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지금 다시 소환되어야 할까? 《힐마 아프 클린트: 적절한 소환》

  • 전시명 힐마 아프 클린트: 적절한 소환
  • 기간 2025.07.19 – 2025.10.26
  • 부산현대미술관
  • 요금 성인 10,000원 / 어린이·청소년 6,000원
  • 문의 www.busan.go.kr/moca

“나의 그림은 사후 20년 동안 세상에 보여지지 않기를 원한다.”

1906년, 칸딘스키보다 5년 앞서 추상화를 그렸지만, 그녀의 이름은 한 세기 넘도록 지워져 있었다. 이유는 단 하나,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그 미술사의 공백을 메우는 첫 아시아 순회전이 한국 부산에서 열리고 있다.

부산현대미술관의 《힐마 아프 클린트: 적절한 소환》은 단순한 재조명이 아니다. ‘추상의 기원’을 바꾸는 전시이자, 예술의 본질—보이지 않는 것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에 대해 던지는 철학적 질문이다.

사진: ARTLAMP

“보이지 않는 세계”를 그린, 최초의 추상화가

힐마 아프 클린트(Hilma af Klint, 1862~1944)는 귀족 가문 출신의 스웨덴 화가다. 세밀한 식물 도감을 그리던 그는, 여동생의 죽음 이후 신지학과 영매술에 몰입하며 ‘보이지 않는 세계’를 감각적으로 표현하려는 회화 실험에 몰두한다.

그 결과물이 1906년부터 1915년까지 작업한 193점의 대작 연작 〈신전을 위한 회화(Paintings for the Temple)〉다. 이 중 핵심은 높이 3미터에 달하는 〈10점의 대형 회화〉 시리즈. 인간 생애의 흐름을 나선, 곡선, 원, 색의 운동으로 풀어낸 이 작업은 당시 그 어떤 회화보다도 앞선 ‘순수 추상’이었다.

하지만 그 그림은 공개되지 않았다. “이 그림들은 시대가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라는 판단 아래, 작가는 사후 20년간 열람을 금지하는 유언을 남긴다.

다큐멘터리 영화 <힐마 아프 클린트 – 미래를 위한 그림> 상영 모습 (영상: 마노엔터테인먼트)

이제야 비로소 적절한 타이밍

그림이 공개된 건 그녀가 세상을 떠난 지 40년이 지난 1986년. 그리고 2018년,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전시를 통해 전 세계 미술계가 힐마 아프 클린트를 ‘재발견’했다.

부산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일본 도쿄국립근대미술관 전시에 이은 아시아 최초 순회전이자, 국내 첫 대규모 회고전이다. 회화, 드로잉, 노트 등 총 139점을 선보이며, 생애와 작업 흐름을 7개 장면으로 재구성했다. 전시 구성은 단순히 시간 순서가 아니라, 힐마의 ‘질문’을 따라간다.

  • 1장면: 대면 – 식물과 초상을 통해 현실을 관찰하던 시절
  • 3장면: 보이지 않는 세계 – 영적 계시를 받은 뒤 추상으로 진입
  • 5장면: 진화 – 대형 회화와 상징 체계로 우주적 질서를 시각화
  • 6장면: 무제 – 형식과 제목이 없는 자유로운 후반기 작업

전시장을 가로지르는 벽에 마련된 ‘통창’ 구조는 초기작과 후기작을 동시에 조망하게 해 힐마의 시각적·사유적 진화를 시공간을 넘나들며 느끼도록 한다.

예술인가, 계시인가?

힐마 아프 클린트를 둘러싼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신의 목소리를 받아 적었다’는 고백, 상징이 가득한 기호 체계, 구조를 해체한 후기 회화. 우리는 그를 추상의 선구자라고 부를 수 있을까?

물론, 그녀의 그림이 칸딘스키, 몬드리안처럼 이론적으로 정립된 추상과는 결이 다르다는 지적도 있다. 힐마는 예술가인가, 영매인가. 혹은 둘 다일까? 중요한 건, 지금 우리가 그 질문을 꺼내고 있다는 점이다.

‘재조명’을 넘어 ‘재해석’으로

《힐마 아프 클린트: 적절한 소환》은 힐마의 시대를 동시대성으로 끌어와, 예술이 질문할 수 있는 방식과 전시가 감각을 다룰 수 있는 방식을 재구성한다.

무엇보다 이 전시는 ‘누가 먼저 그렸는가’의 연대기 싸움이 아니다. 힐마의 예술은 우리에게 말한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


사진 촬영 ARTLA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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