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 EMAP x FRIEZE FILM 연계전시 《중간에서 만나》

이미지_양승규
  • Date: 2024. 08. 28 – 09.07
  • Place: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대학 A동 로비, 이화아트갤러리, 이화아트센터
  • Location: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이화여대길 52
  • Hours: 10:00 – 22:00
  • Contact: @emap_ewha

호크마김, 나무가족, 춘천, 장지에 아크릴, 오일파스텔, 목탄, 150 x210 cm,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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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무더울수록 선명함을 토하던 들은 여러 빛을 거느리고 있었다. 눈부실 정도로 강렬하진 않지만, 평소와 같다고 볼 수 없는 광경에 시선은 조금 흔들렸을 것이다.

높다란 세계의 문턱은 쉽게 주위의 대상들과 섞여 들고, 녹아들며 한 몸이 되곤 했다. 자신의 높이가 누군가의 고장 난 소원을 수리해 주길 바라는 게 허황된 일은 아닐 거라고 연신 의구심을 덜었다. 턱 없이 모자란 거리가 거리낌 없이 웃고, 한동안 잠잠해진 오후가 우호적인 관계를 끄집어낼지도 모른다. 눈앞에 공동 현관이 펼쳐진 듯한 기분은 하루에도 여러 번 들었다. 아직 한창인 초록에서 마지막을 어렴풋이 느끼며 영원은 결국 사물의 가짓수에 불과하다고 속단을 내렸다. 이 순간만큼은 자비 없이 내리쬐는 햇빛도 여린 살갖에 큰 해가 되진 않으리라. 발갛게 익은 뺨이 진실로 부어오를까.

“정신없이 창문이 쏟아지던 때, 허수아비의 근원에 무언가를 숨겨 두었고, 소중한 것 뒷방에 그늘로 꽁꽁 싸매 놓았지. 쌓아 올린 말에 따라 변하는 입구. 그곳을 통해 어디로든 갈 수 있다고 하지만, 되도록 그 앞을 서성이며 칠한 감정은 흥하지도 쇠하지도 않고 그대로 있는 거 봐.”

호크마김, 우리, 장지에 석채, 과슈, 오일파스텔, 아크릴, 140 x 201 cm,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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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한 시절은 금방 사그라드는 것이었다. 농도가 짙어도 결과는 동일했을 거라는 생각이 불쑥 고개를 들이밀지만, 이에 부딪히는 눈빛 하나 없으니, 그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예의 시절 따라갈 터다. 등등한 기세랍시고 외롭지 않은 걸 본 적이 없다. 문득 이 감상을 던져 허공에 포물선을 그려보기도, 상승과 추락을 연이어 겪기도 하면서 들숨을 낮춘다. 또한 날숨은 높인다.  

어려서부터 소리 없이 운 풀벌레는 아직도 초저녁을 장식할까, 하고 일찌감치 인사를 준비하며 무릎을 털었다. 강한 볕에 먼지의 존재는 어느 때보다 깊게 다가온다. 도처에 여러 삶이 즐비하고. 못마땅한 기분은 없지만, 그리 유쾌하다고 할 순 없는 나열이었다. 시선이 길을 잃기 전 신중하게 눈을 떼며 쓸쓸함을 불러일으키기로 한다.  

졸음은 희미한 불빛처럼 아득하게 서 있다. 천천히 눈이 감기고, 그 정도로 뜨길 반복한 끝에 더 이상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는 부표와 그것의 추락을 덮은 두 눈. 부리가 두드러지게 반짝이는 새와 세월을 논한다. 넋두리는 둥글고, 무르며 식지 않고 주위를 덥힌다. 그 부지런함이 종종거리며 지면을 긁던 때를 토렴하는 듯하다. 뒤뜰에 하얀 김이 서린다.

호크마김, 집안에 피어오르는, 장지에 아크릴, 오일파스텔, 목탄, 210 x 150 cm,2024
이미지_양승규

일상에서 이동을 끄집어내 이름뿐인 자로 쟀다. 길이는 불투명한 앞날을 그대로 반영하듯 확실하지 않았고, 제멋대로인 구석을 숨기려 하지도 않았다. 이제 하늘은 웬만하게 푸르지 않으면 탄성을 자아낼 수 없다. 끌려 나온 이동에서 바깥이 묻어 있는 부분을 들어 올렸다. 분분하게 바닥으로 떨어지는 먼지가 면치 못한 건 추락을 겸한 비행이었을 터.

