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 《두 번째 삶 BLANK READING》

이미지_양승규
  • Date: 2024. 11. 12 – 2024. 11. 29
  • Place: PS CENTER
  • Location: 서울 중구 창경궁로5다길 18
  • Hours: 화 – 일 / 11:00 – 19:00
  • Contact: @p.s.center

임재형, 연못, 2024, 캔버스에 아크릴릭과 유채, 194 x 518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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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수를 적신 사람에겐 일곱째 날이 없다. 그에겐 단지 섣부른 여덟이 있을 뿐이다. 사물의 명칭은 언제나 유희의 대상. 사교적인 사회는 역시 대수롭지 않아. 
삐쩍 곯은 외형은 직접 고른, 태가 분명한 태도일 터다. 타오르는 건 불꽃. 쏟아지는 건 억수. 먼동이 틀쯤 감은 두 눈으로 그때와 어울려 복잡하면서 사나운 나날을 신경 써 아우른다. 발목까진 바다야. 그 위는 별수 없겠지만. 

아직 더러워지기 전 수로를 정화했다. 그곳은 기형적으로 폭이 좁았고, 더럽진 않지만 깨끗하지도 않았다. 부적절한 쓰임도 사용의 횟수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일과를 마친 배움의 외침을 들었다. 저 너머는 외로울 때조차 뿌옇고. 뒤로 누운 이들의 졸음은 줄곧 그들과 함께했다지, 아마. 
손에 제법 힘줘 비튼 수도꼭지였다. 문득 생각난 이후로 지금껏 머릿속을 점령하고 있는 건. 거무죽죽한 주둥이가 물을 뱉었다. 배수의 방안이 없는 나는 지독하게 문제에 보답만 제시했다. 갈수록 익어가는 벼의 머리가 바닥으로 곤두박질칠 듯하다. 잠이 들 때 천천히 의식은 잠기며 물수제비를 수면에 아로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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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끝이 아리다. 어느 문턱에 부딪힌 게 분명하다. 가로로 늘어진 생각을 외따로이 세움으로써 처마 한 번 올려다보고, ‘꼭대기 위에 꼭대기’ 소리 없이 입술의 움직임을 길들인다. 한참이나 방목했던 그것을 각진 우리에 가두기까지 많은 일이 필요했다. 이젠 온갖 문전에 그동안 겪은 바를 가감 없이 드러낼 수 있을 터다. 

못가에 구부정한 어스름이 잔뜩 껴, 그 근처를 날아다니거나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녀석들 볼 수가 없다. 문득 빈자리에 놀라는 것도 지금은 잠시 멎은 상태. 사상의 양태가 가능성의 사유로 인해 몇 가지로 추려질 때 다리가 많거나 적은 것이 슬슬 바닥을 기듯 걸어간다. 혹은 그 반대로. 

이동이 불명예라면 비행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알면서도 주춤하는 나요. 내가 어렵다고 구시렁대는 것 치고 빤하지 않은 것이 없소. 강 너머에 볼만한 거리가 얼마나 있다고 합니까. 소반에 차려진 식사를 마지못해 해치우며 뭐라도 된답시고 불콰하게 화근을 걸치니, 난 머지않아 뒤숭숭할 때 화끈거릴 볼을 미리 취한 게요. 

– 게으름. 그리고 거섶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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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는 건조한 살갗을 겉으로 드러냄으로써 갈라진 틈 여럿을 증명했다. 차일피일 미룬 일이었다. 늘어난 기한은 받고 싶지 않은 선물을 거절하는 과정처럼 상당히 지루하고 모두 불행했다. 바닥은 잔뜩 얼어 있었다. 그 위로 누군가의 볼썽사나운 모습이 존재했다. 순식간에 빙하기를 맞닥뜨린 동물이라도 된 듯 형태에 경계는 없었다. 해결하지 못한 역겨움이 고스란히 남았다. 

