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 《그림처럼 Painting – like》김명찬, 김지명, 오병탁, 윤경원, 주한별

《그림처럼 Painting – like》김명찬, 김지명, 오병탁, 윤경원, 주한별, 대안공간루프, 2025.12.16 – 2026. 01.31, 이미지_양승규

작위적인 기록이었다. 어느 날에 누군가 무엇을 했으며 그것에 대한 반대급부는 있거나, 없었다. 아쉽게도 운수의 행세를 하며 중심가를 가로지르는 이의 기록은 없었다. 이에 누락의 낌새가 조금이라도 보였다면 아무도 살지 않는 집의 누수는 발생하지 않았을까. 변두리의 마음을 지녔다는 게 여전히 내게 어떤 설명도 되지 않는다.
묘하게 청결한 저수지를 떠올리고, 화학약품이 코를 찌르는 수납장과 좌우로 흔들거리는 그네를 앞선 생각의 하위 개념으로 둔다. 나를 찾는 소리가 항변이 될 때 방향은 급히 원을 그린다.
살갑지 않은 환경이 환하게 빛을 내며 주변의 그림자를 오려냈다. 가위질은 서툴렀다. 이 미숙함이 지나간 자리마다 서너 글자를 남겼다.

인기척이 없는 거리를 들고 서쪽으로 향한다. 이동의 목적은 누군가 절박하게 주지했지만, 군중의 상실과 더불어 금세 잊었다. 그의 심정은 낡은 벽돌 위에 쌓인 새로운 벽돌이다.
앞으로 나아가는 건 무릇 전진이란 그렇기 때문에, 문을 두드리는 이의 심정을 그대로 이어받아 저만치 떨어진 문고리는 본다. 눈에 맺힌 상은 어지럽게 홀수를 내게 권하지만, 그것이 짝수였다고 해도 나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왠지 억울하게만 느껴지던 지난날들이 낱장이 되어 한계를 분명히 직시하는데, 그것에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실제적인 손으로 종이를 넘긴다. 뜨거움과 차가움을 즉각적으로 느끼는 손이다. 종이의 뒷면은 여러 가지로 얼룩져있다.

윤경원, Fiery Cordyceps, 나무에 오일, 74.5 x 47cm, 이미지_양승규

빈자리는 영원히 비어 있지 않았다. 이는 허송에 꽃이 핀 것과 같으나, 그 만발한 다발을 본 후 시간은 때에 따라 자리를 비웠다. 무언가 급한 일이 있다는 듯, 양보를 요구하는 건 어쩔 수 없다는 듯.
막중한 임무가 그에 합당한 역할을 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 유일한 비극이었다. 한순간도 우스워질 수 없는 인물의 서사는 장작으로도 쓸 수 없었다. 모두 다 불쏘시개가 될 때 묵묵히 발화를 기다린 시간에 기나긴 장마를 건넨다.

김지명, 배 나온 아저씨, 캔버스에 오일, 162.2 x 130.3cm, 이미지_양승규

기껏 왕을 모시고도 저들끼리 딴소리였다. 아직 벌건 그들의 눈이 느릿하게 좌우로 움직였다.
이곳은 터가 좋지 않다느니, 주변의 기울기가 심상치 않다느니 하는 소리가 군중이 되어 시장을 준비한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 누군가는 밤을 새우고, 몇은 이른 아침을 맞는다.
바짓단이 더러워진 사람들이 지나간다. 반지하는 잠시 번쩍한다. 수중에 남은 비닐봉지는 이제 검은 것뿐이다. 그 속에 무엇이 담겨있는지 알 수 없는 주머니. 입으로 부스럭거리는 소리는 낸다. 얼마간이긴 하지만, 이를 멈출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힌다. 끼니와 끼니의 사이는 갈수록 벌어지고, 그렇게 늘어난 시간이 부적절하게 놓인 상자 위에 방치된다. 애써 납신 왕도 이를 보고 손을 털었다.

