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 《더러 운 적도 있다》 김채영 개인전

《더러 운 적도 있다 Sometimes, I was stained》김채영 개인전 , 상업화랑 용산, 2025.10.14 – 11.01, 이미지_양승규
  • Date: 2025.10.14 – 11.01
  • Place:  상업화랑
  • Location: 서울시 용산구 원효로97길 26
  • Hours: 화 – 금 11:00 – 19:00
  • Contact:https://instagram.com/sahngupgallery

그림자를 날다, 2025, gouache on Korean paper (Jangji), 116.8 x 91cm 이미지_양승규

화분에 흙을 조금 덜어내는 것과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밥공기를 두드리는 것 사이엔 단순한 설익음이 있다. 익숙하지 않은 일이 익숙해질 때 좌우를 빈틈없이 확인한 낯섦은 서두른다.
절로 큼지막해진 눈이 제 품에 담은 넋.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건지 알기 싫어 나는 양달에 버젓이 놓인 꼴이 되기도 한다. 간만에 뜬 해의 비중은 어느 골목을 찾아가려나. 그 뒤를 쫓는 촉박함에 매여 덩달아 그것과 움직임을 같이한 오후가 오래도록 비었다.
주머니에 감췄다고 하지만, 비죽 튀어나온 모양새에 그저 장식적인 속마음을 떠올리는 것.
괜한 날의 이해가 적당히 우스워 눈물겹기도 했었다. 한바탕 소란으로 드러나는 밑바탕엔 마당이 결여되어 있다.

이삭 줍기, 2025, gouache on Korean paper (Jangji), 162.2 x 130.3cm 이미지_양승규

말이 많던 손윗사람. 그의 짐작에 금이 가더라도 그것은 궁한 일로 치부될 터였다. 번잡스러운 세상사.
해야 할 말보다 일이 더 많은 시기가 중심에서 벗어나려 하다 문득(혹은 숙명적으로) 중심이란 것에 관해 깊이 숙고하는 수순으로 나는 손발에 맺혀있다.
대낮에 눈언저리를 배회하는 날벌레가 무슨 대수랍시고 쫓았다. 이를 신호로 어떤 때는 시작을 맞는다. 내 곁엔 등을 돌린 상자와 낡은 연필의 잔해뿐이다.
폐허. 왠지 더울 것만 같은 공간이 우수수 떨어진다. 바닥은 이미 그을려 있다. 한 사람의 요청을 피하려다 아무도 모르는 감상에 빠지며 어영부영 도달할 것만 같은 이곳.
시야를 방해하지 마.

그늘 없음, 2025, gouache on Korean paper (Jangji), 162.2 x 130.3cm 이미지_양승규

저기 멀겋게 서 있는 것 좀 보게. 여러 번 질문해도 뭐라고 하지 않던 게 참 복병이랴.
여전한 것들 중 하나가 멈칫멈칫 손을 뻗어 결국 쥔, 예정된 몸짓. 혀가 꼬여 웃는다.
벌써 간다고. 차가 밀린다. 밤에 놓인 도로는 어째 낮보다 더 우악스럽게 보여.
비슷한 꿈과 서로에게 곤란함을 비춘 청중.
같은 말의 반복이 떠민 등엔 처음 보는 형태의 자리가 새겨져 있다. 그것의 시작과 끝은 바닥부터 처마까지의 여정을 떠난다. 나는 부리나케 양해를 구한다. 더운 김이 숨보다 먼저 밖으로 나온다.

줄타기의 질서, 2025, gouache on Korean paper (Jangji), 72.7 x 116.8cm 이미지_양승규

나는 무려 둘 셋이었나 싶은 것들을 생각했다. 두서없이 사는 것도 뒤로 조금 물러나면 규칙을 두르고 있으려나, 하고 속을 뱉은 게 두세 번쯤 되나.
이동 거리에 무감각한 요즘 나름 분주하다고 할 수 있다. 찾는 곳마다 적당한 자리가 있어, 뒤늦게 운이 좋다고 깨닫는 것. 그 차이를 좁히는 게 동시적인 나의 한시적인 생각이라고, 흐린 날에 맞는 쏠림이 있다고.
작은 생에 엉겨 붙은 자격은 탁한 웅덩이로 구성되며 하늘 보는 횟수의 평균치는 내리막을 외려 오른다. 넌지시 말을 걸까, 하는 의도는 대상에 앞선다.
기대 밖에 선 전신주, 이름과 결부된 숫자들을 불러 모으고, 양손을 맞부딪쳐 내는 소리를 분명히 박수와 구별하면서 심적으로 기운 몇을 위한다.

더러 운 적도 있다, 2024, gouache on Korean paper (Jangji), 29.7 x 42cm 이미지_양승규

더러, 운 적도 있다. 골목이라고 부르는 곳에, 오후의 보폭이 커지는 때에.
뛸 수 있지만 걷는 사람들, 낡은 간판 밑 새로운 얼룩.
공간을 점유한 사람이 되자고 말한 게 기억을 꼭 흐트러뜨리지. 이리 와도 저리 가는 꼴이라면 외따로이 빈집을 들어다 대로변에 놓은 후, 벌인 일이나 수습할 생각이다.
텅 비어 깨끗해 보이는 거리. 그곳은 더러운 적도 있었다. 해명할 길이 없어 방도란 것을 그저 품었던 이가 가능성으로 몹시 붐빈다.

불안은 평화 아래서, 2025, gouache on Korean paper (Jangji), 72.7 x 90.9cm 이미지_양승규
seunggue Yang
seunggue Yang

새로운 아침을 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