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Date: 2024. 08.22 – 11. 17
- Place: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 Location: 서울특별시 중구 덕수궁길 61
- Hours: 하절기(8-10월) 10:00 – 19:00 | 동절기(11월) 10:00 – 18:00 / 월 휴관, 금 10:00 – 21:00
- Contact: 02-2124-8800

이미지_양승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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궂은 날씨를 아랑곳하지 않는 천성이 타오르는 중이었다. 반쯤 눈을 감아야 이를 온전히 느낄 수 있었으며, 그럴 때마다 평소는 멀찍이 떨어져서 들릴 듯 말 듯한 제안을 읊었다. 귀 기울이려는 의도와는 다르게 여념으로 꽉 찬 머릿속은 반듯하게 자세를 쥐었다. 땅 깊은 곳에서 다양성이 종류의 떼를 한 김 식힌 토로로 맞는다.
그는 먼발치에서나마 졸음의 그림자를 확인했다. 앞선 인식은 어떤 확신으로부터 비롯되었을 것이다. 자신을 드리운 대상보다 더 실제적인 그늘을 인식할 때마다 뒤편에선 불볕더위가 떨어졌고, 소란스러움을 틈타 시야는 제 솜씨를 늘렸다.
기록적인 어수선함도 수월하게 그르칠 일이 되고 새로움에 대한 답습은 태도를 구슬려 말수 적은 이의 습관을 좌우한다.
“사라졌다가 느닷없이 나타나는 건 불세출의 위엄을 대수롭지 않은 엄나무 밑에 두고 떠돌이의 망향을 불러일으키는 거라고 할 수 있을 터요.”
허투루 보낸 시간이 수두룩하게 쌓인 골방 앞으로 성긴 부락이 형성되었다. 서먹한 넋 너덧 쌍이 그곳에서 살림을 꾸리고 기호에 따라 바짓단을 부둥켜안기도, 놓지 않기도 한다. 풀어헤칠 옷고름이 그들에게 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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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지속에 큰 의미를 갖지 않듯 금방 그쳤다. 공교롭게 그때는 누군가 – 천진함이 가문 날 물방울처럼 위태롭게 눈 밑에 매달린 – 가 울음을 그치고 아무렇지 않게 웃던 때였다. 급변하는 세상에 비해 다분히 느린 전환이었다.
물끄러미 사방을 보는 게 어떤 속죄의 의미를 내비칠 때 이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그대로 두는 것. 존재의 양태를 현 상태에 잡아두는 것. 시선은 이어진다. 그것에 관계란 없다. 지독하게도 외로운 순간 눈을 감음으로써 뉘우침은 숨 참듯 멎었다. 금방 그치더라도 도리어 그렇기 때문에 빛을 발하는 행위였다고 이름 없는 이가 조심스레 술회한다. 반성의 기미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주머니에서 돌이킬 수 없는 감정에 대한 시위를 꺼낼지도, 그곳에 두 손을 찔러 넣고 자세를 단단히 굳힐지도 모른다. 겨울을 덮은 가을. 나는 그 의도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바다.
“어쩌다 그리 퉁명스럽게 되었소. 처지 비관이 아니라 그저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군요. 내게 남은 거라곤 단번에 알아보지 못한 이를 골똘하게 생각하다가 문득 떠올렸을 때 눈앞에 나타난 반짝임뿐. 말이라도 섞읍시다. 분별없는 가운데 가장 빛나는 건 어처구니없는 시도니, 혹여나 눈이 먼다면 난 빙긋 웃을 작정이오.”
장마가 선 기로엔 지붕 하나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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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돌이들의 말소리는 고왔다. 그것은 시간의 축적을 우습게 여기기도 하는 음악과 안면이 있었다. 두텁다고는 할 수 없지만, 서로를 알아봄에 관계는 우수한 역량을 토해냈다. 들꽃은 흑백에 갇혀 어떤 소리로부터 동떨어진 생활을 이어가며 매 순간 구분을 잃었다. 낮과 밤은 끝끝내 관점의 차이를 넘지 못했다. 습관은 버젓이 만발했던 웃음이 가시거나, 하루가 저물거나 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깨어있는 동안은 분명히 사고하며 공상이 발목 위를 넘지 않도록 주의했다. 사물은 대게 모서리를 가지고 있었고,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주절거렸다. 외면은 차선을 넘어 최선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입에 한 번도 대지 않던 음식물을 주식으로 삼아 날을 입고 벗었다. 갈아입을 횟수가 다신 식욕은 누구의 묘안이 될까.
거나하게 취한 이의 안색을 두른 사다리가 선각에 몸을 묻고, 트인 시야를 동굴에 가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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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는 바람만 불지 않으면, 지독한 여느 여름이었다. 화려한 치장이 불러일으킨 감정에 오래전부터 수집해 둔 활자 몇을 보내고 먹빛 환상에 눈을 붙인다. 어설픈 성숙은 어떤 방안을 겪을지, 떨쳐내지 못한 상념이 어수선히 떨었다.
낡은 다락에 몹시 주린 책 한 권. 그것은 언제나 자신을 펼치고 낱장을 넘겼다. 괄목한 성과가 닫힌 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연신 귓등을 두드렸지만, 고요는 깨지지 않았다. 아득한 빛 없이도 먼지는 천장에, 바닥에, 그리고 여느 선반에 제 모습을 어렵지 않게 드러냈다.
‘아직도 눈에 선한 표정이 사그라드는 불꽃이라도 된 듯 갈수록 옅어질 때 내가 열어젖힌 방문의 수가 흰 벽에 전부 수기로 쓰여 반듯하게, 가끔 불확실하게 내 눈에 번지는 것 봐.
도망이라도 좋다. 도둑 발에 든 멍이 푸르든 붉든 그의 기침은 입 막아도 나오니, 낙오자, 실패자, 그들이 살펴 뒷걸음질할 통로는 선수 쳐 출구를 게워 내고. 세계는 지루하게 터무니없는 생각을 다루며 기꺼이 엎지른 누군가의 앞날에 무수한 항목을 열거.’
눈앞의 골목이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은 기분으로 맞는 오전, 구름 낀 하늘은 집요하게 쳐진 커튼과 투명을 공유한다. 기필코 다가가려 했던 대상의 언저리엔 속된 말로도 품을 수 없는 기호가 칠해져 있고, 그것은 용케 꿈을 꾸며 뒤숭숭한 현재를 다각으로 파악한다. 물기 하나 없이 바싹 마른 수건. 하루의 구성 요소 중 목소리가 되었다고. 끌어안지 않는 이상 단지 부딪혔다고 해서 서로의 삶이 흔들릴 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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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따라가오.
그 길에 들기도 전 성이 차더군.
견딜 만큼 깊은 몫을
접때에 두었소.
/ 성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