오병탁, 1_f_maria_2428, 캔버스에 오일, 117 x 80cm / 1_f_maria_3034, 1_f_maria_1506, 이미지_양승규

좌판 위에 물건들은 규칙적으로 놓여 있었다. 이를 별생각 없이 눈으로 좇다 보면 어느새 규칙성의 한복판에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고, 제법 성가신 발견이었다고 모두가 말했다. 그들의 하나같은 인식이 무언가의 급선무가 되리라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지만, 그게 현실로 다가왔을 때 행복은 의심할 여지 없이 먼 곳에 있었다.
그는 내일 날씨가 어떻게 될지 정확히 맞히는 재주가 있었다. 그 정확성을 그는 그다지 달갑게 여기지 않는 듯했지만, 그가 맑은 날에 우산을 들고 있는 모습은 어째 상상만으로도 그답지 않았다. 지금은 비가 내리고 있다. 어쩔 수 없다는 듯한 느낌을 주는 비다. ‘체념엔 규칙이 없고, 예보 또한 없다.’ 성하지 않은 몸이 성대한 연회를 기억한다.

거창한 사람의 거절 역시 거창하다. 그가 추위에 떨 때 빈말이라도 온기를 전한 이들의 수는 열에 웃돌았다. 뒤늦게 나타난 상징과 곧 사그라들 촛불이 정적에 쌓인, 한때 귀를 틀어막은 사람을 조립한다.
이주는 한두 정거장을 걸어가는 듯한 식으로 이루어졌다. 마음만 먹으면 시기를 앞당길 수도 있었으나, 오히려 돌아가는 꼴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것은 걸었다.
언제 봐도 새것처럼 여겨진 신변잡기의 겉을 두드리거나 긁는 행위. 이는 분명 누군가의 휘장을 짓는 일이라고 하늘에 휘영청 뜬 달을 보고 외고.

오병탁, 2_t_occupy_5/53/76, 캔버스에 오일, 117 x 80cm, 이미지_양승규
윤경원, 이미지_양승규

나지막한 소리로도 충분히 잠에서 깰 수 있음을 그 책은 전하고 있었다. 독자로 상정된 불특정 다수가 여러 단계를 걸쳐 특정되었다. 그는 이를 증명하면서 일차적인 목표에 더욱 가까워지는데, 그 여정은 깊은 숲과 따뜻한 늪을 포함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식물에 덮인 들이 사뭇 위협적인 인상이다. 그것은 하나의 개체로서 존재하며 자신이 중심이 되어 수많은 비존재를 끌어당긴다.
이해할 수 없는 일과 나란히, 천장이 보이지 않는 병렬과 병정. 입구를 겸한 출구가 어둠 속에서 빛난다. 여름날의 보폭은 겨우내 점점 줄어들더니 이제는 한 뼘 정도. 눈부신 상자 속 옅은 젊음은 동작 하나에 취한 채 꼼짝하지 않고 굳었다. 나에게로 기운 손끝은 어지간한 잠도 잊지.

주한별, 포스터가 있는 벽, 종이 패널에 연필, 색연필, 오일 파스텔, 아크릴, 102 x 145cm / REMAINS, Bab, yKi, dsS, miL, e, 종이 패널에 연필, 색연필, 파스텔, 아크릴, 162.2 x 130.3cm, 이미지_양승규

견디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견디는 일. 그는 소란에 요란을 더한다고 생각했지만, 어쨌거나 동떨어진 과정을 묵묵히 통과하는 중이었다.
긴 터널의 어디쯤 놓여 입구와 출구는 까마득하다. 한 점과 반 점의 차이가 이보다 더 극적일까, 하고 품에서 석 달 전을 끄집어내며 생각한다. 그때도 보았던 것을 지금도 보고 있다. 이런 종류의 절망은 여전히 남아있는 향처럼 어딘가 그리운 면이 있다.
잔향에 기댄 고개, 누군가의 떨림을 고스란히 받아 흔들린다. 지붕을 덧댄 숨과 한없이 웅크리는 몸을 책임이라도 된 듯 떠맡고, 떨떠름하게 뜬 표정은 숟가락 속 범람을 기다렸는지.
줄곧 사유 같은 사유를 길들여 그것이 마땅한 상황일 때만 짖도록 한다. 훈련에 훈련을 거듭한다.

seunggue Yang
seunggue Yang

새로운 아침을 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