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을 담은 세 작가의 이야기 《기억의 총량》

  • Date: 2024. 07.19 – 08.10
  • Place: 다이브서울
  • Location: 서울 광진구 용마산로1길 65 2층
  • Hours: 월 – 토 13:00 – 19:00 / 수 ~20:00
  • Contact: @dive.seoul.art / 0507-1337-8055

이홍준, 바람도 찬찬히 유영하는, 캔버스에 유채, 162 x 112cm, 2024
이미지_양승규

바람도 찬찬히 유영하는 것이다.

그것이 모이는 자리에 손을 내밀면 언젠가 돌이킬 만한 기억이 등 뒤로 후드득 떨어질 것만 같아 공연히 얼굴을 찌푸렸다.

‘삶이 점점 묵음으로 나아간다고 해도, 이를 별수 없다고 여기는 게 울창한 체념의 징조일지.’

구겨진 인상은 얼마 가지 못하고 활짝 피었다. 이와 어울려 예보 없는 생각이 잔뜩 낀 기분은 맑게 개었다.

이홍준, 바람이 모이는 자리에 손을 내밀면, 나무 판넬에 유채, 61 x 61cm, 2024
이미지_양승규

미처 깨닫지 못한 기분은 횡으로 걷는다. 물살을 헤집던 때가 고스란히 걸음걸이에 묻어 나와 그 뒤를 눈으로 좇고.

졸음에 겨운 해변에 꿈으로 장식된 나무의 떼가 풍경을 이루고 있다. 천천히 고개를 꾸벅거릴 때마다 바람에 바스락거리는 이파리들의 외침이 들리는 듯하다.

두 눈을 감아도 양 볼은 여전히 바람을 마주하며, 허공에 뜬 손이 무심코 움켜잡은 금싸라기. 그것은 엷은 빛을 면할 터다.

윤정윤, 마음 – 1, 2, 3, 4, 캔버스에 아크릴, 53 x 45..5cm, 2024
이미지_양승규

높다란 하늘이 유독 낮게 느껴진 때가 있었다는 말을 무미건조하게 뱉고.

일상의 무던함이 무기한 연장되길 바라며 오락가락하는 날씨에 기분을 대입해 하루에 걸친 복잡한 수식을 제거한다. 이제 내게 남은 건 평이한 문제들뿐.

손끝에 닿을 무게란 두꺼운 책을 구성하는 낱장의 그것이었다.

윤정윤, 마음 – 1, 2, 3, 4, 캔버스에 아크릴, 53 x 45..5cm, 2024
이미지_양승규

잠시 한눈판 사이에 언덕을 오르는 중이었는지, 내려가는 중이었는지 알 수 없게 된 사람의 텅 빔은 주변에 또 다른 반향을 선사했다. 그곳은 도무지 내 발끝이 못 미치는 곳.

그를 닮은 방의 분위기는 호젓하고. 그 안에서 때론 정적이 흐느끼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혀도 바닥에 가로누운 나는 일어날 생각하지 않는다. 눈과 평행을 이룬 천장은 하늘에 어정쩡하게 떠 있는 구름을 연상시킨다. 그것이 소나기를 품었든, 우기를 품었든 비가 쏟아지는 건 언제나 머릿속에서.

마음에 새겨진 지문은 누군가의 존재를 증명한다.

이연진, Walls (1)-2, 광목에 유화, 아크릴 등의 흔적, 바인더, 혼합재료, 185.4 x 170cm, 2023
이미지_양승규

그와 허물없이 이야기 나눌 정도로 친분이 있지는 않았지만, 정황상 대화는 마땅한 일이었다. 마치 사물의 시비를 가리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사건의 진행은 매끄러웠으며 서로의 모난 구석은 광활한 모래밭에 물웅덩이처럼 드물었다.

이름 없는 사막, 입으로만 전해지는 오아시스가 멀뚱히 구설에 오른다.

“내가 무심코 무너뜨렸던 것들에 대해 생각할 때면, 왠지 둥근 기분이오. 더 이상 묘사할 수 없는 감정에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한편으론 수더분하게 웃소.”

그가 말했다. 그와 두터운 관계가 되리란 것은 서로에게 던져진 사실인지도 모른다.

seunggue Yang
seunggue Yang

새로운 아침을 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