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졸업전시 리뷰 Vol.2] 《동양화 / 유석주》

2024 서울대학교 동양화과 졸업전시
이미지_양승규
  • Date: 2024. 11. 28 – 2024. 12. 01
  • Place: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50, 51, 74동 우석갤러리
  • Location: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
  • Contact: @_seok_ju

유석주, ‘그것’들의 세상, 130 x 324cm, 천에 연필, 먹, 목탄,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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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이 없는 나무를 보았다. 돈 모을 수단이 궁해 얼빠져 있다가 무릎을 털고 밖으로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무작정 지핀 불에 초원이 타고, 불길이 잦아든 후 눈에 들어온 황야나 황무지 – 초원의 변모를 고스란히 간직한 벌판 – 에 어울릴 법한 나무였다.
‘불꽃이 떨어진 자리에 거친 손아귀만 남아 있었다. 부르튼 지표는 사뭇 무방비하게 얼굴을 붉혔다.’  
예의 나무와 풍경을 이루며 장차 쓰게 웃을 입장에 대해 생각했다. 절망을 기록하듯 자신이 없었다. 주눅은 피로의 누적에 기인하는가, 무심코 주운 늪에 새것 같은 동공이 떠오른다.
제물장 가장 깊숙한 곳에 취급하지 못한 사안이 한껏 몸을 웅크리며 떠는 몸짓은 제법 극적이다. 이제 곧 어느 국면으로 접어들 텐데, 목 없는 나무를 본 것으로 시작된 정지에 솔직함을 부음으로써 거짓 없이 전진에 정진하련다.

오래된 신발의 비명을 발소리로 갈음하고 다달이 청구된 나잇값에 새로움을 치렀다. 번잡스러운 침묵도 해가 되지 않은 요즘 다소 팔을 벌리며 산다. 예상과 다르게 당면한 웃음은 신랄했다.
목이 없는 나무와 무심코 주운 늪. 그것들의 세상은 무한하다.

유석주, Circular, 210 x 150cm, 천에 연필, 먹, 목탄,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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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을 둘러싼 문제로 간밤을 웅덩이에 헌납했다. 어떤 섬이었는지, 어떤 간밤이었으며 또한 어떤 웅덩이였는지 기억할 수 없다. 잠깐이나마 눈앞에 현현한 건 단지 독립적인 깊이였다. 그 자체로 존속하는 대상에 시선을 묶어 두고 움직일 수 있는 거리만큼 이동하며 꿈을 팔았다. 이는 명백히 시간을 쓴 행위였다.

자격과 극심한 환상이 어른으로 있는 동네를 지나쳐 외곬에 들어선 참이었다. 꾸린 시간이 무색하게 봇짐은 수포로 돌아갔다. 헝용하지 못한 면이 한 보따리다. 앞으로의 여정은 눈앞에 어른거리는 동네(최근에 지나친 고립)에 밀려나 조금 쓸쓸하게 지냈다. 관심 밖은 부단히 불을 땐다. 생존과 결부된 취미인 듯, 그것이 절박한 기호 식품인 듯.
한참이나 외길의 초입에 있었다. 앞으로 나아갈 수 없고, 뒤로 물러나는 건 근사하지 않다.
‘언 발에 먼동이 부딪치기 전까지 이렇게 서 있을 수밖에.’
날개 달린 섬이었다. 지난밤은 땅의 소유였고, 웅덩이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뺨이 욱신거린다. 동쪽이 희끄무레하게 들끓기 시작했다.

유석주, 새, 땅, 그리고 사람들, 162 x 130cm, 천에 연필, 먹, 목탄,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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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벗어나자, 어딘가 야윈 수풀이 보였다. 그것은 어느 숲의 입구처럼 보였다. 벽에 위태롭게 붙어있는 문고리를 떠올렸다. 그것은 비교적 새것이다.
등진 길 위엔 종류가 많다고 할 순 없지만, 수효를 셀 수 없는 발자국이 널브러져 하나뿐인 생태를 이루고 있다. 굉장히 무성하다. 혹시 존재할지도 모를 감격을 벤 감상이 떨떠름하게 뒤로 물러났다. 사나운 꿈자리가 기품에 닿는 순간, 누군가의 행보는 순환적으로 기록될 것이다.
제삼자로서의 나는 평판이 우수할지, 그런 것과 상관없이 평소를 움켜쥘지, 성가신 생각에 가시가 돋았다. 그 끝에 번뜩이는 사유가 내친 빛이 회오리친다.
시간의 증명을 받고 나서야 온전해지는 대상들의 무대가 춤으로, 실속 차린 겉으로 드러날 때 귀에 익은 말 무진장 들려온다.
“상자를 닫은 후 펼쳐진 세계가 얼마나 쓸쓸하더냐.”

야윈 수풀을 헤치는 건 최근 삶에 보탬이 되었다. 옷소매가 헤질 때쯤 해는 지고. 어둑한 시간대에 감별을 넘어뜨린 지고지순한 감정을 눈앞에 두었다.

유석주, Guardian, 100 x 40cm, 캔버스에 연필, 먹, 유채,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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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석주, 관망, 72 x 100cm, 장지에 연필, 먹, 유채,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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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는 굳이 흔들릴 필요까진 없었어. 결국 그렇게 됐지만. 자못 안쓰러운 상황에 돈독한 유대라도 생긴 건지. 앉은 상태에서 돌연 자세를 바꿨다. 영 불안한 뜀박질이 곡선을 그리길 바라며 토한 질주가 고장 난 신문물을 연상시켰다. 가없이 신물이 난다.

