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 《Air Time》

옥상팩토리_김예진, 박주연 <Air Time>
포스터_김예진
  • Date: 2025. 02. 26 – 03. 09
  • Place: 옥상팩토리
  • Location: 서울 송파구 법원로4길 5 지하1층 B111호, B112호, B113호
  • Hours: 수: 13:00 – 21:00, 목 – 일: 13:00 – 19:00 (마감 1시간 전 입장마감) 03.09 13:00 – 17:00
  • Contact: @oksangfac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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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진, Digging a Well 5, 2025, oil, gel medium on canvas, 97 x 193.9cm
이미지_양승규

무엇이 필요한가. 황당함 너머엔 구축이 있다. 우리에서 벗어난 가축이 야생을 마주할 때 수가 모자란 무리는 절로 들끓는 의도에 성가셔하며 내심 산짐승과 함께 터전을 이루길 바란다. 순수는 이 바람에서 비롯된다. 비록 손수 꿰매지 못한 구멍이라도 타인을 통해 그것을 깁고, 바닥이 보이지 않는 우물 속에서 영영 헤엄치더라도 그런 유영을 언제나 살갑게 대할 것이다. 대화로 풀어낸 관계의 간극은 바닥과 천장의 털모자를 쓰고 철 지난 사상처럼 웃었다. 어떤 말이라고 걸어볼까. 군불 위 망설임에 훈김이 돌았다.

공간을 지각하는 재주는 자주 넌더리에 시달렸으며 표정이든, 사물의 근원이든 무언가를 잃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화를 면한 이의 다행을 떠올렸다. 하마터면, 하마터면. 서두의 반복은 일상을 몇 꺼풀 벗겨냈다. 그럼으로써 주위는 주의를 기울여야 할 만큼 연약해졌는데, 위태는 아직 이르다고 생각한다. 결국엔 받아들일 사안이 볕 없는 사막 같다.

김예진, Digging a Well 1, 2023, oil, gel medium on canvas, 192 x 30cm
이미지_양승규

그는 양탄자를 보고 낡았다고 말했다.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많은 생각으로 수긍했다. 그때의 낯빛은 늦은 오후에 어울릴 법했고, 기어코 물러나지 않았다.
쏟아지는 졸음에, 알맞은 허구에, 지금부터 얼마쯤 떨어진 한때에.
누군가의 이기심으로 죽 늘어선 지붕을 보았다. 그것들의 일부가 되고자 자못 천연덕스럽게 군 시간이 그저 군말 없다. 

김예진, 00:01 00:03 00:04, 2024, oil, gel medium on canvas, 91 x 182cm
이미지_양승규

어디서 본 듯한 장면이 반복된다. 언제부터였는지 알 길이 없다는 점에서 조금 불우하다고 할 수 있다. 호흡과 숨의 갈래는 나서부터 거친 토양이었다. 기후의 특이성을 주머니에 담고 인적 없는 그루터기에 앉아 어제 저버린 기대를 보았다. 그것은 어째 거대하게 느껴진다. 손 크기와 상관없이 거머쥔 양이 동일한 이들이 우르르 문지방에 몰려들어 치밀하게 침묵을 부수었다. 가만히 있어도 발치에, 팔꿈치에 충돌이 기어오른다. 본의 아니게 면전에 칠한 억수를 배관이 잘 된 도시로 맞섰다. 저마다 옳다고 생각하는 배수로를 떠올리고 그것의 대략적인 폭을 손으로 가늠했다. 상상은 이득도 손해도 아니었다. 작년 이맘때 이곳에서 무엇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이는 마치 돌이킬 수 없는 잘못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여기는 어디일까. 외딴 그루터기인가, 발 디딜 틈 없는 문지방인가 아니면 환상적인 배수구의 입구인지도.
곧 장소를 옮길 창문과 갑작스레 불어닥친 거처를 마주하며 추위를 살폈다. 한 걸음 늦게 관념뿐인 외투를 걸친다.

김예진, 00:00 손톱을 뜯는다, 2025, oil, gel medium on canvas, 15.8 x 15.8cm
이미지_양승규

조그마한 마을에 어울리지 않는 시계 탑이 있다. 굽이 낮은 구두 소리 그곳에서 들려온다. 비장함이 감도는 꼭대기엔 버젓이 한 쪽 다릴 올리고 선 새가 있다. 뭉툭한 부리를 오래된 조각상을 연상시킨다. 잘못된 주소지가 범람하고 하늘은 때에 맞는 빛의 농도를 조절하지 못해 낮과 밤의 구별은 독립된 삶처럼 쉽지 않다. 존재의 측면에서 바라보면 앞선 시계 탑과 새는 허물없는 사이가 될 수밖에 없고. 막역한 관계로 인한 평이함이 생활 곳곳으로 스며들 때 신체의 일부는 조금 물러질지도 모른다.

김예진, Digging a Well 3, 2025, oil, gel medium on canvas, 40.9 x 53cm
이미지_양승규

“잠깐만 기다려줄 수 있겠습니까.”
억양 없는 요청이었다. 그는 다급한 상황에 맞물리다 그만 체념해 버린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타고난 능력 같은 건 쉬이 누를 것이 된다고 말했을 때 이후로 두 번째다. 이 낯익음에 나는 허리 아래로 계단을 뻗칠 수밖에 없었고, 얼마간 굳어 있었다. 어느 표정에 뒤처지지 않을 만큼 언 상태로 그의 요청에 응했다.

