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색이 주는 힘은 우리의 감각과 감정을 조율한다. 도쿄 기반의 건축가이자 아티스트, 디자이너인 엠마누엘 무로(Emmanuelle Moureaux)는 이를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는 인물이다. 그녀는 20년 넘게 ‘shikiri’, 즉 색으로 공간을 나누고 창조하는 개념을 발전시켜왔다. 이제 그녀의 52번째 ‘100 COLORS’ 프로젝트, ‘MIRAGE’가 구글 본사(미국 마운틴뷰 캠퍼스)의 새로운 얼굴이 되었다.

60m 길이의 대형 아트 인스톨레이션 ‘MIRAGE’는 구글 본사의 여러 입구를 감싸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컬러의 흐름을 연출한다. 금속성의 얇은 타원 패널이 겹겹이 쌓여 멀리서 보면 0(제로)처럼 보이지만, 옆에서 바라보면 1(일)로 변하는 디자인이다. 디지털 세계의 기본 언어인 이진법(Binary Code)을 형상화한 이 구조는 구글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동시에, 한 방향에서의 시각적 경험이 다른 시점에서는 전혀 새로운 형태로 다가오는 착시적 효과를 만든다.



출근길을 예술로 물들이는 색채 경험
이 작품의 진정한 매력은 움직임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는 색채의 조화에 있다. 아침 출근길의 단조로운 풍경 속, 눈앞에서 펼쳐지는 100가지 색의 향연은 마치 흐르는 시간 속에서 감정을 깨우는 시각적 음악처럼 작동한다. 빨강과 노랑, 파랑과 초록이 겹치며 형성하는 그라데이션은 보는 각도에 따라 전혀 다른 감각을 자극한다.
현대 사회에서 제품과 공간이 점점 무채색(그레이시)으로 통일되는 경향을 보이는 가운데, 모로는 다양한 색의 존재를 축하하며, 우리가 개성을 잃지 않고 함께 나아가야 함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그녀는 “색이 만들어내는 환영(MIRAGE)이 보는 이들의 마음속에서 꿈으로 승화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100가지 색이 만든 무한한 공간
이 작품이 특히 의미 있는 이유는 단순히 아름다운 색채 때문만이 아니다. 디지털 세계의 무한한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상징하기 때문이다. 작품 속 타원형 구조물은 구글의 상징적 개념인 구골플렉스(Googolplex, 10의 100제곱이라는 어마어마한 수)를 은유하며, 작품이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각 입구마다 섬세하게 계산된 패널의 배치는 0과 1의 형태를 순식간에 변화시키며, 무한성과 유한성의 경계를 흐리게 만든다.



색으로 공간을 나누고, 감정을 디자인하다
엠마누엘 무로는 유니클로(UNIQLO), 이세이 미야케(ISSEY MIYAKE), 국립 신미술관(The National Art Center, Tokyo) 등과 협업하며, 색을 통해 공간을 새롭게 정의하는 작업을 이어왔다. 도쿄의 복잡한 거리에서 영감을 얻어 시작한 그녀의 ‘shikiri’ 철학은 단순한 장식이 아닌, 공간과 사람, 감정을 연결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MIRAGE’는 구글이라는 거대한 기술 기업의 상징적인 공간에서, 기술과 인간의 감각을 조화롭게 연결하는 색의 언어다. 오늘도 그 앞을 지나는 사람들은 자신만의 시점에서 이 작품을 경험하며, 새로운 영감을 발견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