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Date: 2024.08.24 – 08.30
- Place: 갤러리빈치
- Location: 서울 서초구 방배로 234-10 2층
- Hours: 13:00 – 18:00
- Contact: 02 – 6402 – 2780

천 번쯤 고개 숙인 나로부터 그을음을 여러 번 겪은 창문까지. 서로의 공통점에 착안해 어릴 적의 천진함을 불러일으켰다. 해맑은 표정에 드리운 그림자는 어떤 때보다도 더 선명하기에 티 없이 보낸 날의 수로 너저분한 기록에 맞선다. 보호의 대상에서 무언가를 보호하는 대상으로의 이동은 어떤 이사에도 흔들리지 않는 시선을 주었다. 외지의 풍경을 천천히 음식물을 씹고 삼키는 식으로 바라보며 엄숙한 강의 고요에 손을 뻗친다. 비로소 평온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내 주변을 서성거리는 듯하다.
늦여름과 초가을 사이, 어정쩡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친숙한 시기에 창밖에 있는 풍경이라면 무엇이든 주머니에 주워 담고, 제각각 어울릴 만한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중 하나를 입에 담고 방안에 고이 두었던 선명한 이파리에 손끝을 댔다. 차가우면서도 뜨거운 바람이 볼을 두드리고 달아난 듯한 기분이 들어 살며시 어깨를 털었다. 나를 유지해야 하는 책임에서 조금 손을 덜어도 괜찮을 거라는 낙담이 서서히 덕을 쌓는다.
선로를 벗어난 열차는 기다렸다는 듯 하늘을 날지도. 이를 보고 기가 찬 사람은 문득 열 손가락으로 나타내기 충분한 나이로 돌아갈까. 어리광은 피로를 느끼지 않는다.



내가 당신이 된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겁니다. 두꺼운 구름이 하늘을 등에 업고 빠르게, 그러면서도 바르게 앞으로 나아갈 때, 아직 자리 잡지 못한 감정은 그늘은 면치 못할 터입니다. 그 누가 방황하는 기분과 함께할지요. 두 발은 신발에 감싸여 있지만, 포근함도 모르고 종일 민낯으로 돌아다녔다죠. 바스락거리는 소리엔 두 발이 있어 어디든 가지 못하는 곳이 없고. 누구나 저마다의 손을 잡고 산다면 나는 뒤늦은 기분에 휩싸일지도 모릅니다.
지고지순한 날이었다. 모든 건 하나같이 말끝을 흐리며 매듭짓지 못한 말꼬리에 공통의 호미를 달았다. 그것의 날은 고된 노동으로 닳아 있었기에 햇빛에 반짝일 때마다 먼지 가득한 기침을 외치는 듯 보였다. 왠지 모를 슬픔과 내 것이 아닌 행운에 얼마간 눈앞이 부예졌지만, 코앞에 선명한 시야가 발을 종종거리며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기에 희미하게 웃고, 보얀 기분에 빠졌다. 장마는 뒷걸음질 치며 우기를 털어냈을 것이다.
입장은 기다란 다리로 기다림을 건넜다. 징검다리처럼 드문드문 소식이 바닥에 놓여 있었다. 대낮도 아닌데 환한 밤이 잠에서 깨운 걸까. 문득 어릴 적이 깨어났다.

이미지_양승규

오래된 창가 특유의 메마름이 느껴진 지금은 왠지 모르게 오전과 오후가 없다. 어쩌면 내가 모르는 사이 새로운 시간대가 생겼는지도. 서로 초면인 만남은 썩 보편적이라고 생각하며 그는 느리게 걸었다. 목적지가 없는 산책. 서두를 필요가 있었던 때를 떠올리며 이해하지 못할 언어가 들려오길 기다렸다. 이국의 말은 어쩐지 분주한 느낌이지, 발화의 양이나 속도와는 관계없이.
내가 그동안 몰두한 대상에서 날개가 돋아나든, 그의 빈손에서 산새 떼가 쏟아지든 밤의 도래는 여지없이 이루어질 것이다. 아니, 이루어진다. 그를 따라잡기는 쉬운 일이고, 우리는 서로의 나이에 다소 뭉툭한 의견을 가지고 있지만, 단언하고 싶은 건 그것에 독특이란 없다는 것이다. 평범한 의견을 가진, 세상에 각각 하나뿐인 존재인 우리가 간만에 좋은 날씨를 관망한다. 구경꾼의 역할은 여간 생각이 많은 것이 아니다.
익숙한 음악으로부터 낯선 동네까지 의식은 미끄러지며 그 사이 피치 못해 잡아끈 기억과 익숙해질 수 없는 이름으로 오른손과 왼손을 구별한다. 오른쪽은 과거의 것이고, 왼쪽은 여전히 어색한 명칭. 의식은 미끄러지기를 멈추고, 서랍이라도 된 듯 마땅히 열리고 닫힌다. 그 속에 담긴 건 어떤 표정이었더라.

말수는 그대로인데 오히려 줄어든 말투. 상황 파악하기를 멈춘 뜻과 한껏 웅크린 속. 주변은 고요하기로 마음먹은 듯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곳으로 들어오는 문이 있다면 누군가 그 앞에 서서 종류를 막론하고 소리 나는 것은 전부 돌려보내는지도 모른다. 본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 게 좋을 거야, 라고 참견을 빙자한 한숨을 뱉으며.
너 없이 오래 지낼 수 있었다. 이 말은 하는 사람도, 물론 듣는 사람도 없어 참 많이 외롭고. 세상일에 염려하다 보면 걱정의 입은 불어나 이것저것을 평하며 추위에 넉넉한 떨림을 태운다. 단단한 연기는 흔한 구름과 구별하기가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공상에 살을 붙일지 아니면, 그것의 뺨을 움푹 들어가게 할지 지금은 당장 알 수 없는 일이다.
의자에 가만히 앉아 천천히 노를 젓는 시늉을 꿈꾸고 대양이라고 하기엔 여러모로 부족한 책상의 빈 곳에 시선을 던졌다. 흑과 백은 사물의 존재 양식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다채로우면서도 하나뿐인 면모를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낙관적으로 앞날을 수식한다. 비가 내리길 바라던 순간, 맑은 날은 설 곳을 잃고. 그 반대로 마찬가지겠지만, 마음 쓰이는 바가 다른 고독.

이미지_양승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