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Date: 2024. 11.08 – 11.18
- Place: 온수공간(2,3F)
- Location: 서울 마포구 월드컵북로1길 74
- Hours: 12:00 – 19:00
- Contact: @os_gonggan

이미지_양승규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구축과 해체를 반복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부드럽지도 거칠지도 않은 손을 보며 추상적인 생각에 이젠 어엿한 초상을 덧댔다. 불쑥 들이민 모양새라도 환영과 번영으로 가득한 형태에 오직 두꺼워진 두께만 가시적으로 울었다. 복에 겨운 삶에 규칙적으로 묻은 고초는 벌초할수록 더욱 무성해지는 풀의 생태를 제법 숙고하게 했고, 앞선 궁리에 대한 수고는 역시 없었다.
허술한 문지기의 웃음은 눈이 아플 정도로 촘촘했으며 때론 매섭게 시선을 교류하려 들었다. 그가 지키는 문은 실제와 관념의 사이를 오가며 선명의 방식을 달리했는데, 이것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칠지 알 수 없지만, 산뜻함의 유무와 별개로 뚜렷함은 그들과 상관없는 일이었다. 남길 수밖에 없던 종적이 나선을 그리며 타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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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질반질한 대문 앞에 어째 어폐가 있는 언어 둘이 서로를 기댄 채 하나는 먼 산을, 다른 하나는 지붕을 바라보고 있다. 주변을 재주껏 서성이다 보면, 어느새 한쪽 어깨라든가 낡은 옷깃에 그 둘이 호소하듯 매달려 있을지도 모른다. 여러 번 넘어 다녀도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은 문지방과 내게 익숙함을 요구하는 풍경의 설익음이 좀체 안정을 취하지 못하게 한다. 연신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미처 본 적 없는 이와의 해후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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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이 흐르는 벽면에 가끔 지나친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물리적으로 나와 방향을 달리했고, 정도의 측면에서 보자면 비약을 삼켰다고 할 수 있다. 하여튼 그는 언제나 내게 복합적으로 다가왔다. 그와 마주할 때면 드넓은 들판에 빽빽하게 들어찬 이름 모를 짐승의 떼가 떠올랐다. 무수한 수효를 비집고 나온 탄성은 남루한 행색과는 달리 아름답게 빛나는 두 눈을 가졌다.
꽉 잡은 두 손 – 튼튼한 다리 같기도 하다 – 위를 갈 곳 없어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시쳇말과 비탈에 놓인 순응, 그리고 등장을 삼간 생각이 거닐었다. 버젓이 이루어진 산책을 위하여 맞잡은 손은 애초부터 원래 그런 양 예사롭게 존재했으며 하루가 다르게 감각의 폭은 넓어졌다. 더 이상 깊이는 문제가 아니라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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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에 진 주름과 금방이라도 얼 듯한 물에 패인 파문, 이제 막 잠든 이의 눈 밑에 칠해진다. 그가 입 밖으로 꺼낸 속은 어지간하면 식지 않는 불구덩이의 파편이었다. 무너지는 행위로의 고백, 쓴맛뿐인 뿌리채소를 씹었을 때 느껴진 불행과 같다. 어떻게든 살펴 살며, 두드리지도 않았는데 열린 문으로 들어가 반대 섞인 환대를 받을까, 있지도 않은 타자에게 얼루기를 빚질까. 도저히 거짓을 표현하지 못한 말의 허리가 굽었다. 건초 앞에선 불씨의 크고 작음이 없고, 처음으로 돌아가기엔 이미 늦은 때가 아무 상관 없다는 듯 평소를 올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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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로웠다. 그곳에 들면, 그 품을 입으면 대중의 성미마저 사사로웠다. 괴로움과는 다른 문제다. 예를 들 때마다 불어난 적요의 깊이를 이젠 짐작도 할 수 없다. 이런 지경에 문득 감각에 새겨진 손아귀는 어떤 악수로부터 비롯되었을까.
서너 마디도 외우지 못한 상황을 빼곡히 적어 둔 기록이 요긴하게 쓰였다. 하마터면 구렁에 – 비유와 동시에 실제적인 – 발이 괼 뻔하였다. 물 흐르듯 움직인 생각이 걸음에 옮겨붙었는지도 모른다. 매번 변화를 쥐고 내성적으로 내두른 게 뒤늦은 말로 다사다난하게 먼발치로 밀려온다.
생활의 대부분은 무를 역임하는 데 소비되었다. 벌어들인 심정의 액수는 단출한 식사 준비할 정도. 도저히 수저의 짝을 맞출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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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전 속에 피워 올린 염원. 한 대상의 그칠 줄 모르는 집적에 높아만 가는 하늘을 굽어보았다. 어느샌가 속은 염불을 외웠다. ‘기필코 사물의 기틀에 다가갈 것이다.’ 마음속에 기거할 때만 기이한 말을 작은따옴표에 가두고, 감옥이 된 기호에 순수를 배접했다. 잇따른 취미에 악은 없을 터다.
고생 꽤 한 것 같은 이가 타인이 구축한 제 인상을 무너트리며 적당한 방향에 손끝을 둔 후로 눈앞의 풍경은 갈수록 거칠어졌다. 그럼에도 앞선 대상에 대한 현실감은 전과 다름없었으며 이상이란 단지 꿈의 지독한 소산일 뿐이었다. 부재가 형태를 갖출 때 그제야 나타나는 의식적 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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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할 때마다 마주한 상대는 예외 없이 제 속이었을 터다. 하얀 입김이 눈에 보일 때도,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뒤축에 차일 때도 말이다. 척박한 땅이 몹시 그리웠다. 계기라고 할 것도 없이. 잡풀조차 없는 그곳이 눈을 가려 그저 무방비가 되었다. 이 순간만큼은 어떤 뻣뻣한 부탁이라도 거절하지 못할 테지. 더없는 무위(撫慰)가 내게 필요한지도 모른다.
갑작스레 쏟아진 비가 자신의 예고 없음에도 닿지 못한 부분의 총합은 가로가 수 뼘 정도인 상자. 눈 감은 게 무색하게 환한 주변을 지난밤에 꾸었다. 온난한 기후가 부었다. 손 한 번 대보려다 엎지르듯 머리에 뒤집어쓴 물건의 형태는 빗발의 그것과 같다. 사선이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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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식이 무에 가까운 의자에 앉아 앞을 보았다. 정면은 그저 응시를 위해 부지런히 수행하는 수도자 같았는데, 단지 그러길 바란 뜻이 끝내 자신을 굽히지 않고, 보란 듯이 바로 섰다. 등받이는 평균적인 바닥의 딱딱함을 주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발생한 일이 역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라졌다고 누군가 말했다. 오래된 생각이 처음이라고 느껴지던 때, 이는 분명 낯선 것과는 다른 그 무엇이었다. 굳이 뒤돌아보지 않아도 등 뒤를 훤히 아는 입장에 처해보는 것도, 그것에 한동안 갇히는 것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사선은 여전히 춤을 추며 대낮을 지난밤에 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