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Date: 2025.09.12 – 10.04
- Place: 다이브서울
- Location: 서울 광진구 천호대로 625, B1
- Hours: 월 – 토, 13:00 – 18:00
- Contact:https://instagram.com/dive.seoul.art

많은 사람이 나에게 요청하였다. 무엇을 요청했는지 기억할 수 없다(몹시 사무적인 말투였다). 끝내 무언가를 떠올린다고 해도 그것은 이유도 없이 땅을 파는 일로 이어질 게 뻔했다. 그러므로 나는 그저 요청이 있었다는 것만 알 뿐이다.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면 더 이상의 언급은 아무 개가 물어간 물체 정도가 될 터였다.
더럽지는 않지만, 생기가 없는 존재의 잇자국이 누군가의 기념을 쫓는다.
동시에 이루어진 일에 지레짐작은 한 발짝도 떼지 못하고 굳었다. 그 자리에서 때론 마을을 삼키려 드는 고목 노릇하며 수직과 모서리를 짐짝 가장 안쪽에 두기도 했다.
지금껏 일관되게 떨친 수요가 제 처지보다 낮게 존재함을 여전히 함구하고 있다.

책상은 끈적거렸다. 그것은 고된 노동을 마치고 땀에 흠뻑 젖은 사역 동물을 떠올리게 했다. 실내는 덥지 않았지만, 어딘가 불쾌한 요소가 감돌았고, 크게 소리치고 싶은 것을 억누르는 사람 특유의 공허함이 낮게 깔려있었다.
무감각한 사고(思考)가 인적 없는 거리에서 교통정리를 했으며 그 거리의 수풀은 존재의 총량을 채우듯 과도하게 우거졌다. 소문은 좀체 늘거나 줄어들지 않았다고 다소 개념적인 빈 건물이 말했다.
이주를 시작한 몇 무리의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들은 좀 더 나은 환경을 위해 이동한다기보다는 이동 그 자체를 위해서 거처를 옮기는 듯하다. 인식은 없고 오래전부터 생존을 거듭한 습관만 그들 주위를 감싼다. 이에 나는 상쾌한 기분을 느낀다. 그렇게 유목민의 삶은 나의 빈 터를 채웠다.

불공평함에 대해 생각하는데, 왠지 모르게 금주가 손에 들린 술병을 떠올렸다. 아니면 애연가 손에 붙잡힌 크레용이라거나. 이런 생각의 나열은 너저분한 생활을 조금은 정돈하려 들지도 모른다. 겉으로 봐서는 내용물의 유무를 알 수 없는 상자가 하나에서 둘로, 둘에서 셋으로 점점 불어나고 있다.
소리는 억압에서 해방된 개인처럼 자유롭게 무엇이든 했다. 몸집을 크게 불리기도 했고, 갑자기 사라지기도 했으며, 간혹 대낮을 반으로 갈라 한쪽을 냉정하게 던져버렸다. 만끽의 방식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여실히 숨 가쁜 과정이었다.
주머니 속 지폐는 아무도 모르게 굼뜬 손가락 끝에 닿아 그 비밀스러운 둔함을 경험하더니 이윽고 이를 두둔하게 되었다. 둔탁한 생김새에서 비롯된 둔중함이 많은 것을 함의하고 있다.

멋들어진 꽃다발을 손에 쥐고 익명투성이 건물들을 지나 한가한 곳에 당도했다. 도착은 꼭 연착된 열차에 오르고 난 후 느끼는 해방감 같았다(아니면 그와 비스름한 무엇이거나). 그다지 총명해 보이지 않는 의자에 앉아 그동안 재촉했던 걸음을 잠결로 끌고 들어갔다. 열 때마다 나긋한 비명을 지를 것 같은 방문은 그사이에 두세 번가량 닫힘 없이 열렸다. 이는 불공정한 무역의 일종일까. 먼바다가 사라진 등대의 거처를 궁금해하였다. 어딘가에서 공백은 급격히 무너지고 있었다.

책을 펼쳤다. 단어들은 목마름을 호소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종이 위에 물을 쏟을 수는 없는 일. 그저 공교로운 시간은 이렇게 미끄러지듯 앞으로 향한다고 생각했다.
주위의 변화는 쉽게 주워 담을 수 있는 일이었지만, 허리 굽히기가 마땅치 않아 주변엔 변화가 수두룩했다. 가끔 그것들을 목 빼고 기다리는 상상을 한다. 이를 탓하듯 눈앞엔 흔한 감정의 처우가 존재할 뿐이다. 고요를 틈타 아름다운 것을 떠벌리기도 했다.
축제가 끝난 후 얼마간 무기력한 상태가 지속될 것이다. 둑을 쌓는 일. 아직 밝기도 전 저물 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