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Date: 2025.12.12 – 2026. 02.14
- Place: 송은
- Location: 서울특별시 강남구 도산대로 441
- Hours: 11:00 – 18:30 (일요일, 공유일 휴관)
- Contact:https://instagram.com/songeun_official

기어코 한쪽 눈으로 그동안 까슬까슬하게 여겨진 감촉의 실체를 본다. 고집의 향방은 검고 푸르며 은연중에 나타났다가 의식적으로 사라지기도 한다.
생각에 몰두하다 보면 누군가의 인물됨을 잊고 저변의 가치나 외곬의 의수까지 놓친다. 텅 빈 하늘과 하늘의 텅 빔은 그토록 모양이 다를까.
진흙은 마르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에 여전한 정물을 묻힌다. 환희와 설움이 공존한다. 얼룩을 애써 닦은 자국, 자욱하게 눈앞에 펼쳐지고. 여백을 견디지 못한 공론은 헛간에 기대 타오르며 부지기수의 부지깽이가 때가 됐다는 듯 따로 움직인다. 그들이 척을 진 건 기껏해야 값진 세상이나 귀중한 세계.
방어적인 태도가 불러온 무관심은 그 흔한 외면과는 다르다고 말한 이는 양달에 떤다.
경직된 호소 위로 터져 나온 앎은 무지를 색다르게 변화시켰으며 끝내 도달할 것 같지 않던 경지에 발을 들이밀게 했다. 지금껏 적당한 날의 변천은 어떻게 되었나, 하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눈으로 현상을 쫓는다.
빨간 우체통의 뒷모습은 점점 발갛게 됨으로써 제 형태를 쥔다. 들판의 영원함과 사변의 무구함은 양팔이 생긴 의자와 같다. 그것의 꼴을 붙들 때가 나이라도 된 듯 어리다. 팔걸이에 어른거리는 성장은 시간을 괸 채 잔뜩 흐른 얼굴로 겨우내 꽁꽁 얼었던 호수를 부르다, 멎는다. 결과적으로 이른 시간이 된 출발이 내게 준 건 추호도 없다.
속이 쓰린 양상을 보고도 어떤 반응조차 하지 못한 까닭은 그저 젊었을 뿐이다.

도로 위에 세계의 밑단 같은 게 불지 않는 바람에 흔들리며 소리를 삼킬 때였다. 우수한 역량은 날씨에 삼켜진다. 어느 불길한 예언과 수명은 다한 전등이 이를 목격했다.
날은 갈수록 추워지고 머릿속에서 빚은 난로는 더 이상 새것이 아니었다. 난로 따라 날도 낡아갈까, 하는 생각은 주뼛거리며 코웃음 친다. 바로 옆에 흰 천을 걷으니, 그제야 모습을 드러내는 머릿돌. 그것은 습관처럼 곧 다가올 일을 암시한다.
‘밤이 되면 방은 죄다 창문으로 변하고, 커튼은 두툼한 가죽을 두른 짐승의 살갗이 되지.’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겉으로 보기엔 소박해 보이는 성이 하나 있는데, 원한다면 한 번 가보는 것도 좋아요. 번쩍거리는 뭔가를 찾을 수도 있으니.

사는 건 누구의 탓이 되어야 한다고 나무에 새겨져 있었다. 이곳은 산장임에도 문이나 벽은 새것이라고 할 수 없는 석회였다. 물론 산장이라고 해서 모든 게 나무일 필요는 없지만, 이런 편견과 같은 기대가 그를 줄곧 이끌었기에 그는 어제보다 눈에 띄게 텅 비어 보였고, 실제로도 그랬다.
유일하게 나무로 된 문턱에 기어코 자세를 낮춰 앞선 문장을 눈에 새긴 것이었다. 그는 보는 것보다 새기는 것을 선호했고, 이 둘은 분명 달랐다. 전자가 사교적 흘김이라면 후자는 완연한 응시였다.
응시를 마친 그가 뛰어 들어간 곳은 방안의 모서리에서 조금 떨어진 곳. 그래봤자 네댓 걸음 이동한 것이지만, 마치 세계의 끝에 떨어진 듯하다. 어차피 산장 안에 피치 못할 사정이 매서울 정도로 모여든다.

그을린 동상은 한두 번의 스침으로는 존재 여부를 파악할 수 없는 대상의 대표 격이었다. 그것을 파악하기 위해서 단순하게 횟수 자체를 늘리는 게 권유되었지만, 복잡성을 띤 누구는 이를 거부한 채 단발의 행위를 선택하였다. 그 이후로 그가 여느 대상의 존재 여부를 한 번에 파악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예의 선택으로 더 이상 파악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고 공공연한 면면이 구술했다. 어딘가 무척 그을릴 일이다.
‘하루에도 여러 번 풍파를 곱씹는다. 그러고 보니 이는 나의 습관이자 오롯한 유희 혹은 고독한 버릇인지도 모른다. 천장을 알지 못하는 그림자를 한참 쳐다보자니 한쪽 구석이 닳는 듯하다. 애먼 사유의 상자가 크기를 벗어나는 중이었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정처 없는 눈으로 사물을 긁어도 알 리가 없다. 그 턱없음에 뺨 한구석이 욱신거리다가 가렵기도 하지만 이런 반응조차 까마득함을 강조할 뿐이다.
허송을 증명하는 기침 와중에 세월은 간다. 기막힌 시상을 거머쥔 자의 떨림은 어느 메타포에 섞여 매 순간 반짝이는가. 포렴을 걷으며 안팎으로 드나드는 사람들. 그들의 걸음이 게으름에 옮겨붙어 순식간에 꺼지든, 그것을 흔적도 없이 태우든 할 터다.
사상으로 즐비한 거리를 지나며 지난 이를 회상하는 시간도 갖고, 이를 숨기느라 급급한 상황도 떠올렸다. 궤적. 문득 발음한 단어가 어지간한 봉급과 같아 주기적으로 이를 되뇌리라 다짐한다.

정제된 사냥은 별 볼 일 없어. 정교한 건 차치하고 그저 날것의 무언가를 내뱉어야 할 거야, 우린.
웃음 값, 울음 값 이런 것들을 치르며 주저 없이 앞으로 향하는 내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곳에 이른다. 순간 그곳에 당도했다는 것에 아무런 감상조차 표할 수 없음을 퍽 자연스럽게 여기며 굶주린 상태를 가까스로 은유하는데, 피골에 상접한 사유는 내게 없다.
무언가를 포장하는 일에 종사한 적이 있다. 앞선 무언가는 내뱉어야 할 그것과는 판이했다. 그렇다고 해서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나, 나는 이국의 언어를 듣는 듯했다. 뭐라고 하는 것일까.
날카로운 소리, 음영을 잊은 외침. 이를 듣고도 모른 척하는 내가 굳이 원칙을 따지며 웃거나 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