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 윤미류 개인전 《Do Wetlands Scare You?》

윤미류, Circle for the New Moon, 2024, oil on canvas, 259.1 x 387.8 cm
이미지_양승규
  • Date: 2024. 08.23 – 10.05
  • Place: 파운드리 서울
  • Location: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233 지하 1, 2층
  • Hours: 화 – 토 / 11:00 – 19:00
  • Contact: 0507-1471-0228

윤미류, Staredown 1, 2, 3, 2024, oil on canvas, 193.9 x 145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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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표가 노랗게 될 정도로 눈을 감자. 그 시간은 영원에 가까울 수도, 아니면 그것을 파기할 수도 있지만, 애초에 타고난 자질은 특수한 형질을 가로지를 뿐. 시선을 짓이기며 쏘아붙인 대상은 비록 허공을 잃더라도 급박한 시류를 충분히 감추어 낼 터다. 어느 날, 어느 나라에선 숨김의 어원이 애꿎은 날씨로부터 무언가를 지켜냄일지도. 

고된 이의 울음이 시간 깊은 강의 하류로 몰려들었다. 너와 나 할 것 없이 사람들은 밖으로 목을 길게 빼며 빼어난 자태를 긁어모으는 것에 혈안이 된 눈으로 서로의 흔들림을 증명했다. 여간해선 자기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 하늘이었다. 구멍 난 생활상을 기우며 그 강의 밑바닥을 떠올리는 동안 반성이 솟구쳐 이루 말할 수 없는 침묵과 하나가 되었다. 거짓이 진실을 내지를 때 어렵사리 들어간 사글셋방엔 옹골찬 볕의 흔적이 희미하게 빛난다. 다른 소리는 안중에 두지 않고 오직 물 내려가는 소리에만 귀 기울인 까닭은 부쩍 야위었고, 변화의 연장(延長)인 양 힘 없이 웃었다. 

저 너머에 치우칠 요량으로 황급히 몰아쉰 숨에 울컥하는 요소가 도사리고 있다. 운 좋게 이를 피한다면 평소는 활개 칠 것이고, 그러지 못한다면 그것은 마른기침을 자주 토할 터다. 나는 언제나 명목과 함께.

윤미류, Want to Touch the Other Side 4, 2, 1, 2024, oil on canvas, 90.9 x 72.7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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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꿈이라도 된 듯 사물의 순서는 뒤죽박죽 섞였다. 이로써 자유분방한 들먹임이 천천히 꼬리를 접는다. 흉한 처마 밑에 고즈넉한 풍경이 자리하니, 그제야 곧 깨질 품이란 것을 깨닫고 누군가 정돈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운다. 

“밑바닥은 여지없이 우물의 천장이요. 무척 고요한 날에 몸을 뒤척이듯 그곳을 두드리면 속이 빈 소리가 울려 자신도 모르게 몸담은 계절의 자락을 붙잡게 될 거요.”

손자국이 묻어 있는, 혹은 엷게 새겨진 창이라던가, 벽이라던가 하는 곳을 의심 없이 바라본 적이 있었다. 당시의 시선은 일부분 벌겋더라도 수수함을 떨어뜨릴 생각하지 않았다. 순수한 시대였다. 끝이 날카로운 송곳은 귀한 때였고, 상상만으로 눈앞을 깜깜하게 할 수 있었다. 

“나는 바라는 게 많을뿐더러 각각에 사소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절대적인 묘사를 몇 줄 적어 두었다. 어쩌면 이름을 길게 늘여놓은 건지도 모른다.”

어깨를 움츠리자 턱 아래 고인 기분은 날개 펴고, 일을 그르칠 때마다 작지만, 분명하게 들리는 바람 소리가 호수를 착각한 사람처럼 급히 사라졌다. 손끝의 열기는 어떤 의미를 덥히는가.

윤미류, The Sly and the Fool, 2024, oil on canvas, 181.8 x 227.3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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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일어난 사태를 짐작하고 있었다. 터무니없게도 온갖 관념이 나를 떠받들었다. 쉬이 그만둘 생각은 아니었지만, 어째 짐작은 계속될 듯해 허구로 먼 산을 넘었다. 그럼으로써 나는 하늘에 조금 가까워졌을까. 

닮은 꼴을 마주하면 익명에도 꽃이 핀다. 무명에 단단히 뿌리내린 생명. 언제까지고 이어질 터다. 기념에 섞여 든 창은 하루에도 여러 번 환기를 쏟아냈다. 기꺼이 뒤집어쓸 웃음이 무성한 상태로 시들어 간다. 겨울에 숨긴 움은 봄기운을 느끼자마자 찬 공기를 찢고 고개를 드밀었다. 시간의 경과를 앞선 등장으로 파악하고 경험하지 못한 가능성에 대해 생각한다. 인식의 꼴은 보기 좋다가도 눈살이 찌푸려진다. 

“애당초 공존은 여러해살이풀을 휘감은 채 불편하다 못해 불친절한 기분 여럿을 무너뜨리며 홀로 선 오전으로 쓰러지듯 날아간 것이죠.” 

삶의 골자가 부르터도 전과 다를 바 없이 조용한 주변.

“모르는척 하다 보면 정말 아무것도 모르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는 무지의 확장이라고 할까요, 아니면 무지와는 다른 저변의 놀라운 생태일지도요.”

윤미류, The Difference Was Clear to Us but You, 2024, oil on canvas, 162.1 x 227.3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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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올려다보니 해방감은 낯선 모양으로 펼쳐져 있었다. 다량의 의미를 포함한 광경이었다고 술회해도 반짝임에 취할 리 없기에 동공은 미끄러지듯 제 영역을 넓힌다. 목뒤에 둔탁한 통증이 느껴질 때쯤 자세를 바로 하고 천천히 어지럼증을 뒤로 물렸다. 일련의 과정이 서너 마디로 나뉘어져 제각기 푸른빛을 내게 건네는 공상에 잠긴다. 어느 것은 받아들이고, 어느 것은 거절해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아 빠진 쪽빛 곤란.

몰지각한 때 물속에 몸을 반쯤 담그고 앞으로 나아가는 걸음은 부유를 불러내기 충분한 입장이었다. 분에 넘치는 걱정을 덜어내고 의식은 멀끔한 상태를 보이며 긴장을 한 움큼 쥐었다. 떨림이란 열 명 중 한 명에게만 허락된 특수한 감각과도 같은 것. 몸서리치던 그날의 사방은 손을 댈 수 없는 빗장으로 굳게 잠겨있었다지. 가로에 반기를 든 서로가 특정한 활자에 갇히게 되리란 것을 알지 못한 채, 그럴 수밖에 없던 때.

“아무쪼록 어제로 명명된 하루와 내일로 치부될 하루가 무해하길 바랍니다. 누가 이를 무용하다고 꼬집어 말할 수도 있지만, 그 또한 이름과 취급의 됨됨이가 될 테죠. 여전히 괸 무릎은 저릿하지도 않습니다.”

seunggue Yang
seunggue Yang

새로운 아침을 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