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Date: 2024. 11. 07 – 2024. 12. 08
- Place: 성곡미술관
- Location: 서울시 종로구 경희궁길 42
- Hours: 화 – 일 / 10:00 – 18:00 (입장 마감 17:30)
- Contact: @sungkokartmuseum

이미지_양승규
고요한 일상을 비추는 장마 역시 고요하다. 고요에 고요를 더함으로써 취한 태도는 울음과 그을음 사이 어디쯤 놓였을 터다. 그 울음에 비가 내렸다고 한다. 그것도 한참이나. 될 수 있으면 깊게 눈을 감고, 사물의 밑바탕이나 누군가의 밑바닥을 생각하는 일은 역시 외골수에게 적합한 일이다. 그의 외곬이 거칠지 않기를 허투루 바랐다.
진한 차를 마시는 투로 하루의 전장을 삼켰다. 싸움터로 속을 데울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연쇄적인 일의 나열이 싱거운 기분에 젖게 하지만, 때론 시시껄렁함을 몹시 그립게 한다. 이젠 그것으로부터 멀리 떨어지고만 있는 형국이다.
새로운 환경을 더럽힐 낙서는 내게 없는 듯하다. 얼룩이 손끝에서 달아난 것처럼 상당히 난감한 때를 보냈다. 다시 나뿐인가 싶지만, 여태껏 그래왔다고 의식은 또렷하게 자신에게 전한다. 세월의 악순환. 얄궂구먼그래. 기억에 인접한 호수라든가, 강이 있다면 발목이 잠길 정도까지 천천히 걸어갈 것이다. 쳐다보기 전 무르익은 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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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한 느낌은 생각보다 좋았다. 취향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가 눅눅한 계절을 불러일으킨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기어코 그런 계절을 불러일으켰구나, 하고 한탄할 필요는 당분간 없다. 어디까지나 하루를 넘지 못한 당분간. 내일은 알 수 없다.)
의문을 팔아 치워 어느 종잣돈으로 쓸 테다. 홀가분한 기분과 두터운 지갑은 태가 좋았던 날을 떠올리게 하는데, 그날은 느지막이 시작되었다.
결함과 꽃의 노래. 서서히 울려 퍼진다. 주변은 무방비하게 예의 소리에 뒤덮이고 나는 방을 요새 삼아 어떤 침입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침묵은 어느 때보다 달다. ‘지금 베어 물면 적기인 과일, 그것의 당도는 최고다.’ 이런 실없는 생각도 내 편이 되어주기에 전혀 기분 나빠하지 않는다. 유쾌와 불쾌의 차이 아래 커다란 날갯죽지를 가진 새가 제자리 비행한다. 새로움이라곤 없는 시침과 분침이 아로새겼던 의미는 여전히 오후의 한때를 가리킨다.
“수줍다 못해 말을 잃은 사람한테 이름 불리길 바라는 건 어째 거추장스러운 느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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꼽사리 껴 지냅니다. 어디 좋은 것이 있으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꼭 그 주변을 기웃거리다, 결국 그것에 꼽사리 끼고 말지요. 어쨌든 이것도 하나의 성과입니다. 내가 거둔 수확이고요. 그래도 순수하게 기쁘지만은 또 않습니다. 수완은 좋으나 그래봤자 꼽사리 끼는 인생이니까요. 이렇게 우중충한 생각이 들 때마다 대청마루에 누워 내 생각을 밖으로 끄집어낸 듯한 구름을 노려보곤 합니다. 내리쬐는 볕이라고 할 게 무엇도 없으니, 눈이 시릴 일도 없습니다. 그렇게 누워있다 보면 배가 고픕니다. 이 배고픔은 식욕이 일지 않은 배고픔입니다만, 결과적으로 무언가 먹어서 허기를 달래야 한다는 점에서 평소와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엔 같은 거 천지입니다. 그러니 내 짝 만나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부디 그래 주시겠습니까?
많은 일을 많다고 할 수 없는 상황에 철저한 배신을 안겨주려다 바닥에 넘어지고, 구르고, 어딘가에 부딪히고 그랬습니다(이는 비유가 아닌 실제입니다). 성한 데 없는 몰골로 추레하게 웃습니다. 우스운 일을 떠올리지도 않았는데, 절로 웃음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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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특정 다수에게 꼬리가 생겼다. 나는 예외였다. 소외감 같은 걸 느끼진 않아도 적잖이 실망한 자신을 발견했다. 상당히 의기소침했는지도 모른다. 꼬리 가진 사람들의 평소는 둥글었다. 나의 일상은 사각으로 돌아간다. 실수라도 혀를 물지 않고 소득 없는 날에도 무표정 짓지 않으며, 의식적으로 하늘을 보았다.
구름이 이동하는 속도가 유독 빠른 날 나에게도 꼬리라든가, 혼자 있을 틈 없이 쏟아지는 사회성, 특별한 모양의 생활 같은 게 주어질까. 급히 처리해야 할 안건처럼.
절망에 내몰린 이의 한숨은 하나도 보편적인 구석이 없다. 그에게 사적인 대화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그건 꼬리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구별 없이 행해져야 할 터다.
먼 곳의 푸름은 설령 그것이 붉음이라고 해도 파랗게 질려 있어야 한다. 허공에 가로로 그은 선이 흐릿하게나마 보일 때 그동안 소홀했던 관계들을 생각했다. 짙은 시치미에 어안이 벙벙할 찰나 선명한 세로선 불을 밝힌다. 좌우로 번갈아 시선을 옮기는 이유에 대해 누군가는 감시라고 했다. 말투에서 더 이상 아껴선 안 된다는 판단이 배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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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연락이 올 때가 되었는데, 깜깜무소식이라 했다. 약은 꼭꼭 씹어먹어야 한다. 지금껏 면치 못한 외로움을 고독이라 하는 까닭은 단지 그것이 두 글자이기 때문이다. 별 시답지 않은 이유가 땅속에 깊이 파묻힌 돌부리 같기도 하다. 그것에 걸려 넘어질 때마다 이를 악물었다.
지난밤 난 분명 개의하지 못했다. 어둠 속에서 눈이 많이 내렸다. 천장은 자신보다 오래된 빛깔을 걸쳤다. 중심을 잃고 쓰러진 사람을 볼 때면 그를 최대한 온전하게 눈에 담았다. 그렇게 수집한 이들에서 공통점을 찾아 기억에 배양했다. 그 탓인지, 기억은 종종 무너진다.
“정들었죠. 이래저래 같이 어깨를 맞대고(서로의 턱을 괴고) 지내는 사이에. 그동안의 시간은 어쩌면 신체적 결함이나 정서적 불균형을 물리치는 단계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좌우지간 무언가를 견뎌낸 이후 채워질 건 채워지고, 그렇게 보다 완전해지며 균형 같은 것도 누구의 소원인 것처럼 이루어지는 단계. 이젠 그것을 계산 삼아 오른 후 그전에는 경험할 수 없었던 높이를 누리고만 있습니다.”
무심코 더 이상의 성장은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