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 《All That Is Not Mine 내가 아닌 모든 것 》 김대운, 김지용 2인전

《All That Is Not Mine 내가 아닌 모든 것》 김대운, 김지용 2인전, 이미지_양승규
  • Date: 2025.07.03 – 08.02
  • Place:  갤러리 기체
  • Location: 서울 성북구 창경궁로43길 27
  • Hours: 수 – 토, 12:00 – 18:00
  • Contact:http://instagram.com/gallery_kiche

김대운, 너와 나 우리 You, me, and us, 2025, Glazed Ceramic, 136.5 x 109.5 x 67 cm, 이미지_양승규

양동이 속에 급히 허우적거리는 도상은 사회에 범접한 군상의 일부였다. 어찌 보면 가혹한 묘사라고 할 수 있지만, 혹여 그르칠지 모를 인상에 팔꿈치가 뜨거워지는 순간을 가만히 인식했다. 관점에 따라 슬픈 일이었다.
대개 별 뜻 없이 존재하는 이들이 남긴 처사에 온당한 감각만이 꿈틀거린다. 돌이켜보니 깊게 바람맞힌 충족은 가히 충동적으로 나아갈 수 없었을 터였다. 이렇게 자욱한 비극은 끝없이 춤을 추려 하지만, 비단 가다듬지 못한 몸짓뿐만 아니라 사뭇 방만한 목청이 사지를 맨땅으로 끌어내렸다. 참 많은 생활상이 뜀박질하였다. 발을 구르는 소리가 타고난 신념 가까이에서 들린다.

누군가 만나기 전에 수없이 여닫았던 서랍과 안개 덮인 꽃병을 시간차 두고 생각했다. 길게 보면 앞선 생각은 일련의 동작을 나타내는지도 모른다. 먼젓번에 속에 인 내지름은 지금까지도 사그라지지 않은 듯하다.

제자리는 거꾸로 선 채 이리로 다가왔다. 나는 뺨을 서쪽에서 동쪽으로 굴리는 중이었고, 이름은 반쯤 잘린 사내는 열심히 물거품을 만들다, 잠시 쉬는 시간이었다. 우린 약속이라도 한 듯 공교로웠다. 제자리는 먼발치에서 성실하게 거리를 좁혔고, 그 과정이 뜻 모를 찬사를 주변에 내비치기도 했으나, 무뚝뚝한 인상은 이를 알고도 모르는 체하며 슬쩍 눈을 감았다.
‘앞코가 붉게 물든 건 필연의 소산일까, 우연의 만끽일까.’ 무익한 생각은 무려 다섯 가지의 가능성을 밀치고 어떻게든 한두 마디라도 이으려 종일 주절거렸다. 그것이 거르지 않은 한시가 변두리에 덜컥 걸리는 것을 나는 종종 상상한다. 굴절된 서사가 앞뒤를 분간하지 않고 이동할 때 적막한 분위기는 매분 무너진다. 너도나도 정직한(혹은 그러기 위해 애쓰는) 시기가 있었다. 정작 쉽게 이를 잊곤 하지만.
환상의 다분함은 빛 발하는 철쭉. 시간보단 계절의 흐름에 올라탄다. 그 분명한 차이를 온몸으로 느끼며.

김대운, 분노와 침묵보단 사랑이지 Love is best, 2025, Glazed Ceramic, 31 x 21 x 12 cm, 이미지_양승규
김지용, 두상3 head3, 2025, Oil on canvas, 91.4 x 72 cm, 이미지_양승규

무난한 날이 떨친 맹위가 고집스레 존재한다. 한두 마디 말과 한두 차례 인사로는 차이를 빚어낼 수 없는 정황이 정적과 적막을 구분하여 애쓴다. 그 가상한 노력이 툇마루에 치우치려 하자, 괜한 소리를 불러일으키려는 시도가 터무니없는 고독을 맞았다. 하늘은 대체 누구의 소유란 말인가.

소문 없이 빈말하는 청중에게 둘러싸여 도착지는 같지만, 가는 길은 가지각색인 여정을 발음한다. 발화의 시간은 허송세월한 이에겐 그저 덜 익게 보일 뿐이다. 작게나마 준비했던 악수는 애석하게도 좋지 못한 수가 되어 돌아왔다. 사뭇 지독한 감정을 느끼기도 하나, 잘못 뗀 걸음에서부터 두 번 짚은 난간에 이르기까지 어지간한 숨 참기는 없었다. 둔탁하게 허공을 가르는 포물선이 뛰듯 날았고, 날듯 뛰었다.

느지막이 잠에서 깨며 항상 일찌감치 잘 준비를 마친 이의 낮을 구기기도 하였다. 그럴 때마다 작은 구김도 없는 밤을 맞이할 생각에 그는 어린아이처럼 웃었다.

비단에 낙서를 한 듯한 감정의 치우침을 받으며 곤한 생각을 일깨웠다. 관계의 이동이 있었지만, 변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 리 없는 사람이 되어 그저 제자리를 지켰다. 단지 방치되었는지도 모른다.

마음씨 좋은 이가 입가에 은근한 미소를 띠며 안부를 물었을 때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고 종일 발끝만 바라봤던 일이 간헐적으로 입 밖으로 튀어나온다. 마른기침도 이를 막지 못하고, 목뒤를 덥인 두드림만이 사태를 철저히 방관하기도, 거듭 빙자하기도 했다.

흐트러진 방안이 무관심을 표방하고, 제 처지를 극한으로 끌어올리기도 하다가 질서가 없다는 것, 바로 그 부재를 위하여 얼마 있지도 않은 분위기를 꿈틀거렸다.

“눈에 보이지 않는 대상을 허구로 치부하며 때론 이를 구하려고 악쓰기도 하여요. 종잡을 수 없는 생활은 얕은 문턱도 굳이 바닥을 짚으며 넘고, 기어코 의자를 밟고 올라가 천장에 손바닥을 대기도 하지요.”
나보다 앞선 존재를 향한 타성, 양지바른 곳에 눕고.

김지용, 두상2 head2, 2025, Clay, paraffin, and white pigment, 29 x 12 x15 cm, 이미지_양승규
seunggue Yang
seunggue Yang

새로운 아침을 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