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 《Correspondence : Lee Ufan and Mark Rothko》

Lee Ufan, Dialogue, 2018, acrylic on canvas, 260 × 194 cm (8′ 6-3/8″ × 76-3/8″), 4 panels each, 260 × 688.3 × 100.3 cm(8′ 6-3/8″ × 22′ 7″ × 39-1/2″), overall installed, No. 69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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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2024. 09.04 – 10.26
  • Place: 이스갤러리
  • Location: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267
  • Hours: 화 – 토 / 10:00 – 18:00
  • Contact: 02-790-9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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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오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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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분히 연극적이었다. 그는 내가 면한 생활이 없으니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다고 했지만, 곧 부서질 듯한 표정은 내일을 갈구하고 있었다. 그가 속한 세계의 창을 열면, 그땐 그럴 수밖에 없던, 여러 번 시선을 깨트린 끝에 성한 곳이라곤 없어 도리어 그것의 원형을 깨친 이들의 속사정이 울긋불긋 타오르고 있을 터다. 

잿빛 횃불에 손등을 쬐었다. 습관적으로 관절 꺾는 소리에 잠정 속 외마디는 금세 서너 개로 불어나 영원을 선망하듯 서로서로 부딪혔다. 어디선가 혀를 차는 소리, 작달막한 지렛대로 바닥을 긁는 소리, 나무 밑동을 두드리는 소리 모두가 소문을 타고 툇마루를 점령하려 든다. 가혹한 처사로 심정이 붕괴된 철문은 저 혼자 세월을 끌어당겨 삐거덕대는 울음을 갖추고. 의식적으로 배회한다. 덥수룩하게 자란 수면 위로 한 줌 배가 헤엄할 때 나는 종종 그를 대신해 어떤 생활을 면했다. 어쩌면 그것에 모두의 염원이라든가, 습관이라든가 하는 것이 틀어박혀, 그 상태로 천천히 우리로부터 멀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쉽게 장담할 수 없는 이 사실이 누군가(기대를 저버린)에게 흔적과 같은 기대가 될 것이다. 

평온의 끄트머리에서 수척한 모습의 참상이 어기적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그것이 취한 명에란 단지 그리움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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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이의 소매보단 손목에 더 관심이 있었을 뿐이오. 아니 사실 그 반대던가. 어느 것이 관심을 차지했냐 보단 둘 중 하나가 나의 이목을 그리도 수월하게 삼켰다는 사실이 여전히 부재도 없던 밤을 밝히고 있소. 하루의 절반은 뜬 눈으로. 나머지는 뜬눈으로. 

때론 눈 감아도 감은 것 같지 않은 기분을 자시오? 나는 가끔 그것에 입맛을 다시고, 앞선 해괴망측한 행위에 괘념치 않으려 쓰게 웃소(먹빛은 항상 먹소). 분별일랑 마시게. 마뜩잖은 품에도 바람이 드니 어서 본보기에 행차하시다. 걷어붙일 바짓단이 우리에게 없는 게 앞뒤가 맞아떨어진 맨몸의 증명이 아닐지, 하고 서걱 혼잣말을 베어 물기도 하오. 수기에 사로잡힌 손아귀가 비참함을 자아내는 건 골고루 고루한 자아의 미망(迷妄)일지요.”

이는 비약적인 기록이자 굳이 존재한다면 애써 말리진 않을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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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고하다 못해 타들어 간 바깥 – 번잡스러울 수 있으나 지극히 예사로운 – 을 따스하게 여기며 얼추 지폐와 두께가 비슷한 어깃장 두어 개 집게손가락과 가운뎃손가락으로 꼬나문다. 그 둘은 분명하게 호흡한다. 간혹 거친 숨이 입 밖의 거리를 평하지만, 평범함에 피어오를 연기란 짐짓 어기대는 행동의 보편화에 어떤 기여도 하지 못한 개체일 뿐이다. 어쩌면 이 무력감이 대상의 위치를 드높였으며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내재적으로) 맞닥뜨릴 수밖에 없던 좌절이(자신에 대한 깊은 인식이) 예의 대상을 불붙게 했는지도 모른다. 
누렇게 뜬 하늘의 안색은 황금의 그것과 판이하기에 충분히 그곳에 기어오를 수 있으리란 생각을 들게 하기 충분했으며, 이는 잠정을 넘어 작정으로 속 깊이 뻗쳤다. 더 이상 오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다행의 얼굴을 하다가도 속 쓰린 이가 마구잡이로 소모한 인상으로 변모하곤 했다. 

건너 듣는 이야기에 볼썽사납게 묻은 억양이 신경 쓰이기 시작한 것은 반나절 전 하고도 일 년이 지난 때였다. 그날 날씨는 보기 좋게 예상에서 벗어났으며 사람들은 어딘가 빗나간 듯한 인상으로 별 쓸모도 없는 인사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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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음과의 조우는 의식의 헐거운 부분을 단단히 죄었다. 비로소 완전함이라는 개념에 탄성을 던질 수 있다. 막다른 길, 바싹 마른 벽, 인적이 드문 거리의 꽃집, 생각 깊은 곳에서 떠올린 정경은 곧 손 내밀면 닿을 환경이 될 터다. 좀처럼 입 밖으로 나가지 않는 말에 주변을 한 무더기 가져다주었다. 대상과의 거리를 좁힘으로써 그것으로 거리낌 없이 나아가는 설움과 기어코 이를 밝히려는 시도 사이에 곤란은 그저 흔한 이름들 가운데 하나였다. 완연하면서도 막연한 봄은 치렁치렁 앞날을 두른 사람들, 무엇이라도 하려고 애쓴 끝에 마지막을 목도한 이들로 붐빈다. 저마다 침묵으로 걸음을 옮기며 가끔 멍하니 자리에 선 채 불확실한 자신을 그토록 선명하게 바라보았다. 그 순간만큼은 비극도 몸을 숨겼다.

가로수가 있던 자리에 부재를 딛고 피어난 들꽃은 파안을 일부 파악하며 되도록 푸르게, 이름 대신 사물을 부르고, 어느 목적과도 관련 없는 존재로 인식에 가닿았다. 나는 끊임없는 회고에 갇힌 것인가. 귓전에 들고 나는 불안이 관심의 부재를 어떻게 받아들이냐 하는 점은 이젠 생략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언 발을 사선으로 그었다. 

Lee Ufan, Response, 2023, acrylic on canvas, 162 × 130 cm (63-3/4″ × 51-3/16″), No. 92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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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Ufan, Relatum – Correspondence, 2024, steel and stone, 1 × 420 × 350 cm (3/8″ × 13′ 9-3/8″ × 11’5-13/16″), steel plate, 105 cm × 88 cm × 80 cm (41-5/16″ × 34-5/8″ × 31-1/2″), stone, 98 x 666.5 x 422 cm (38-9/16″ × 21′ 10-3/8″ × 13′ 10-1/8″), overall, No. 92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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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시 거친 겉
속이 비친 쇠

세 뼘 남짓한 
지붕.

seunggue Yang
seunggue Yang

새로운 아침을 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