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지_양승규
- Date: 2024. 11. 28 – 2025. 02. 16
- Place: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 Location: 서울시 중구 세종대로 99(정동)
- Hours: 화, 목, 금, 일 10:00 – 18:00 (입장마감 17:00) / 수, 토 10:00 – 21:00 (입장마감 20:00) *매주 월요일 휴관,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다음날 휴관
- Contact: 02-2022-0600

이미지_양승규
가만히 하늘 올려다보는 게 마냥 죄스럽게 느껴졌다.
정체성의 확립은 이미 이루어진 뒤였고, 자아는 무사했다.
눈 감아도 훤한 지역은 끝내 한때 하다가 만 말을 이었다. 이를 듣는 둥 마는 둥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떴다.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별수 없기도 하고요. 기꺼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녔고, 간간이 들녘과 일치한 사물도 보며 지냈습니다. 이 안부는 잠잠히 웃기도 합니다.”
지친 적이 왜 없겠냐마는 비로소 심사를 추스른 나를 구태여 뒤적거릴 필요는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비옥한 만남에서 굳이 쓰러지고 싶지는 않았다. 그것이 단지 은유라고 해도 견딜 수 없음을, 난 비교적 잘하고 있음을.
“어스레한 시기가 끝없이 이어지던 때를 오전에 일부 기억하고 나머지는 천성에 맡겨 둡니다. 서두르는 건 애초부터 성미에 맞지 않아 예정보다 이르게 터를 깎고, 그 주변을 천천히 몇 번이고 돌죠. 그렇게 반복이란 것에 익숙해지는 과정을 겪습니다. 몸소 이를 풀어헤쳐 겨우내 뼛속까지 치민 공허함을 게워 낼 수도 있겠지만, 그와 같은 비정함이 나에게 있나, 하는 생각에 절로 의기소침해집니다.” 자꾸만 안으로 파고드는 여정은 예기치 않은 평화.
사철의 외로움을 환기하여요. 늘 푸른 이의 두꺼운 말이 먹빛으로 피었다.

빈자리는 빈자리로서 누군가를 지키고 있었다. 아무리 오랫동안 고심해도 그 앞에 서면 고민은 금방 태어난 개체 같았다. 나는 어디를 가는 중이었을까. 머리에 커다란 부호를 이었다. 의지할 형편이 없는 사람끼리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광경을 나누어 마신 후 동행 없이 흩어졌다. 각각의 뒷모습은 분명한 형태 없이 흐르며 내심 하류를 바랐다. 그곳은 소원한 관계들이 몰려드는 통에 항상 붐볐고 어딘가 설익었다.
천장 아래 굼뜬 바닥을 생각하니 대책 없이 맵싸한 기분이다. ‘그것에 휩싸인 것은 아니고 단지 절반에 못 미치게 덮인 정도로도 충분히 대안이 없을 수 있었어. 희구를 내치고 유희만을 위한 선전을 계속한 것은 그저 부수가 많은 문자가 눈에 밟혔기 때문이라는 걸.’ 달게 받거나 쓰게 웃거나.
창문을 열었다. 방문을 닫았다. 설령 그 반대가 되더라도 저 건너편 활개는 변함없이 유지될 터다.

뒤늦게 어린 새벽의 소식을 양손으로 들었다. 신경은 쇠약했지만, 끝내 무너지지 않을 꾸러미로 번듯이 존재한다.
“몽롱한 의식이 제 비롯됨을 졸음과 무료함 둘 중 하나에 두었다고 전한 고백은 굉장히 표백적이었습니다. 별 뜻은 아니고 그저 희다는 겁니다. 얼룩이 감히 얼씬하지 못할 정도로.”
그는 변명하는 투로 말끝을 두드렸었다. 이에 담긴 의도가 있었을 거라고 이제야 생각하는데, 시기가 늦었다기보단 정확도의 측면에서 지금일 뿐이다. 그것의 면면은 사뭇 아름답고. 그때가 번잡스럽게 솟구치며, 시종일관 체면치레에 애쓴 노고가 허물었다.
“지인의 분명하지 않은 부분과 낯선 사람의 확실한 면을 모두 붙들고 내 이름이 붙은 사건은 전부 외로웠다 평하지요. 눈 밑은 검고, 입가는 허여멀건 초상에 눈치껏 눈인사하고서 어렵사리 과묵한 속으로 달려드는데…”
시간은 금이 가다가도 틈 없이 지냈다. 보편은 어느 꽃수 위에 펼쳐져 있나.

잔잔한 오후는 넘실거렸다. 어떠한 수식도 없이, 그저 넘실거릴 뿐이었다. 그토록 바라던 순간이 훌쩍 다가왔다. 이를 남 일처럼 여기는 나는 누군가일까. 얼떨떨함에 뒤떨어지지 않는 얼떨함이 한 보 뒤에 서 있다.
나는 또 무언가를 그리는지도 모른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뜻을 의미 안에 가두고, 그 모습에서 분리를 끄집어내는지도. 수가 넷이든 다섯이든 상관없는 사물을 바란다. 손등에 분 바람 입김으로 회귀한다. 괜한 마음 몇을 알고 있다는 것이 괴롭기보단 싱거울 때 목 부근에 진한 어스름이 깔린다.
“도통 말을 듣지 않는 날씨엔 어떤 배후가 있는지, 이에 인접한 깨달음이라도 발견한다면 하루를 공쳤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 말을 향한 동의가 구슬이 되어 굴렀다. 메마른 소리 바닥을 칠 때 운 좋게 떠올린 이야기 예정이라도 된 듯 구술하고 구슬피 낡은 존재를 퍼 올린다.
진귀한 기분이 바삐 움직이던 때였다.
여느 이름과의 조우는 여전히 벅차고, 전보다 조금 나아진 처지에 한 사람의 안부 같은 안도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