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공간명 고결 문경
- 주소 경북 문경시 가은읍 양산개5길 5
- 오픈일 2023
- 건축사 고결건축사사무소
- 인스타그램 @gogyeol_official
경상북도 문경 가은읍. 1960~80년대, 이곳은 한국 산업화의 한 축이었다. 은성광업소를 중심으로 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았고, 거리 곳곳에 탄광과 대장간이 빼곡했다. 대장간은 사람들의 삶 가까이에 있었다. 농기구를 고치고, 생활 도구를 만들던 곳. 불꽃이 튀고 쇠를 두드리는 소리가 마을의 일상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탄광이 문을 닫으면서 마을의 시간도 느리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인구는 빠르게 줄었고, 대장간은 문을 닫은 채 먼지를 뒤집어썼다. 그렇게 20년 넘게 멈춰 있었다.

고결, 폐대장간의 두 번째 삶
그 멈춤을 다시 움직이게 한 이름, ‘고결’.
고결은 폐대장간을 문화 스테이로 다시 살려낸 프로젝트다. ‘높고 깨끗하다’는 뜻, 그리고 ‘옛것의 새로운 결’을 찾아가는 의미를 담았다. 낡은 흔적을 지우지 않고, 그 위에 새로운 숨결을 얹는다. 시간을 덧칠하지 않고, 시간을 드러낸다.

문경 지역과 함께 만든 로컬 스테이
고결은 지역과 함께 만들어졌다. 문경의 한지 장인, 도자기 작가, 천연염색 장인, 누빔 공예가, 다예사, 로스터리, 로컬 아티스트까지. 20여 팀이 이 공간을 채웠다.
창호와 조명, 가구에는 국가무형문화재 한지 장인이 만든 문경 전통 한지가 쓰였다. 부드럽고 따뜻한 한지의 빛이 고결의 공기를 만들었다. 문경 도자기 장인들이 만든 찻잔과 접시도 이곳에서 직접 사용된다. 장식용이 아니라, 머무는 사람들이 손에 쥐고 매일 쓰는 물건이다. 천연 염색과 누빔 공예로 만든 홈웨어는 객실 곳곳에 놓였다.
다예사의 티 클래스, 지역 커피 로스터리의 향까지 작은 순간마다 문경의 온도가 스며 있다. 어메니티에도 문경 산새가 담겼다.

대장간의 구조를 살린 건축 리노베이션
건축도 이곳을 품는 방식을 고민했다. 대장간이 있던 자리, 대들보와 서까래, 툇마루를 남겼다. 먼지 아래에서도 여전히 따뜻한 온기를 가진 목재들은 고결의 공간을 새롭게 지탱했다. 하루를 따라 빛이 변하고, 툇마루 너머로 바람이 지나가는 풍경. 고결은 그 흐름을 그대로 살렸다.
문경 한지는 이 공간을 결정짓는 건축 언어가 됐다. 창호, 조명, 가구는 물론이고, 공간의 숨결을 바꾸는 요소가 되었다. 도자기는 한지의 결을 따라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전통적인 공간 구성도 현대적으로 풀었다. 옛 대장간은 일터이자 삶의 자리였다. 고결은 그 위계와 흐름을 공용 라운지와 객실, 실내와 정원의 관계로 새롭게 짰다.


정원은 문경의 풍경을 그대로 옮겼다. 밭을 나누는 자연석 밭담을 정원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 인위적으로 다듬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 재래종 식물과 오래된 소나무가 함께 자라며 고결의 풍경을 완성했다.


지역과 함께 만든 지속 가능한 공간
고결은 지역과 함께 시작했고, 지금도 함께 움직인다.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가기 전, 3일간 팝업 전시를 열었다. ‘옛 대장간을 떠나보내고 새로운 탄생을 맞이한다’는 주제로 마을 사람들과 마지막 시간을 함께했다. 코로나19 시기였지만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곳을 찾았다.
이곳에서 만나는 작품과 제품은 모두 구매할 수 있다. 머물렀던 순간을 집으로 가져갈 수 있다는 뜻이다. 고결은 단순한 기념품을 넘어서, 지역 장인들의 창작이 계속될 수 있도록 구조를 만들었다. 지역 문화를 소비하는 방식이 아니라, 지역의 손길이 일상 속에서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다.

고결은 건축이 지역을 살릴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방치된 건물의 숨은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지역의 고유한 문화를 새롭게 해석해 다시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방식. 낡았다고 버려지는 건물에서 오히려 새로운 경험이 태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
한때 대장간이 마을의 일상을 지탱했다면, 지금 고결은 문경에 다시 온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하고 있다. 지역 조사 2년, 공사 8개월, 그리고 지금. 오래된 시간 위에 새롭게 쌓인 고결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문경의 또 다른 풍경을 만들어 갈 것이다.
자료 제공 Gogyeol Architec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