도달했지만, 어째 무감각할 뿐이다. 이 태도가 겸손하게 느껴지는 건 태고의 비언어와 관계된 무엇 때문일까. 그 무엇은 결국 무언의 허용인가. 조금 혼란스러워 숫자를 일에서 십까지 거꾸로 셌다.

조은시, TG/SOU-SIL/ES 1, 2, 3, 2024, 8-color screen print on paper, set of 3, each 59.4 x 42cm, edition of 25, 이미지_양승규

빙산의 유분수에 관하여.

우리는 왜 빙산을 현 상황에 국한된 대상으로 삼아 굳이 입에 올리며 당분간 그것 말고는 무엇도 논의할 예정이 없다는 것을 퍽 자랑스러워하는가.
이를 규명하려고 할수록 분별은 대안을 잃을 것이다.

조은시, 가짜나무와 벌집, 2023, oil on wood panel, 80 x 35 x 28cm, 이미지_양승규

뜸 들이지 않고 텅 빈 마당을 찾아낸다. 이곳에 오기까지 길에 가게들은 즐비해도 간판은 하나도 없었다. 사람들은 전부 뒷모습뿐. 이와 같은 상황이 내게 시사하는 바는 문을 잘못 연 듯하다.
‘그 앞엔 경계심 가득한 사람이 의도치 않게 불편함을 호소하여 그간의 묘한 입장은 틀에 박히게 되었다.’ 자욱한 기분은 언제나 좌우대칭.
특징 없는 주전자와 벌목을 하루 앞둔 나무의 조화. 이 둘이 포함된 풍경은 정물 앞에서 부주의하게 넘어졌고, 그와 동시에 생긴 상처는 다분히 실제적이었다. 난 또 그 훼손에 이름을 붙일까, 하다가 문득 여백이 싫어져 그만두었다. 나와 상관없는 일에 내가 포함되는지, 관계란 홀로 자립해야 할 필요가 있는 절망인지, 교정된 마땅함에 물었다.

조은시, 먼 친척, 2023, oil on wood panel and canvas, water, glass, rope, birch tree, dimension variavle, 이미지_양승규

건물은 어느 양식에도 속하지 않았다. 독보적이거나 단지 외톨이였다. 비교적 따뜻한 오후가 이어질 거라는 전망은 건물의 내부를 환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곳엔 많은 지붕과 한두 개의 숲이 있고 매일 건조한 비가 내린다.
건물에 대한 묘사는 이쯤 해두기로 한다. 그는 피곤했고, 앞으로 처리해야 할 일들이 엄숙한 얼굴을 한 채 쭉 늘어서 있었기에 이젠 눈 감고 있는 순간을 길게 엮어야 한다. 그 전에 마지막으로 건물을 칭할 이름을 정하기로 한다. 이와 같은 마음을 먹기까지 결심과 결정, 수여와 부여라는 두 쌍의 눈꺼풀을 여러 번 내리고 올려야 했다(누구도 찾지 않는 궁전이다).

조은시, 먼 친척, 2023, oil on wood panel and canvas, water, glass, rope, birch tree, dimension variavle, 이미지_양승규

이름으로 좋을 성싶은 것은 상자. 손잡이 같은 건 절대 붙어 있지 않은 상자.
안도한 표정으로 그는 눈을 감는다. 그렇게 상자 안으로 들어간다.

강예빈, stones, 2023, oil on canvas, 130.3 x 80.3cm, 이미지_양승규

책상 위는 여느 날과 다를 바 없었다. 그는 황급히 그곳을 정리했는데, 그가 사실 정리하고 싶은 건 여느 날이었는지도 모른다. 오디오는 소리를 토하고, 유리잔은 검은 액체의 성장을 묵묵히 목도한다. 견딜 수 없는 상황을 마음껏 거느리는 이에게 할당된 하루는 남들의 두 배가량 혹은 절반 정도일 터였다.
방 하나에 그 수만큼 의자와 책상이 놓였고, 이에 이유 모른 살풍경을 느끼며 단정으로, 그 속된 판단으로 걸어가는데.
‘나 또한 그 거리에 즐비한 뭇 검정들을 보았고, 한편으론 이제 그것들의 중심이 된 듯해. 불면의 밤을 세 자릿수로. 가로등을 비추는, 다분한 시각을 외자로.’
영원히 이전과 다를 바 없는 대상으로 거론된 건 무엇일까.

