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기간: 2024. 09. 04 – 2024. 12. 14
- 장소: 화이트 큐브 서울
- 주소: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45길 6
- 시간: 화~토 10:00-18:00 (일, 월 휴관)
- 문의: 02-6438-9093
화이트 큐브 서울이 선보인 멕시코를 대표하는 아티스트 가브리엘 오로즈코의 개인전은 그의 회화와 2021-22년 연작인 ‘Diario de Plantas(식물 도감)’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팬데믹을 계기로 시작된 오로즈코의 ‘식물 도감’ 시리즈는, 도쿄와 멕시코 등지에서 수집한 나뭇잎과 그 흔적을 기록하는 독특한 작업이다. 오로즈코는 식물의 잎맥을 노트에 판화처럼 새긴 후, 과슈, 템페라, 잉크 등의 다양한 매체로 덧그림을 더해 식물과 인간의 상호작용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했다. 그의 작업은 일기처럼 한 장 한 장 염색되어, 작품을 바라보는 이로 하여금 자연과의 대화를 유도한다. 각 페이지에 일정한 고유 번호와 제작일을 기입하고 히라가나로 표기한 인장을 찍어두는 오로즈코의 작업 방식은, 작품이 하나의 기록이자 예술적 탐구의 과정임을 보여준다.

생명의 움직임을 포착하다
오로즈코의 ‘식물 도감’ 연작은 단순히 식물의 생명력을 재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작가는 팬데믹으로 도쿄에 머물며 일상처럼 식물 채집을 반복했고, 이 과정에서 나뭇잎 하나하나에 자신의 움직임과 일상의 리듬을 기록했다. 작품 속 잎맥의 미세한 구조와 지면을 타고 번지는 물감의 흔적들은, 작가가 도쿄와 멕시코를 오가며 겪었던 도시 이동의 과정과도 닮아 있다. 그가 보여주는 ‘움직임’은 잎맥을 따라 흐르는 물감의 유연한 길이자, 작가의 발걸음을 담은 미세한 흔적이다. 이렇게 식물의 잎맥과 화려한 색채가 섞인 작품들은 단순히 하나의 도감이 아닌, 작가의 일상적이고도 시적인 ‘시간의 기록’이 된다.

식물, 나뭇잎 그리고 동물: 자연과 인간의 접점
‘식물 도감’ 외에도, 이번 전시에는 작가가 동물과 식물을 결합한 독창적인 회화 작품들이 함께 선보인다. Lion Fish(라이언 피쉬), Guapo Fish(구아포 피쉬), Warrior Fish(워리어 피쉬)와 같은 회화 속에서는 나뭇잎 프린트와 물고기, 동물의 줄무늬가 만나며 독특한 조화를 이룬다. 배경에 도식화된 나뭇잎 패턴은 구조적인 형태를 띠며, 그 위로 동물적 형상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강렬한 붉은색과 금색의 터치가 더해져 동물의 사자 갈기 같은 가시와 지느러미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작품에서 등장하는 각종 패턴들은 자연의 유기적 질서를 반영하면서도 예술적 질서로 재구성된다. 오로즈코의 이러한 접근은 단순한 자연물 재현을 넘어선 새로운 생명의 스펙트럼을 제시하며, 인간이 자연을 새롭게 바라보도록 유도한다.

금박과 물감의 변주
오로즈코는 두방지와 같은 일본 전통 종이를 바탕으로 금박을 입히는 작업을 즐겨 사용한다. 금박이 주는 독특한 빛 반사는 관객의 움직임에 따라 시각적 효과가 변화하며 작품에 생명력을 부여한다. 두방지는 수묵화와 하이쿠, 일본 전통 예술에서 자주 사용하는 소재로, 오로즈코는 이 소재를 통해 전통과 현대를 이어주는 예술적 다리 역할을 하고자 한다. 그의 작품은 관객과 함께 살아 숨 쉬며, 보는 이가 어느 방향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양한 느낌을 자아낸다. 이처럼 오로즈코는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미적 실험을 통해 그의 독창적 표현을 계속해서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자연을 담은 회화
이번 전시작은 오로즈코의 과거 연작에서 나타났던 패턴과 색채의 상호작용을 연상시키며, 작가가 오랫동안 추구해 온 자연과의 소통을 지속한다. 그의 대표 연작인 ‘Suisai’와 ‘Samurai Tree’는 체스의 규칙을 활용해 대조적인 색의 조합과 원형 모티프를 통해 색과 형태의 대화적 균형을 선보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두 연작의 역동성을 발전시켜, 생명력을 나타내는 세밀하고 정교한 패턴으로 자연을 묘사했다. Guapo Fish와 Warrior Fish는 이러한 연속성을 보여주면서도 한층 진화된 기법으로 탄생했다. 작품에 담긴 자연의 구조적 패턴은 고정된 틀에 얽매이지 않고 생명의 탄생과 성장, 변화의 과정을 표현하며 끊임없는 생명의 순환을 상기시킨다. 이러한 순환은 예술 창작의 과정과도 일맥상통하며, 오로즈코는 이를 통해 자연과 예술의 상호작용을 심도 있게 고찰한다. 오로즈코의 작품은 우리가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일상 속 자연과 그 안에 담긴 무한한 이야기를 일깨우며, 이를 통해 인간과 환경의 상호 관계를 재조명한다.
작가 소개
가브리엘 오로즈코는 1962년 멕시코 베라크루즈에서 태어나 도쿄, 멕시코시티, 뉴욕을 거점으로 작품 활동을 이어가며 전 세계의 예술계에서 그 입지를 다져왔다.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2012)과 아메리카 소사이어티의 문화공로상(2014) 등 다양한 상을 수상한 그는 멕시코시티 차풀테펙 공원 재생 프로젝트의 예술 감독으로 활동하며,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모색하는 다양한 프로젝트에 기여하고 있다. 세계 유수의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전시된 그의 작품은 시공간을 초월한 예술적 실험을 통해 관객에게 깊은 울림을 전한다.
자료 제공 화이트 큐브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