익숙한 거리가 처음 보는 옷차림으로 매무새를 다듬을 때, 본 적 없던 내가 저 너머로 가득히 솟아오르며 수없이 반짝일지도. 눈앞을 둘로 나눠 각각 이곳과 저곳으로 이름 붙이고, 포개짐의 증명 곧 이음매를 노려보는 처지에 휩싸인다고 해도 이를 그르칠 생각은 없다. 상심 없이 명명한 두 대상에 보편적인 서리가 어려 서러움은 일정 한도를 넘어서지 못한다. 퍽 다정한 일에 두 줄을 그었다. 강도 높은 노동이 두 손을 겪다가 두 발을 든 채, 거꾸로 선 양태.

새초롬한 갈피가 여러 갈래로 뻗어나간 지 아흐레가 지났다. 아홉 번의 오후는 열에 미치지 못한 선각일까. 선잠에 들어도 꿈의 깊이는 변함이 없고, 그곳에서 낮과 밤이 동시에 펼쳐지는 시간의 뒷모습을 보고도 풀지 않은 뒷짐이었다. 허리춤은 등받이에 기댄 채 색다른 이동을 마주한다.

송금희, 숨바꼭질 블라인드, 캔버스에 유채, 260 x 194 cm,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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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문을 장만했다. 그러기까지 자그마한 장난도 없었 다. 그것에 대한 허용은 뒷안길로 접어든 이의 커다란 입을 떠올리게 했다. 머릿속 하늘을 가득 덮은 생각에서 어떤 최악이라도 한 입에 삼킬 것 같은 위용이 느껴진다. 실마리 없이 맞이한 문제엔 어딘가 애닳픈 구석이 있었다. 몸을 뒤로 조금만 젖혀도 해결에 닿을 수 있겠지만(접촉을 너머 충분히 품에 쥘 수 있을 터다), 자세를 꽁꽁 얼려 두었다. 익명의 시도는 날갯짓 없이 허공을 날았다. 미지근한 강을 닮은 우물에서 길어 올린 물은 왠지 모르게 한 바가지 바다 같았으며, 소금기는 유일한 통행인이라도 되는 양 한때의 거리를 활보했다. 기억이 뒤엉키는 기분은 그 길에 빛을 지기라도 한걸까.  

새것에서 으레 느끼는 감정을 여지없이 느끼며 문을 여닫는 순간은 숭고가 구비한 막다른 골목과 후미진 간판, 그리고 여러 각이 돋힌 모퉁이를 엿보게 했다. 남의 집 거실에 자리 잡은 나의 어린 시절 앨범을 본 듯한 기분에 충동적으로 타인과 나를 섞었다. 이젠 순전한 나는 없다. 오롯한 세상과 오르지 못한 나무는 사다리가 떨어진 다락방에 서로를 묻었다. 그 안에 온갖 햇볕을 움켜쥔 담요가 빛바랜 회상에 잠긴 채 가끔 사각을 꿈틀거린다.

송금희, 숨바꼭질 블라인드, 캔버스에 유채, 90 x 185 cm,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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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다고 손을 놓지는 않아. 여러 차례 끄고 견 등불이 노을에 넋을 두고 수중의 껍데기가 타오르길 기다리는 시간, 연기보다 앞서 피어오른 공동의 관계로 서너 번 혀를 차고. 인사말을 차게 두었다. 별수 없이 내려간 온도가 하늘이 높아졌다고 우두커니 시선 뱉는 꼴을 견디며 울굿불긋한 고집의 창을 열어 환기한다. 이를 기다렸다는 듯 지친 기색의 공간은 내부로의 삶을 시작하려 지금까지 쥐고 있던 피로도 놓고 창문으로 뛰어들었다. 예의 공간과 정면에서 만나 있지도 않은 한을 풀며 서로의 숨에 맺힌 공백을 두드린다. 이윽고 몸소 어떤 현상을 규명하는 바다. 길의 가장자리 위를 걸을 때만 느낄 수 있는 감각이 밝힌 사실은 여실히 공중에 떠 있다.  

벽과 나란히 등을 맞대고 있는 커튼. 주변에 허튼 일이 만연해도 상심은커녕, 이를 거들떠보지 않으며 깨우침과 춤춰 한때의 상실을 은유한다. 등 뒤의 바깥은 솜씨 좋은 이의 비법으로 자신의 비롯됨을 대체했다. 하염없이 우거지다가 문득 연장(延長)이 멎어 버린 숲의 고요가 떠들썩한 시기를 뒤로 물린다. 그것은 점이 되어 끝을 표시하다, 결국 사그라들 터다. 기세가 운수를 뛰어넘었던 때를 그리며 요지부동의 정적에 기꺼이 달가움을 표한다. 

seunggue Yang
seunggue Yang

새로운 아침을 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