발밑에 사로잡혀 있다가 선심 쓰듯 주위를 보니 두세 걸음 앞에 그가 있었다. 처리해야 할 일은 다 끝난 듯했다. 누구라 할 것도 없이 구술과 몸짓에 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린 모두 열정적이었으나, 얼마 가지 못해 구슬퍼졌기에 말없이 걸었다. 그와 두세 걸음 차이 나던 간격은 점점 좁혀졌다. 이러다 붙게 되는 것은 아닌지 생각했지만, 그것도 나쁘지 않아 생각조차 없앴다. 드문드문 말을 걸고, 지난날을 돌이켜 대답하고, 둘이서 나눠 가진 시작은 으레 그렇듯 조금도 자신을 벗어나지 못했다. 마른 날의 외벽이었다.

박주연, 물길, 2025, 장지에 유채, 160.6 x 350.4cm
이미지_양승규






마디













박주연, 물길, 2025, 장지에 유채, 160.6 x 350.4cm
이미지_양승규

이곳에 도착했을 때 지금까지의 과정은 송두리째 날아갔다. 아직도 기억하지 못한다. 때론 그 과정을 생각해 내는 게 억지를 부리는 것 같기도 하다. 장마와 가뭄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반복되는 상상을 하였다.
당시 계절은 알 수 없지만, 따뜻한 바람이 불었다. 잠깐 눈 감는 것만으로도 금세 잠들 것 같은 온기에 퍽 자연스러운 마음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시멘트 위에 방수포가 자라나도 그런가 보다 했을 것이다.
도착과 함께 시작된 세상은 그전보다 좁고, 높았다. 어디까지나 그런 기분이 들었지만, 실제로 그런 지도 모른다. 거리에 즐비한 건물들의 외형은 직선을 거부하는 듯 전부 굴절되었다. 그럼에도 전부 견고한 인상을 주었는데, 여태껏 허물어진 건물들은 죄다 굴곡이 심했고 걔 중에선 회오리의 일부인 듯한 것도 있었다. 편견의 압제는 앞을 왜곡하는 현상을 불러일으키는가. 바퀴 없는 수레가 덩그러니 놓인 골목에 다다르자, 당분간 이동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것을 뒤집어쓴 채 각진 입구를 보았다.

박주연, 물길, 2025, 장지에 유채, 160.6 x 350.4cm
이미지_양승규

서로가 하나도 담겨 있지 않은 대화가 몰려왔다. 하루에도 여러 번. 시간은 그때마다 달랐지만, 언제나 홀수였다. 한 번이거나 세 번 혹은 다섯 번. 그 이상은 기억나지 않은데, 난 지금 억지를 부리는 걸까. 백과사전의 낱장이 삼삼오오 모여들어 무엇도 모르고 행진하는 듯한 광경 앞에 경험은 다른 언어로 쓰인 해설과 존재를 같이 한다.
이곳에서 생활하려면 역시 여러 가지 물자가 필요했고, 그것들의 이동은 교환으로 이루어졌다. 개인당 지금까지 알아들은 말귀가 화폐로서 기능했다. 대체로 비슷한 사정이었지만, 풍부한 물자로 외롭게 지내는 이들도 있었으며 신발 한 짝에도 과분해하는 이들 또한 있었다. 상황이 다른 그들의 공존으로 이곳의 균형이 유지되는지도 모른다. 나는 어느 쪽이었나 하면 알아들은 말귀는 많았지만, 소비에 인색했다. 신발 한 짝에 부족을 느꼈지만, 이미 성가신 상태였다. 그렇게 결핍은 가깝고도 멀었다.

박주연, 물길, 2025, 장지에 유채, 160.6 x 350.4cm
이미지_양승규

이곳에 머문 지 두세 달가량 되었을 때 떠나기로 했다. 골판지를 녹인 것 같은 물을 마시며 뜸을 두고 한 번 더 결정했다. 당일 아침은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었지만, 어딘가 특별하게 보였다. 생활의 흔적이 제법 남아 있는 방에 곧 살풍경이 들 터다. 대부분 낡은 집기로 이루어진 공간에 들어찬 혼란은 늘 새것이었다. 그럼에도 그것이 낯설지 않은 건 내게도 굴곡이 생겼기 때문일까.
환기를 위해 열어둔 창문으로 한때 유행하던 생각이 불쑥 들어와 우물쭈물하더니 황급히 밖으로 나갔다. 스스럼없기를 바라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고 짧게나마 하소연을 늘어놓았는지도 모른다. 아무도 모르게. 주변에 가장 높은 곳은 건물 두 채를 쌓은 높이의 공터였다. 그곳에서 내려다본 지상은 종이로 만든 세상 같았다. ‘벌레의 꽁무니에 붙은 불빛을 모아 가로등으로 쓰고, 사람들의 허물은 되도록 되묻지 않고.’
보다 실제에 가까운 곳으로 향했다. 정해진 절차였다. 굳이 외로울 필요까진 없었다.

박주연, 초록 수영장, 2025, 린넨에 유채, 97 x 130.3cm
이미지_양승규

seunggue Yang
seunggue Yang

새로운 아침을 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