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전시명 2025 묵선전(墨線展) 《소리 없는 잔향》
- 기간 2025.12.11 – 12.27
- 장소 충무로갤러리
- 위치 서울특별시 중구 퇴계로 27길 28, 한영빌딩 B1
- 시간 화-금 11:00-19:00 / 토 11:00-18:00 (25일 휴관)
묵선전은 언제나 조용하다. 그러나 이 전시는 늘 오래 남는다.
2003년부터 이어진 묵선전은 동양화라는 이름 아래 묶이기보다, 선과 먹이 만들어내는 감각의 장을 꾸준히 확장해왔다. 올해로 스물두 번째를 맞은 묵선전의 제목은 《소리 없는 잔향》. 말 그대로, 소리는 없지만 분명히 감각되는 어떤 울림을 전시장 안에 풀어놓는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17명의 작가(권소영, 김모연, 김수진, 김연수, 김용원, 마동원, 라오미, 박아름, 서요한, 신지혜, 유초원, 이윤하, 이현호, 좌혜선, 정서인, 조기섭, 지민석)는 각기 다른 매체와 태도로 ‘경계’를 그린다. 화면 위에 놓인 선은 형태를 규정하기보다 머문다. 먹은 설명하지 않고 번진다. 이 경계는 선명한 구분이 아니라, 서로 스며드는 상태에 가깝다. 그렇게 만들어진 흔적은 관객에게 닿으며 또 다른 잔향이 된다.

《소리 없는 잔향》이라는 말은 논리보다 감각에 가까운 언어다. 동양화가 오래도록 다뤄온 의경(意境)의 세계 역시 그러하다. 보이는 것 너머의 기운, 설명되지 않는 감각, 이미지가 끝난 이후에도 남는 여운. 이 전시는 그 여백을 비워두는 대신, 차분히 열어둔다.

사르트르의 개념을 빌리자면, 인간은 스스로를 끊임없이 인식하고 해석하는 존재다. 그러나 예술 앞에서만큼은 그 인식이 잠시 느슨해진다. 묵선전이 만들어내는 장은 관객을 해석자 이전의 상태로 되돌린다. 선을 읽기보다 따라가고, 의미를 찾기보다 머문다. 그 순간, 우리는 잠시 ‘존재한다’는 감각에 가까워진다.

충무로갤러리 지하 공간에 펼쳐진 이번 묵선전은 빠르게 소비되는 이미지의 속도와는 다른 리듬을 제안한다. 크게 말하지 않고, 강하게 주장하지도 않는다. 대신 선 하나, 먹의 농담 하나가 천천히 공간을 채운다. 전시장을 나선 뒤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소리 없는 잔향은 작품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관객의 감각을 지나, 일상의 호흡 속으로 조용히 스며든다. 이 전시는 바로 그 지점을 믿고 있다.
자료 제공 신지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