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렉션의 초상: 피노 컬렉션이 그리는 시대의 얼굴

  • 기간: 2024. 09. 04 – 2024. 11. 23
  • 장소: 은아트스페이스
  • 주소: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 441
  • 시간: 월-토 11:00 – 18:30 (일, 공휴일 휴관)
  • 문의: 02-3448-0100

캐롤라인 부르주아 큐레이터가 기획한 이번 전시 《Portrait of a Collection: Selected Works from the Pinault Collection》는 피노 컬렉션의 핵심 작품 60여 점을 엄선해 선보이며, 파리 부르스 드 코메르스에서 열린 개관전 《우베르튀르》의 철학을 한국에서 이어간다. 이 전시는 세대와 경력을 넘어서 다양한 작가들의 개성과 작품 세계를 동등하게 조명하고, 피노 컬렉션이 추구하는 예술적 ‘동반자 관계’를 더욱 풍부하게 담아낸다. 피노 컬렉션의 철학은 ‘시대를 관통하는 예술적 대화’라는 주제에 중점을 두고, 작품을 단순히 소장하는 것을 넘어 작가의 예술 여정과 함께 호흡하는 데 있다.

1층 전시 전경. 안 보. 2024.

전시는 베트남 출신 덴마크 작가 얀 보의 작품들로 시작한다. 그는 베트남 전쟁 이후 해로를 통해 망명한 보트피플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고통과 이동이라는 필수적인 인간의 조건을 탐구한다. 십자가와 빅토리아 여왕 초상 등 서구 문명의 상징물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며, 작가는 현대 사회의 근본적인 모순을 날카롭게 묘사한다. 얀 보의 작품은 마치 현대인의 집단 무의식 속에서 잊힌 고통의 기억을 시각화하는 장치와도 같다.

오디토리움 전시 전경. 안리 살라. 2024.

오디토리움으로 들어서면 안리 살라의 영상 작품 〈1395 Days Without Red〉가 상영된다. 알바니아 출신인 그는 보스니아 전쟁 당시 사라예보 포위전의 참상을 음악적 언어로 풀어낸다. 전쟁 속에서 생존을 위해 빨간 옷을 피해야 했던 사라예보 주민들의 현실을 반영한 이 작품은, 도시를 가로지르는 여성과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가 교차하며 대비되는 감정을 강렬하게 전달한다. 두려움과 희망이라는 상반된 정서가 음악과 호흡으로 표현되며, 관객은 시공간을 초월한 인간의 본능과 연대를 느낄 수 있다.

2층 웰컴룸 전시 전경. 데이비드 해먼스. 2024.

2층과 3층에서는 데이비드 해먼스의 작품이 전시된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작가인 해먼스는 주류 미술계와 거리두기를 유지하며, 가속화된 소비주의와 사회적 불평등을 비판하는 독자적 언어를 구축해왔다. 종이 드로잉부터 일상 오브제를 활용한 아상블라주 작품까지 그의 작업은 사회적 현실을 비판하고, 미술의 전통적 문법에 도전한다. 이 전시는 특히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해먼스의 작업 세계를 종합적으로 탐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그의 작품이 지닌 상징성과 감수성을 강조한다.

3층 전시 전경. 줄리 머레투. 아니카 이. 2024.

회화 작품들도 눈에 띈다. 미리암 칸과 피터 도이그는 각각 페미니즘과 역사적 장소성을 중심으로 작품을 전개하며, 관람객이 각기 다른 시각적 경험을 하게 만든다. 칸은 캔버스 위에 세속적인 고통을 강렬하게 그려내며, 도이그는 정체되지 않은 장소에서 인간의 흔적을 찾으며 순수한 시각적 경험을 전한다. 한편 마를렌 뒤마와 뤽 튀망은 인종, 성차별, 그리고 인간의 원초적 감정을 탐구하며, 사회적·개인적 트라우마를 다양한 매체로 표현한다. 뒤마는 인간의 내면을 깊이 파고들며, 튀망은 역사적 이미지를 재구성해 우리 시대의 복잡한 감정을 회화에 담아낸다.

2층 전시전경. 라이언 갠더. 2024. Loaned courtesy of Diane Solomon.

마지막으로 라이언 갠더의 쥐 시리즈 〈The End〉(2020)가 전시의 분위기를 전환한다. 갠더는 작고 순수한 목소리를 통해 인류가 직면한 거대한 문제를 철학적으로 접근하며, 관객을 무릎 꿇게 만들 만큼 인상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마지막에 관객은 도미니크 곤잘레스-포에스터의 작품 〈Opera (QM.15)〉를 통해 미국 전설적인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의 유령 같은 홀로그램 공연을 감상한다.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이 작품은 예술이 어떻게 인간의 감정을 영원히 붙잡아두는지 보여주며, 전시의 대미를 장식한다.

피노 컬렉션은 예술을 통해 시대와 장소를 잇는 끊임없는 대화를 만들어내며,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재가 과거의 연장선임을 은유적으로 환기시킨다.


자료 제공 송은아트스페이스, STUDIO JAYBEE(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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