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 《21세기 정물화》 STILL LIFE: OBJECTS OF OUR TIME

《21세기 정물화》 STILL LIFE: OBJECTS OF OUR TIME, 에스더쉬퍼갤러리, 2026.01.14 – 2026. 02.14, 이미지_양승규

유근택, 연기와 촛불, 2025, 한지, 캔버스에 유채, 60.8 x 45.5cm, 이미지_양승규

고개를 쳐든 저 사람들의 속내는 그들의 뜻과는 반대로 눈에 보였다. 한편으로 온난하다고 할 수 있는 알아봄 앞에서 나는 있는 힘껏 고집부려 보았다. 최악을 면하듯 전과 달라지는 건 없었다.
“어쩔 수 없어. 서랍은 단지 서랍인걸. 지난달에 비해서 이번 달은 초입부터 다른 느낌인데, 그것의 구체성은 애초부터 제외된 사람이라도 된 듯 비었다. 이름 없는 나무가 제 뿌리로 가지를 길게 늘어뜨린다. 갑작스러운 동공의 확장은 눈길을 넓혀 관심을 덩그러니 놓았다. 얘, 혼잣말은 그대로 국경을 넘어 내게 옮겨붙어 – 뾰족한 적막을 본 거야.”
사라지는 모든 것에 대한 주억거림을 단물이라도 된 양 삼키고, 거리낌 없이 바람에 흩날리는 책의 낱장을 질릴 줄도 모르고 바라본다.

김진희, 가벼워진 자리들, 2025, 캔버스에 아크릴릭, 45 x 50cm, 이미지_양승규

나뭇가지에 회복이 엉겨 붙어 있다. 잊힌 지역이 야단을 떨며 자신에게 딸린 번지수를 그냥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처마를 관념적으로 부수는 바람이 그에 맞춰 불기도 했으나, 한때는 불과 얼마 전까지 한 점이었을 뿐이고, 이미 기울어진 사태는 예전의 상태를 상상하지도 않는다.
저울에 입이 달려 서슴지 않게 저속한 말을 뱉는데, 그것의 맞은 편에 있는 주전자, 못마땅한 표정으로 그저 주머니 속에 넣어 간직할 개념을 만든다.
쥐 죽은듯 고요한 공터가 공적인 자리로 다시금 탄생할 때, 허리춤에 죄여 둔 사람의 인정은 불확실한 판단 앞에서 면이 설 터다.
잠결에 방안으로 기어들어 온 빛을 보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 주변을 기웃거리는 모습이 꿈의 연장처럼 느껴진다.

전병구, 온기, 2025, 캔버스에 유채, 45.5 x 60.5cm, 이미지_양승규

대상과 함께 계단을 오르다 보면 소식도 없던 사람의 뒷모습이 하강하기도 하고, 기다란 안개가 급히 옅어져 순간 그것이 사라진 듯한 느낌도 받는다. 나는 그 둘의 일부를 모은다. 언젠가 요긴하게 쓰리라, 하고 챙긴 감각처럼. 옆의 대상은 그저 나와 나란할 뿐이다. 우리는 평일 오후에 다소 숙명적이다.

이진주, 사물이 아닌 사건, 2025, 광목에 수간채색, 45.5 x 60.5cm, 이미지_양승규

문밖엔 시간이 서 있다. 넉넉한 문틈으로 그것을 본다. 새 한 쌍이 주위를 미련하게 날았다. 소낙비처럼 손가락질이 느닷없이 떨어질 듯해 가만히 주먹을 쥐었다. 푸릇한 마음이 어떤 양상을 변화하도록 할까. 숭고한 생각과 흉보던 버릇은 서로의 수식을 걸고넘어지다가 각자의 것을 교환할지도 모른다. 걸고넘어짐은 결국 거래를 위한 몸부림이었는지도. 어째서인지 알 수 없지만, 망연히 참담한 기분이 든다.
날은 갈수록 수적으로 우세해지고, 선명하던 과거는 제 윤곽 생각은 하지 않는지, 잿빛 폭죽을 터트린 후 그제야 웃는다. 익숙한 향의 떨림. 거울 온도는 언제나 어수룩하다.
자국보다 먼저 남은 바퀴는 평범을 겨냥하며 구른다.

정수정, 토치 릴리, 2025, 캔버스에 유채, 45.5 x 60.5cm, 이미지_양승규

연료를 태운다. 헛간은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괜스레 비었다. 벽을 통과하는 손길을 길들이려 하다가 소스라치게 몰려오는 피곤함에 한쪽 발을 절뚝거리며 걸었다. 마당의 위치 따위 눈 감으면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꼭대기에 놓인 수은등 저편에 무엇이 있어야 마땅할까.
어스름을 틈타 그림자에 갖가지 감흥을 엮어 두었다. 어제 본 듯한 사람은 아직도 어제에 매여 있으며 방금 한 다짐은 낡은 수레에 실려 대양으로 향한다.
푸른 사막의 모래에 데워진 놋그릇 위로 떨어지는 돌 부스러기, 빛을 받아 더 반짝이며 수순의 해체와 고립을 가속화한다. 차가운 강을 상상했다. 그것의 밑바닥이 어느 지형보다도 두드러지길 바란다고 누군가 토를 달았다.

seunggue Yang
seunggue Yang

새로운 아침을 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