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Date: 2024. 10.08 – 10.31
- Place: 에브리아트
- Location: 서울 중구 동호로 353, 4-5층
- Hours: 화 – 토 / 12:00 – 17:00
- Contact: @everyart2021

이미지_양승규
밑바닥의 수고는 점점 녹슬어갔다. 누런 모양새가 어딘지 모르게 고얀 행실을 떠올리게 했지만, 아무렴 눈앞에 현현하지 못한 가능성일 뿐이다. 바닥 위에 선 내가 어물쩍 판단을 유보하며 거리낌 없이 고개를 저어도, 이에 아쉬움을 표할 이 하나 없다. 이곳은 다분히 의도적인 섬. 부표가 잠든 수면이 깨져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심지어 부서진 수면조차. 수명을 답습하며 어떤 부질없음을 논하는 시기는 거친 호흡, 얼게 둘 수 없는 두 손, 희박한 시도에 각각 완벽을 보낸다. 그럼으로써 대체로 순수한 기약은 그 자체로 존립하며 제 발밑에 물이 고여 웅덩이가 생겨도 아무런 의견도 내세우지 않았다.
하늘은 사물의 얼개로 가득하다. 벽을 마주한 채 점점 거리를 좁히며 뿜어내는 언어에 일부 모순적인 성장이 묻어 있다고 한들 잠정의 고깔은 자신을 놓지 않는다. 한 치 앞도 파악할 수 없는 일상은 이제 기행(奇行)으로 받아들여야 할 터다. 하루에 받을 수 있는 인상의 절반 치를 다음날에 보냈다고 텅 빈 이와 유대를 쌓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남은 절반이 그와 소원한 관계를 대면하게 했을지도. ‘그 맹목성이 편취한 넉살은 데면스러운 자아에 의해 우스갯소리로 변모하며…’ 이는 누군가의 예언으로 어리석음을 적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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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버릇은 머리카락에 정착했다. 밖은 찬바람으로 분주한 때를 보냈다. 하루 중 극도로 불안한 시간대는 제멋대로 구는 사람의 불안정한 자아처럼 종잡을 수 없었다. 눈을 감는 행위에 요행을 바랄 만큼 심적으로 으스러지진 않았지만, 신체는 꾸준히 마모되어 간다.
창가 앞에 서면 언젠가부터 평소보다 느릿하게 호흡할 수 있었다. 여전히 중심부에 있지만, 기존보다 한두 걸음 뒤로 물러난 기분에 발밑에 드리운 팔자를 긍정적으로 검토했다. 서두를 것 없는 상황이 선명함을 부추기는가. 입안이 바싹 마른 때, 옷깃을 바짝 추켜올리고 조각의 생태를 공상으로 장식하면 별 볼 일 없는 동네의 장마를 한입 베어 문 것 같았다. 타들어 가던 바닥은 축축한 늪으로. 이제 곧 거리낌 없는 순간의 도래가 있을 터다.
아직 오전의 티가 가시지 않은 오후는 무르익을 준비로 여념이 없다. 높은 곳과 낮은 곳, 그 실제적인 높이를 실로 마음에 담아두기가 영 대수롭지 않아 신경을 중립으로 놓았다. 요즘 날씨는 가로수가 쏟아지는 때이다. 횡단보도의 얼룩은 비교적 따사로운 언사. 이윽고 먼 언동이 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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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황스러움이
고혹함에 불 지핀 때가
자신을 되짚는 것으로
높이 뛴다.
/ 무게와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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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과 몇 마디를 나눈 것 – 대화를 쏟는 듯하다 – 이 자못 이해되었다. 창문 크기로 한정된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시답지 않은 인상을 구축했다. 하염없는 과정과 미급한 실패로 겪어야 할 일은 불어났지만, 그것은 가슴팍에 못 미치는 수면과 같았다. 호흡엔 아무 이상이 없다. 대체로 생각에 잠기는 나날이 이어지고, 불안은 견딜 만했다. 그가 연속해서 대화를 엎지른 이유는 지금도 합당함을 추구하며, 누군가의 추악한 솜씨를 세간과는 조금 다른 각도로 응시하고 있을 터다.
개체의 아우성은 주머니 속에서도 여전하며 혼란과 동등한 감정의 처우는 편견의 무게로 인해 한쪽으로 기울었다. 걷는 게 평소와 어색함을 공유하는 사이, 그는 익숙한 사람의 뒷모습 보았다. 잊힌 기억은 배회도 속 안에 가두고, 때 묻지 않은 이의 시선을 기르려는 듯 되물었다. 잡식성 짐승이 허기에 대한 사유를 하는 것처럼 보일 때 그는 소문을 앞세워 지금껏 머물렀던 반향을 떠날 것이다. 앞선 소문은 예의 사람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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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구하는 걸 본 이후로 머릿속 어느 귀퉁이에 꼬리가 돋아난 듯하다. 운구차의 이동은 작은 모래알조차 없는 길 위로 미끄러져 내리는 대상을 떠올리게 했다. 그것은 한때 나일 수도 있고, 반쯤 썩은 나뭇잎일 수도 있다. 아직 가시지 않은 피로 위로 선명한 인식을 두었다.
세계는 불특정 다수의 외면을 저장하는 커다란 창고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 앞에 문을 지키는 사람이 쉬운 감정을 어려운 말로, 어려운 감정을 쉬운 말로 그날의 기분 따라 내키는 대로 말하며 외로움을 독대한다.”
석면을 가득 뒤집어쓴 폐가 하루를 정리하는 듯한 말투였다. 나는 창문은 고사하고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수단조차 없는 공간을 생각했다. 몹시 거대한 존재의 뱃속에 있는 기분이었다.
“그곳의 밑바닥에 엎드려 있으면 이국의 무미건조한 풍경이 성큼 내게 걸어온다. 곧이어 사람 사는 게 어디든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 희미하게 미소 지으면서도 질끈 눈을 감을 수밖에 없다. 나는 이제 어떤 자초지종도 필요하지 않다.”
그 말을 끝으로 그는 창고지기를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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