강예빈, moment, 2025, oil on canvas, 162.2 x 97cm, 이미지_양승규

가능하면 주위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가려고 했지만, 실제로 그럴 수 있었음에도 낮지는 않은 곳으로 향했다.
우주를 떠돈 철부지의 표정이 추상적인 삶을 표구한다.
나무 막대로 두드리기 충분한 신화가 있다.

조은형, A Man, 2025, oil on canvas, 117 x 73cm, 이미지_양승규

방망이질은 갈수록 조급해진다. 발이 빠른 새벽이 통과한 문턱은 도통 본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늦었구나, 하고 말을 전할 대상이 내겐 없다. 집안에 무수한 시계는 어떤 것도 상기시키지 않는다. 장소의 변환, 그 예고 없는 휘두름에 무력함을 느낀다.
이젠 물건은 한 손으로 쥐자. 남은 손이 거들어봤자 두 손은 끝내 엉거주춤할 뿐이다. 나는 의도적으로 사물의 자세를 자세하게 보는 시간을 갖는다. 이를 위해 조금의 후회는 필연적이다. 어째서 그런 건지 알듯도 한데, 이에 대한 추가적인 논의를 무마하려 가벼운 옷차림이 되기도 한다. 나라는 존재 자체가 가벼운 옷차림이 되는 것이다. 실속 없는 형편에 자주 짓는 실소.
안정에 가닿을 수 있게 지금도 여전한 방망이질.

조은형, 관심, 2025, oil on canvas, 65.1 x 90.9cm, 이미지_양승규

누군가는 내게 부서질 듯이 다가오고 있다. 품 안에 큰따옴표는 제 크기가 영 마음에 들지 않다고 숨김없이 말했다. 그 내색은 솔직한 만큼이나 몹시 지친 것이었고, 영문으로 가득한 나는 아무개와 덩달아 부서졌다.
새삼스럽게 시간은 참 빠르다고 생각한다. 그와 동시에 그것보다 뒤처진다는 건(그럴 수밖에 없다는 건) 자연스러운 양상이라고까지 생각하는데, 이 비약에 나는 그와 나를 동일시하는지도 모른다. 그가 누구냐고 한다면, 여백으로서의 삶을 쥐고 누군가에게 달려갈 테다. 혹은 그럴 작정이다.
다부진 사람의 다 무너진 방안. 시간을 잡아먹기에 제일은 고독한 일상일까. 구두로는 한 적 없는 약속과 한 점 부끄럼 없는 기록이었다.

조은형, Wind through Two Windows, 2024, charcoal on cotton, 65 x 81cm, 이미지_양승규

낙엽이 바닥 위를 구르는 건 예삿일이다. 시도 때도 없이 그런다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만약 볼 때마다 그런다면 방만한 생각에 불을 지펴도 되리라.
구석진 밤과 탈이 많은 낮이 내친 경계에 다가갈 기회가 생기면 한 번쯤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아니다. 완곡한 표현은 이제 되었다. 다른 것 다 제쳐두고 그곳으로 가라. 그 전과 후가 다를 바 없어 의아해하겠지만(한편으론 절망까지 할 수도 있겠지만), 바로 그 다를 바 없음이 중요한 것이다. 어쨌든 두 눈으로 예의 경계를 똑똑히 바라볼 필요가 있다. 언젠가 때가 되면, (단언이 아닌 가능성의 측면에서)한 줌의 미소와 한편의 미소를 구별하게 될지도. 그럴 수 있다면 사물의 양상은 사건의 획을 그리고, 어떤 규칙에 의해 이를 더듬고 고친다는 걸 파악하게 될까.

seunggue Yang
seunggue Yang

새로운 아침을 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