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지_양승규
- Date: 2024. 08. 10 – 08. 31
- Place: 에이라운지 갤러리
- Location: 서울시 종로구 백석동1가길 45
- Hours: 화 – 토 / 11:00 – 18:00
- Contact: 02-395-8135

이미지_양승규
시린 무언가를 방안에 들여다 놓고 품을 부서지도록 죄었다. 손에 자국이 깊게 남을 정도로 꽉 쥔 자물쇠가 어떤 사태를 시사할까. 의미는 알지 못해도 충분히 친밀한 언어와 보내는 오후는 분명 남은 삶의 일부였다. 염려를 염두에, 시작을 손등에 두고 타고난 문제에 대한 생각으로 표정을 굳힌다. 언 땅을 마주할 때, 예의 얼굴을 하고 있으면 주변에 제법 실용적인 관계로 비칠지 모른다. 평이하게 주어진 날에 갖가지 어려움을 발견한 게 허구한 날 지핀 허무일지라도 일 인분의 감정은 늘거나 줄지 않을 터다.
혼자라도 –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 자신과 화목하게 지내며, 있거나 없던 운도 그리운 대상에 포함하고, 크게 벌린 입으로 대수롭지 않은 옳고 그름을 은유하는 것. 평소보다 하늘은 조금 낮아서 이를 오르는 수고를 덜었다. 예고 없던 소낙비는 역시 오지 않았다.
소일거리가 눈덩이가 되어 구른다. 갈수록 불어나지 않은 것도 제 노력일 테고, 사라지지 않는 것도 애씀일 텐데, 극간 무릅쓴 일로 어깃장을 쪼갰다. 둘로 나뉜 세계가 내성적인 면모를 보이더니 호쾌하게 웃는다. 수더분함이 순식간에 날개 펴 비행을 일삼으려 드는 것을 보고도 못 본 체.


이안 하
(L) grain of t(Landscape), 2024, acrylic, gouache, watercolor and ink on jangji paper, 44.7 x 44.5 cm
(R) Cluster 1/2, 2023, watercolor, ink, gouache and acrylic on jangji paper, 25 x 19 cm
서툰 제안은 황급히 해변으로 달려가 불타올랐다. 불꽃은 시들었지만, 제 잎을 아래로, 그 천연덕스럽게 과장된 모래밭으로 떨구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영원은 외롭기까지 한 고집에서 피어났고, 비바람과 해를 맞으며 가끔 심드렁하게 웃었다.
그 해변에서 그는 과거를 양산하는 기계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조악한 솜씨로 오차가 다분한 생산품 더미를 보며 서글픔을 느꼈지만, 어차피 한 때의 비극일 뿐이다. 그것은 단발적인 감정의 역할로, 어쩌다 치곤 하는 파도를 떠올리는 게 그에게 마땅한 수순일 터다. 의미에서 벗어난 단어 하나가 가득 봄을 우그러뜨렸는데, 마치 앞선 사건이 신호라도 된 듯 쪽빛 까마귀가 날아들었다. 윤기 나는 부리로 이유 없이 바닥을 쪼고, 영양분이 풍부한 먹이를 먹으며 필요에 따라 – 아니면 숙명적으로 – 무리를 이루며 살아가는 까마귀.
“날것은 도통 피로를 느끼지 않고 허공은 여러 방향으로 가르며 살아간다. 나는 연거푸 어떤 삶을 기르고 있는데, 이 또한 허공을 가르는 일인지 알 수 없어 꿈의 절반을 뿜는다.”
그는 독자적인 행보를 가진 그늘과 면치 못한 상황들을 겹쳐 보았다. 예상대로 눈앞이 캄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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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 하
(L) Blue Chamber II, 2024, acrylic, watercolor, ink and lino print on jangji paper, 132 x 132 cm
(R) daydream, acrylic, gouache, watercolor, ink and lino print on jangji paper, 188 x 122 cm

이미지_양승규
숲속은 부리나케 솟았다. 아직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산불이 문득 이해돼 얼마간 몸을 떨었다. 강물은 어딘가의 어귀가 되어 홀로 마르지 않으리라, 하고 생각했는데, 그 마음씨가 속된 것이라도 기꺼이 통과할 입구를 빚었다. 그곳을 지나면 여러 가지 종용을 마주할 터다. 이는 색다른 경험이 될 테지만, 어질러진 심상에 어떤 질서도 부여하지 못하고 오히려 정리의 부재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그다지 닫히지도 않은 하늘이 열렸다. 탁 트인 시야, 비교적 앙상한 가지로 몸을 던진다.
낮고 엄숙한 목소리로 장마를 불러 눈앞에 앉히고 서로의 공백을 말없이 공유하다, 제각기 그려온 억수에 관한 이야기를 끝없이 하는 것. 시기에서 벗어날 수 없는 대상 둘의 접점 곧 이와 같은 만남이 이루어진 시간은 오후에 다다른 오전이었다. 그것의 뒤축이 붉게 아픔을 토해도 졸음은 때가 되면 쏟아졌으며 간혹가다 이르게, 늦게 내리기도 했다.
때론 외딴 방이 여실히 생명을 발하는 자연의 일부가 된 듯한 기분을 느끼고, 뜻밖의 생기를 뱉는다. 그럴 때마다 머릿속은 금세 여느 물가로 돌변하고, 어딘가로 뛰쳐나갈 내가 잘파닥잘파닥하는 소리로 대변될까. 여전히 서둘러 솟는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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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영
(L) _없는 몸: 틀 없는 몰드 그리고 하나-여러-얼굴, 2021, silicone, transparent threads, urethane expanding foam approx, 18 x 32 x 19 cm
(R) 곱씹어 끄집어낸_….., 2021, reinforced plaster, casted leaves, 38 x 8 x 13 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