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 《누구나 스스로를 혐오한다》 강철규, 박희민, 성재윤, 윤결, 이립, 이현수

《누구나 스스로를 혐오한다》강철규, 박희민, 성재윤, 윤결, 이립, 이현수, 뮤지엄헤드, 2025.12.09 – 2026. 02.07, 이미지_양승규
  • Date:  2025.12.09 – 2026. 02.07
  • Place:  뮤지엄헤드
  • Location: 서울 종로구 계동길 84-3
  • Hours: 12:00 – 19:00 (일, 월 휴관)
  • Contact:https://instagram.com/museumhead_

박희민, 고도를 기다리며, 2025, Urethane, charcoal, pipe, sillicone, fabric, screw, 149(h) x 80 x 79cm, 이미지_양승규

장소에 맞지 않은 옷차림은 결핍에 갇혔다. 좋게 보면 우스운 일이다. 말 없기가 힘든 상황에서 침묵을 고수하는 이는 군중에 둘러싸일 일이 없을 터다. 그가 택한 침묵에 어엿함을 주리라.
부동의 움직임은 한 번 보고 말 사람과 같은 위치에 놓였다. 누군가 이를 두고 목 놓아 울기도 했지만, 그 울음은 습관에 섞였다. 잘못 동봉된 편지처럼 어정쩡하게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는 사람이 되어 주전부리에 힘쓴다. 쉽게 거르곤 한 끼니가 때때로 견딜 수 없다. 안부가 된 언사. 모두 각자 어디쯤을 겪는 중일까.

박희민, 킬리만자로의 눈, 2025, Urethane, charcoal, pipe, sillicone, fabric, screw, nail, etchant, 159(h) x 36 x 52cm, 이미지_양승규

하나는 백으로 번진다.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다른 사람을 무릅쓴다. 옳고 그른 거 위에 부드럽고 딱딱한 게 있다. 부서질 듯한 표정은 상자가 무너질 때 틀림없이 등을 세웠다. 몹시 추운 날이라도 버젓이 해가 떠 있다면, 생각은 평년에 웃돌았다. 쏟아지는 햇빛, 그것으로 속을 데울 수 있었다. 양지를 편편하게 고른다.

강철규, 사냥일지, 2023, oil on canvas, 227.3 x 145.5cm / 이방인과 표식자, 2025, Oil on canvas, 227 x 364cm 이미지_양승규

올곧은 형태는 모습을 추린다. 앙상한 나무의 잔해가 부쩍 살이 올랐다. 어제보다 반 뼘 정도 낮아진 하늘이 어떤 연유로 그러했는지 알 도리가 없다.
낡은 지붕은 변변치 않은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고꾸라진 일대를 기억에 불러일으킨다. 이곳은 한때 횟수로 호수였다. 모두 두 숨으로 날았다. 인접한 세계마다 이제 막 타오르기 시작한 모닥불로 저녁에 가까워졌다.
문득 생각에 잠기는 버릇은 야생의 성격인지, 혹은 그 반대인지 정하지 못해 단지 야성의 연장이라고 해두었다. 두 손을 비벼 지핀 온기가 언제까지나 나와 함께하기를.
연기에 언어가 섞여 대책 없이 피어오를 때 저 멀리서 이를 짐작한 이의 발소리가 들린다.

성재윤, 재윤과 석웅, 2025, Pigment prints on wall, 376 x 496cm 이미지_양승규

뭉뚱그려 살아도, 누군가는 여전히 팔 벌려 뛰고, 곳곳에 가능성은 즐비하지만, 그것들 전부 견고하게 닫혀 있을 때, 이를 과연 가능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고민하는 순간은 시체적이다. 그것이 두른 옷가지는 거적때기다. 거동이 불편한 풍경은 분명 어디에 매여 있을 터다.
정도껏 슬픈 소낙비가 온전하지 않은 낙엽 하나 잠기게 하지 못한다. 태풍은 거절의 뉘앙스로 의식을 흐린다. 악한 심정은 단비가 되어 그저 험한 인상을 닦고, 마른 세상에 달갑지 않은 건기는 역시 건초더미 위에서 친절을 논한다. 공중. 모든 것들이 절대 무뎌지지 않을 공중.
“이건 또 어디서 가져온 애먼 표상이야?!”

이현수, 호오오호오푸우우푸우 #1, #2, #3, #9, 2022, Soft patel on paper, 29.8 x 21cm 이미지_양승규

그 사물은 표정을 비우고 웃더니, 공교로운 무언가에 씐 듯 굴었다. 벽장과 층계참의 충돌은 머지않아 빚어질 일이었다. 이미 과거가 된 발생에 이와 무관한 것들을 버팀목인 양 그 앞에 가져다 놓는다.
추운 날 창가에 가까이 있으면 바깥의 호흡이 느껴져 그는 팔짱을 풀었다. 사실 그저 독립적인 행위인지도 모를 일이다. 마실 거리로 물이 갖는 보편성과 누구도 이를 저버릴 수 없다는 생각에 바짝바짝 입이 말라간다. 돌아오기만을. 도통 말이 없던 사람.
어수선한 방이 질서로 가득하다. 의미 없이 늘어놓은 물건들이 제각기 의미를 품어 한두 마디의 부화를 고대하는데, 현 상태에서 조금이라도 움직인다면 극도의 기다림이 꺾일까. 이렇게 이루어진 반절이 또 반절이 되고. 이 굴러감은 끝내 미소 짓지 못할 터다.

윤결, 우리의 아픔이 부디 신명이 되게 하옵소서, 2025, Single-channel video installation, 3 monitors, color, sound; digital color print on vinyl sheet, 6347 x 2450mm 이미지_양승규

불어오는 이치에 흩날리는 깃발은 탁한 빛깔의 무엇이다. 나는 선명함을 꿀뿐, 그것을 갚을 여력은 없다. 지금까지 쌓인 빚은 꾸준하게 몸집을 불렸지만, 어째 나를 삼키지는 못하는데, 그것도 취향이라는 게 있는지. 남은 수명 생각하지 않고 몹시 뻗대듯이 빛나는 전구가 가소로워 질근 눈을 감았다.
종이에 적은 글자가 한쪽으로 치우쳐 걷는다. 뒤집으면 위아래가 반대되는 세계를 나는 보았다.
품에 안고 타이를 사안이 있고, 그저 시멘트 빛깔의 거적이나, 재색 너부렁이 하나 던져두고 저리 가든지 말든지 할 의견이 있다. 감정을 묵과한다.
어떻게든 손 뻗을 때마다 닿던 위치가 갈수록 옅어질 때 이에 기울일 주의는 소식이 요원한 사람의 것인지도 모른다. 나도 몰래 부조화를 겪는다.

이립, 시달을 생각해, 2025, Onggi clay, plastic round basket, 137(h) x 668 x 1137cm, 이미지_양승규

정신없이 웃고 있는 사람을 지나쳐 목적지에 도착했지만, 그곳은 본래의 장소가 아닌 듯했다. 막다른 길에 부딪친 느낌이 이와 같다. 어느 사이 도달을 도둑맞았다.
흰 상의와 검붉은 하의의 조합은 어딘가 매여 있으면서도 한없이 자유로운 기분을 누락하기 충분했다. 극단에 선 감미와 고미. 목을 축이는 나날의 연속.
생각은 어느 환경에 사로잡혀 무른 땅에 솟대만 그저 꽂고만 있나. 본디 사물은 우습다.

seunggue Yang
seunggue Yang

새로운 아침을 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