이곳에 어느 틈에 몹시 물이 괴어 강을 이룬다고 해도 거들떠보지 않으리란 작별은 무고하다. 가진 수단을 활용해 접은 광경은 가위 속물적이다. 앞선 소유가 뭍에 대한 이해를 보채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곧 잦아들 소음으로 치부했다. 기록 끝은 자물쇠. 여지없던 창살. 성하지 않은 발로 축축한 땅에 흔적을 심었다. 수확을 저버린 일. 내겐 어떤 농이라도 뻣뻣할 뿐이다. 엄두 내지 못할 염두를 행선지로 삼은 것. 그곳을 향해 걸어가기보단 그저 굳은 것. 한쪽 귀퉁이가 닳은 것까지 닮아버린 두 상자의 내부는 둘도 없는 상잔으로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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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게 편 넋을 두른 장대를 휘두르는 일에 진저리 쳤다고 그는 말했다. 바다 위에서 물의 움직임을 고스란히 – 때론 무방비하게 – 받아들이며 세상 어딘가의 뭍을 떠올렸다. 그의 싫증과 물결은 상호 교류하는 무언가가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어리숙하게도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지도.
“사람 때문에 괴롭다. 일에 행방은 없다. 저 멀리 떠 버린 해가 나와 가까워졌다. 굳은살 숨기려 쥔 주먹이 투박해도, 거친 파도 눈앞에 트이며.”
말이라기보단 그저 순간순간 떠오르는 생각에 소리를 입히는 듯했다. 버석거리는 장작더미가 나에게 있던가. 

깊은 우물에서 길어 올린 물이 도로 그곳으로 들어갔다. 자다 깬 사람이 습관적으로 물을 마신 후 흐리멍덩한 상태로 제 이부자리 찾아가듯. 우물 옆에 놓인 나무 파편은 제법 오래된 인상이다. 평평한 땅 위에 동그마니 존재하기도 했던 그것이 회색 하늘 구별한다. 이것은 약간 엷고, 저것은 심하게 진하다며. 돌아갈 때가 점점 분명해질 때 더없는 눈 시림이 시작될 것이다. 사물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는 아니지만, 가끔 하나가 둘로 보일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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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공기가 흔한 아침나절이었다. 쌀쌀한 말투조차 몸을 움츠릴 듯한 찬기에 실내는 어느 때보다 귀한 것이 되었다. 바람이 통하지 않는다는 게 불길한 예언을 차단하는 것만 같아 한없이 내부를 꿈꿨다. 난 그저 어떤 비극에도 처하지 못한 일개 인물일 뿐이다. 바깥이 갖춘 일종의 완전함은 이국의 언어로 표현한 고향이었다. 이젠 나와 상관없는 일이다, 라고 말해도 심정적 어폐는 없을 터다. 사물의 실상은 다분히 목적에, 그것의 근간은 부르튼 행색에.

하루는 종일 설익다 땅거미가 지기 전 얼마 동안 완전히 푹 익었다. 나쁘지 않은 조건에서 김이 난다. 그것은 아침나절에 재주껏 허공을 찢은 숨과 동일한 생김새였다. “반성의 기미가 쌓일 때는 여간 소란스러운 게 아니었어요. 낮은 숨도 별수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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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짚어 봄 직하다. 실로 가망이 없던 전락을. 

한숨 자고 나면 가공할 만한 위력은 사람들의 인식 끝자락에서 이러저러한 따위로 여겨질까. 그 아래로 굴러떨어진 대상이 숱한 가능성을 점친 나로 밝혀지더라도, 여러 번 골머리 앓은 경험을 끄집어내, 두 눈만은 꼭 캄캄한 밤이 되도록 빽빽하게 눈가를 덮을 것이다. 긴 호흡을 요구하는 다짐도 삼등분하면 얼추 한입에 삼킬 수 있다.

seunggue Yang
seunggue Yang

새로운 아침을 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