언젠가 쓸 일이 있겠다, 싶어 남겨둔 부정이 날 데리고 어디를 가나. 말 속에 담긴 굵은 뼈가 질긴 업력을 드러낼 때 햇수로 오 년, 적자인 품에 적잖은 소금 결정 들어찬다. 희고 각진 그것들이 떼로 빛나며 모조리 떨었다.

유석주, 7월 16일 놀이터, 38 x 45cm, 장지에 연필, 먹, 유채,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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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다가 만 날. 흐린 건 눈엣가시다. 개운함이 가신 기분에 기우뚱 기운 첨탑과 역류하는 화분이 들어찬다. 처음은 아니지만, 어느 시점부터 잘못된 느낌에 불과한 오후. 그것의 미덕은 미추와 한참이나 동떨어진 데 있다.
“어렵사리 의식의 한복판에서 솟구치는 의욕이오.”

이와 맞설 천장은 바닥부터 살아왔다. 저 너머에 사람을 구슬리는 무언가가 있다고 외친 이는 조금 엷고도 깊은 잠에 빠졌다. 한동안 깨지 않을까. 이것이 대수로운 영원인가.

유석주, Our Home, 72 x 92cm, 장지에 연필, 먹, 유채,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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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맞닥뜨렸지, 뭡니까. 나는 참으로 아연해 보기 좋게 굴러떨어졌죠. 무엇과 대면했고, 어디로 추락했는지 뒤늦게라도 밝혀봄 직하지만, 흥미롭지는 않은 일. 그래도 그 구덩이는 실제더군요. 실수로 빈 소원이 있다고 해도, 빈 수레는 여전한 공터.

무거운 몸 일으켜 주로 나이보다 오래된 음식물을 섭취하러 떠나는 채집을 상상한다. 그 속에 눈을 씻고 찾아보면 사람 서넛쯤은 실재한다. 외마디가 몇 마디로 불어날 때마다 난 그들을 생각한다.

유석주, White Village / Green Village, 117 x 80cm, 캔버에 연필, 먹, 유채,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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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석주, Layer, 53 x 73cm, 순지에 연필, 먹,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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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을 이유가 없는 날이 계속되었다. 주위에 떠도는 소문의 수는 급감했다. 어째 시시한 기분이 들어 평소와 조금 떨어져 걸었다.
‘숱한 행위와 반복적인 여름은 오래된 꿈을 추었다. 또한 제법 추스른 상태로 얕은 춤을 꾸었다.’
이래저래 어떻게 하여도 결국 마찬가지인 시도라, 탁자 위 고독이 상하지 않기만을 바랐다. 흙먼지 바닥이 떠오르는 건 어느새 눈앞이 낡은 오두막이 되었기 때문. 한 세기 전 거친 토양에 자리 잡은 인물의 곤란함을 서둘러 주머니에서 꺼냈다. 이젠 절반도 남아있지 않은 그것을 시간 들여 손으로 문지르자, 탁한 낯빛이 점점 어두워졌다.

껴안을 핀잔은 내겐 없다. 추구의 고향, 먼 곳의 도시.
이름 없는 사람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복구하는 이에게 어울릴 법한 말 둘.
현재 말썽인 부위를 꼽으려 하면 두 수 뒤로 물러난 발현자를 찾아야 할 판이다. 그와 나누었던 토로에 매몰찬 시선뿐이었다고 선을 그었다. 어떤 안팎도 구분 짓지 못한 선고를 허공에 내렸다.
그는 형편없이 비었다.

유석주, 긋기, 53 x 73cm, 순지에 연필, 먹,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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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석주, 만남, 28 x 22cm, 캔버스에 연필, 먹, 유채,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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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문 여는 소리가 났다. 아무도 해독하지 못한 문자가 적혀있을 법한 널빤지의 이동이 이루어졌다. 소리로 보낸 세월은 모난 충족. 만족스러운 것이 없다. 누군가가 나를 기억하던가. 이에 조금 놀란 마음을 타념의 뒤편에 두었다.
‘분실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이 말을 곱씹으며 비로소 물질로 타들어 간 속을 물질하였다. 줄곧 바깥을 전전하다가 겨우 실내로 들어온 손은 계층으로, 절대 개인이 될 수 없는 사람들로 규정되었다. 외진 마을이 송두리째 사라진 듯한 기분이 한쪽 뺨에 얹혔다. 지금까지의 절망이며 앞날의 전망 또한 그르다.  

보란 듯이 기대에서 벗어난 상황은 몸소 겪지 않아도 상관없다. 지치든 말든. 말로로 멍든 이의 첫 무렵은 충동적으로 열렸다고 움푹 파인 곳을 메우며 상당수는 생각한다.
아껴 떠올릴 대상의 대안적 피안이 되는 길을 파악하기도 전 불거진 충돌. 앞서 열린 문이 닫히던 참이었다. 이제 벽이 되긴 글렀다며 방문을 머리 뒤에 둔 채 문지방을 사뭇 외롭게 보았다. 고독의 풀이는 부딪침으로 시작되는지도.

유석주, Collision, 61 x 50cm, 캔버스에 연필, 먹, 유채,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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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unggue Yang
seunggue Yang

새로운 아침을 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