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 《바깥과 바깥》윤여진 개인전

《바깥과 바깥》윤여진 개인전 , LDK.DT, 2025.09.26 – 10.18, 이미지_양승규
  • Date: 2025.09.26 – 10.18
  • Place:  LDK.DT
  • Location: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 653-4 지하
  • Hours: 11:00 – 19:00
  • Contact:https://instagram.com/ldk.dt

찢는 고리, 2025, 문고리, 파라핀 왁스, 식물 왁스, 44 x 32 x 50cm, 이미지_양승규

벽면을 긁어내는 일에 지칠 때쯤 간판이 걸려있지 않은 곳으로 들어갔다. 등받이가 있는 의자가 있고 소음이 없다면 뛰쳐나가지 않을 것이다. 그 정도로 지친 까닭을 어제에서 찾을 수 있을까, 하는 단상이 곧 사그라든다.
그늘에 붙잡힌 그림자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눈 밖의 세계로 몸을 던지는 상상을 하였다. 지독한 현실은 그 성질 때문에 기록된다. 여태껏 축적해 온 경험이 검은 상자 둘에 담기는 것을 나는 보았을까, 그리고 태연하게 타자의 등을 쓸었을까.
부자유와 환상의 공존으로 자정은 있으면 걸리적거리는 면이 있지만, 그렇다고 없으면 분명히 불안한 외투를 챙겨 바깥을 활보한다. 긁힌 벽면에 선명한 흔적이 흐른다.

찾는 고리, 2025, 문고리, 파라핀 왁스, 식물 왁스, 9 x 8 x 14cm / (18+18)+18x…, 2025, 실, 석고, 가변설치 이미지_양승규

눈 감고 뜰 때마다 오후의 기울기는 변한다. 미지근한 감상은 땀을 뻘뻘 흘리며 몸을 식히고 있었고, 나는 잠정적으로 존재하는 날벌레를 의무적으로 쫓았다. 손부채의 통근은 네댓 뼘 정도 되는 거리를 부지런히 칠하는 일이었다고 한다.
동네 변두리의 낭비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자못 궁금해하며 괸 턱에 예언의 징조가 넓게 퍼질까.
글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으면서 광고는 그 반대로 읽는 사람들. 그들로 구성된 사회가 어떤 풍토를 가지며 나름의 권장과 경계를 보기 드문 장소에 묻는지 알아도 꽉 다문 입. 요란한 소리를 내며 형식의 붕괴를 앞장서는 눈가.
날은 이제 곧 본격적으로 짧아질 터다. 하루가 다르게 커지는 일탈의 빈 곳을 현관으로 삼을 것이다.

이중가닥 워프, 2025, 철조망, 파라핀 왁스, 식물 왁스, 사이즈 기재 / Square bridge, 2024, 미송합판, 150 x 145 x 70cm / 이중가닥 워프, 2025, 철조망, 파라핀 왁스, 식물 왁스, 사이즈 기재, 이미지_양승규

전기와 수도가 길을 잃은 방 안에서 그럭저럭 지낼 만하다며 그는 생각했다. 현실의 계단에 선수를 빼앗긴 것을 여태 어려워하고 있다. 무엇이 되었든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버릇은 갈 곳, 못 갈 곳을 상관하지 않고 길의 초입에 그를 내몰았다. 그는 앞으로 걷다가 도중에 멈추기도 했으나, 도리 없이 전진하며 지금까지 지나온 거리가 양손 벌려 취할 자세를 품에 그렸다.

되새길수록 새로운 처지는 떡하니 한 자리 차지한 채 좀처럼 하지 않던 여유를 부렸다. 길의 복판에서, 방의 중간에서 그는 최대한 의식을 집중해 자신을 붙잡았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행해진 실험은 까다로운 조건 속에 피었고, 이를 알고 있다는 듯 잦은 시도에 드문 기념이 절박하게 얹혔다.

이중가닥 워프, 2025, 철조망, 파라핀 왁스, 식물 왁스, 사이즈 기재, 이미지_양승규

희끄무레한 잔상의 정돈을 바란다. 질서와 무질서가 적힌 종이에 무한에 가까운 사선이 쏟아져도 사상의 지붕은 조금도 주저앉지 못하고 객관적인 향방과 이름 붙은 행방을 요령 없이 곧이곧대로 연결할 테지. 그럼으로써 하늘의 일부분은 조금 열리고, 그렇게 갈라진 틈으로 생각 많은 사람이 천천히 고개를 떨구는 모습이 보여, 뜻하지 않은 만남이 작정하고 세계를 손에 쥐고 흔들려 드는 듯하다. 혹은 이를 엿본다.

시행착오를 반복해도 좋다. 포대 자루 여럿 쌓다 보면 문턱이 높은 방문도 만들고, 시대착오적인 벽도 세우는 법이다. 한 번에 다수를 마주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가닥의 고독은 아성을 위해 적성 또한 내려놓았다. 단편적인 여정과 함께 혀를 내두른다.

P-gf 무한 소용돌이 V2, 2025, 석고보드, 알루미늄 프로파일, 우레탄 비닐, 발포충진체. 196 x 356 x 200cm 이미지_양승규

선선한 시간이 불어닥칠 때는 어중간한 아침이었다지. 오전에 대해 숙고할수록 어쩐지 누구와의 만남을 피하려고 하는 것만 같아 일정에 얼룩이라도 묻길 바라는 것이다. 물질에 결부된 사고는 특유의 영험함을 감추지 못하고 언뜻 푸른빛을 토하며 일상이 뻗은 손의 각도를 면밀하게 수정하였다.
수리공 둘이 서로의 안색을 지탱하며 걸어가는 광경은 미소의 깊이를 확보하는지도 모른다. 시계의 초침에 유독 마음 쓴 시계공이 분마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언제쯤 나아질까 싶은 상황이 왼쪽으로 두세 걸음 이동한 뒤 다섯 번가량 접혔다. 궁색한 공중이 격양된 소리로 내일을 정하였지만, 아무도 이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환한 물음이 적당량 필요한가.

찢는 고리, 2025, 문고리, 파라핀 왁스, 식물 왁스, 13 x 23 x 28cm, 이미지_양승규
seunggue Yang
seunggue Yang

새로운 아침을 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