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지_양승규
- Date:2025.03.04 – 03.29
- Place: 포켓테일즈
- Location: 서울 중구 을지로 157 대림상가 9층, 9661호
- Hours: 화 – 금, 14:00 – 19:00, 토, 11:00 – 15:00
- Contact: @yebni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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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이 끊임없이 요동치던 날, 어느 억하심정이 억새에 달라붙었다. 당시 나는 메마른 입장이었으며 버팀목으로서의 기호는 제 역할에 충실한 것 말곤 달리 할 일이 없어 그저 안정을 꾀했다.
흘려들은 메타포가 바짓단을 적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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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언어를 논한다. 그것을 사용하는 이들은 소수라지만, 그들이 이고 지는 삶은 정확히 뜨고 지는 해와 향방을 같이한다. 누구에게나 과분한 문턱에 올라 그동안의 과오라든가, 소름 끼치는 수고 등을 떠올리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 아무도 없는 주변이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소리로 채워질 때 여전한 대상을 알고 지낸다는 것이 적잖이 어제와 그제를 부둥켜안는 일이라는 걸 다시금 깨우친다. 내가 지금껏 치하했던 모든 공로는 지하에 쌓인 채 서로를 사유한다. 그 철저한 의식적 몸부림이 빛을 토해 그곳은 어느 대낮보다 환하다.
잠에 빠지는 것. 뒤늦게 그때를 되짚어(반성을 반복으로 갈음하여) 실감은 양산한다. 복잡한 공정이 아니기에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조금 미묘한 입장도 되며 비로소 현실에 안착한다. 불시착의 면모는 불특정 다수를 향한 이로움일까.
소리 없이 뒷걸음질한 말미에 붙은 서넛의 겨를이 무시로 떨었다. 감당할 수 없는 밑바닥이라도 본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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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정돈된 공간을 볼 때면 두려움을 느꼈다. 그 감정의 기원을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자신이 꼭 행실이 바르지 못한 사람이라도 된 듯했다. 부도덕을 생각하며 비도덕이라고 읊조렸다. 항상 이런 식의 방황은 그의 삶을 중심으로 한 원을 그렸다. 이에 마땅한 반응으로 무엇이 좋을까, 하고 그는 생각하곤 했다. 어쩌면 앞선 생각이 그의 유일한 반응인지도 모른다.
그는 질서가 빽빽한 방 안에 있었다. 두려움의 한복판에 있다 보면 우선 화가 났고 머지않아 외로워졌다. 두려움이 외로움으로 귀결되는 과정은 몇 번이고 되풀이되었다.
‘눈앞의 긴 줄은 난생처음 보는 난제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은 조금의 서두름도 없이 차례차례(하지만 무미건조하게) 내게 얼굴을 비춘다. 그러곤 내심 만족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줄 맨 뒤로 돌아간다.’ 이 생각이 묘사로서 얼마큼 우수한지 모르나, 그것이 그의 유일한 벗이었다. 여러 집기가 부딪치는 소리마저 정돈된 듯해 그는 자신에게 견딜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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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뜰이 깨지길 바라는 순간에도 손끝은 무성한 잎사귀로 풍성해 낮거나 높은 꿈에 인접할 조건이 되었다.
한평생 온건한 성격은 알고 보니 뭇 과격들과 어울렸다는 사실.
목소리를 다듬을까, 곧 죽어도 좋으니 저 거친 파란을 펼쳐 볼까. 다 듣고도 모르는 무리의 일부와 곤경의 조각은 구부정한 양태로 서로를 규정한다.

잘 모르겠대. 이러다 곧 무감각의 층위를 나눠 나름 복잡한 생태를 구축할 수도 있고, 업무에 엮이지 않으면 다시 볼 일 없는 관계를 여러 발짝 떨어져 바라볼 수도 있고. 정해진 건 아직 없다고 해. 억양은 작정이라도 한 듯 말에서 한참이나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남 일에 넌더리 난 나는 추상적인 손금을 보며 어제를 점치고 대안 없이 웃었다. 시작과 끝이 사로잡은 일에 대한 연민을 느끼며 어중간한 상태를 해체하려 하지만, 섣부른 동정에 목이 늘어난 제 삼의 개체 흉내에 그만 시간을 태웠고, 그 탁한 연기에 의도는 진이 빠졌다. 양 주머니에 자리 잡은 소우주는 소규모를 꽤 마음에 들어 했는지 금방 그곳을 떠나지 않고 오래 머물렀다. 누군가의 입장에선 영원과도 같은 기간이었다. 그 속에서 기약의 부질없음을 느끼는 것도 근사한 일이 되리라. 나와 너를 손등 위에 두었다. 그곳은 상념이나 어느 관념 혹은 은유의 토대일 것이다. 눈 감았다가 여러 번 마주하곤 하는 새벽이 장마철 날벌레라도 된 양 들끓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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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쩍 마른 미소가 후련할 만치 가벼운 걸음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 뒤를 쫓을까 고민했지만, 그만두었다. 그럴 이유가 없다는 게 한몫했다. 도달한 관계는 항상 균형을 이루었다. 미급한 처사로는 도저히 오를 수 없는 사다리나 언덕 같은 평형에 도무지 태연할 수 없던 작금. 가만히 올려다본 천장이 천해의 바닥 같다고 느낄 때 겹겹의 밤은 도래한다. 칠흑에 섞인 백야. 우기에 어깨를 적시는 건 주둥이가 긴 주전자에 담긴 타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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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이 기우로 돌변하는 순간이 되면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저 자의식이 과잉된 것이라고 할 수도 있으나, 그러지 않기로 한다. 조촐한 하루가 마무리될 때 부서질 것은 부서지고, 또한 무너질 것은 무너진다. 내일은 인적 없는 거리가 사람들로 붐비려나. 그리된다면 발 디딜 틈 없는 도로 위에 나는 헤엄치듯 걸으며 아래로 향할 것이다. 그렇게 도달한 하류에서 외투를 벗어 던지고 한결 가벼워진 옷차림으로 누군가를 맞이하겠지. 그는 줄곧 기다리던 대상인가, 뜻밖에 거주하는 사람인가.
낯선 감각과 불안정한 감정, 이 둘의 뒤엉킴은 낯익음을 불러일으켜 먼지가 켜켜이 쌓인 책상을 재단하게 하였다. 수치로부터 시작된 사유는 타인의 것이기도 하고 온전히 나의 것이기도 하다.
눈 깜빡거림을 의식하면서 사물의 연장이기도 한 값을 응시하는 건 부단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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