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Date: 2024. 10.10 – 11.01
- Place: PS CENTER
- Location: 서울시 중구 창경궁로 5다길 18, 3F
- Hours: 화 – 토 / 11:00 – 19:00, 일,월, 공휴일 휴무
- Contact: @p.s.center

이미지_양승규
한 차례 벗들을 불러 모아 눈앞에 두었다. 뜨거운 커피는 나뿐만 아니라 그들에게도 긍지로 비칠지. 단벌 신사의 무례함이 삶의 보편적 테제가 된 일을 문득문득 기억한다. 그럴 때마다 사변(思辨)으로 기운 옛 친구는 분명 내가 아닐 터다. 하소연의 께름칙함을 소일거리로 삼아 하루 이틀 평범함을 연명하는 이가 염세적인 태도를 내게 보인다고 해서 그와 나의 일상이 허점에 찔리기라도 할까.
지붕을 기어오르기 전까진 아무도 그를 인식하지 않았다. 그는 존재했지만, 그와 동시에 – 사람들의 안중에 – 부재했다. 외면의 대상조차 되지 못한 것에 대해 그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없다. 그는 오직 행동으로 보였다. 그 움직임을 보고 깨닫거나, 의도를 파악하거나, 나름의 짐작을 해야 했지만,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모두 하지 않았다. 그만둔 것이다. 그는 실제로 추상을 그린다고 평소보다 낮은 신분으로 읊조렸다. 마치 그가 시라도 된 듯이.

이미지_양승규
큼지막하다고 생각하면, 그 생각에 빚을 내서라도 크기를 불린 장독이었다. 이런 묘사로 획득할 수 있비교적 하늘에 가까운 곳을 위하여 지붕을 오르는 수고도 무릅썼다고 그가 말했다. 이는 명백한 허구지만, 있을 법한 이야기일 터다. 그 둘에서 뻗어 나온 선이 평행을 해치지 않고 걸어가다 실제로(실제라는 점에서 소실점과는 다르다) 만나게 되는 시간과 장소에 그가 그린 추상이 버젓이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은유로의 그는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다. 이 또한 모난 수순일까. 왕국의 한때처럼. 서러운 바다가 빚어낸 외딴 강처럼.
타인을 부르다, 언뜻 목청을 괸 그는 막심한 지붕을 입었다. 그것이 손해와 같은 취급을 받은 지 여러 달이 지났지만, 주변은 전부터 그랬다는 듯 일상에 균열은 없었다. 얼마간 낙심한 기색도 잘못된 기후처럼 금방 달아났고, 어제는 별수 없다는 투로 불어났다. 이따금 무료함을 걷으며 쇳소리가 눈 밑으로 다가왔다. 거친 손이 그의 삶에 시사한 바는 외길에 든 시선, 그것의 뒷모습이었다. 판단보다 앞선 광경에 누군가의 황량한 처우를 곱씹는다.

이미지_양승규
낡은 끈에 무수한 장대가 서슬을 두르고 호젓하게 매달렸다. 야트막한 인식이 인간에게 어떤 불상사를 일게 하며, 결국 그의 내면에 궂은 심상을 꿰어놓을까. 깁은 곳에서 벗어나는 일에 과신한 이의 변고는 우스운 역량으로 사람들의 입과 입을 연결할 터다.
기필코 다짐한 행동 양식과 사유의 한계. 언어 위로 굴러떨어진 속셈. 먼 길을 의식하며 처연함을 부수었다. 가파른 절벽 아래 띄엄띄엄 존재하는 초록의 떼가 바닥도 천장도 아닌 곳에서 지금까지의 살아왔던가. 지나친 오만으로도 자신을 엎지를 수 없던 때는 의표의 바깥에 머물며 남들의 두 배쯤 되는 보폭으로 생각에서 멀어져 간다. 세상의 끝을 향한 걸음도 그렇게 헛헛하진 않을 것이다.

텅 빈 잠을 잃고 기거함으로 빈집의 존재를 부정하고서 구부정한 잎으로 하늘을 일부 가린 식물의 남은 수명을 헤아린다. 그것에 축적된 가을은 올해 횟수로 몇인가. 머릿속에 가없이 몰아친 빈 들은 가엾게 빈들거렸다. 제아무리 거센 성화라도 그곳에 서면 무기력하게 춤추며 사그라들 테지.
타자의 자아를 자애롭게 받들며 반드시 이로운 생각으로 – 조금 이르거나 늦은 – 아침을 맞는다. 진작에 수포로 돌아간 모든 것이 한 점이 되어 번잡스러운 모순을 지적할 때 주위엔 아무도 없다.

애써 돌아온 길이 나를 질러갔다. 그때 나는 무언가에 심하게 질린 상태라 종류는 차치하고 그저 새로움이면 귀하다, 여길 팔자였다. 저녁 식사는 평소보다 많았고, 그 탓에 과잉에 대한 생각을 가득 찬 위장으로 했다. 시답잖으며 불쾌한 기분을 점진적으로 소화. 저 너머의 해는 발을 끌며 넘어가는 듯하다.
하나부터 넷까지 마음에 들지 않아도 남은 여섯부터 열이 나름 살아갈 만하지 않냐고 회유하는 까닭에 여태껏 살아있다고 말한 이는 절반의 의지를 가졌다.
“거절하기 힘든 부탁도 아닌데 결국 청을 저버리지 못했다.” 그가 말했다. 그는 단지 그것을 소유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책임은 불타 없어져도 기어이 남아있는 맡은 바에 웃음은 약간 치를 떨었다.

들꽃에 맺힌 시선은 푸르게 흘러내렸다. 움직임에 대한 색채를 느낀 지도 여러 날이 지났지만, 그 시간의 다발이 무언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고정된 현상의 동적인 정적’ 관념은 불현듯 닫힌 의식을 환기하고, 쓸모에 참견이나 하는 외마디를 쏟아냈다. 생각이 불어나겠구나, 앞날의 예견이 들쭉날쭉한 돌파구를 맞닥뜨리게 할지. 눈 감으면 회벽, 감춘 속내는 외벽. 까마득한 때에 경험을 던지는 것. 누군가에겐 자못 진지한 일일 터다.
고르지 않은 바닥 면에 어둠을 틈타 솎아낸 시절이 우두커니 드리워도 동떨어진 자국은 끝내 남지 않았다. 허물을 부수는 일련의 작업은 낮이고 밤이고 이어진다. 좀처럼 깨지지 않는 꺼풀, 생의 의지 – 혹은 삶의 약동 – 란 그 안에서 방향을 반대로 바꾸는 일에 몰두하고 있을까.
부리나케 녹지로 변하다가 다시 원형으로 돌아오는 주변을 분수에 맞게, 견딜 만큼 두드리는 과정은 필요에 의해 누락되고 때로 송두리째 생략되기도 한다. 동일한 상품의 존재, 누군가 이를 비극적으로 여길 것이다. 사방에 시장이 넘나들며 값은 결국 쇠붙이의 의로움이 될 때 화들짝 놀란 누더기의 이름은 외자다.

저 섬엔.
웬만한 생각으로는 잠을 찢을 수 없다. 헐레벌떡 날아든 생각의 축은 완만하지만, 좁은 골짜기를 머릿속에 형성했다. 그곳에서 기나긴 기다림이 회오리치며 잠을 더욱 단단하게 죄었다. 어지간한 생각은 땅을 기며 앞으로 나아간다. 비행이란 또 다른 세계가 그것에 드리우기까지 얼마나 많은 자아의 좌절이 필요할지.
어느 밤에 울음이 세차게 내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