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 《Heun》 이안 하, 스벤 토이퍼 2인전

《Heun》이안 하, 스벤 토이퍼 2인전, 파이프갤러리, 2025.08.05 – 09.03, 이미지_양승규
  • Date: 2025.08.05 – 09.03
  • Place:  파이프갤러리
  • Location: 서울 용산구 대사관로 21 2층, 3층
  • Hours: 화 – 토, 10:00 – 18:00
  • Contact:https://instagram.com/pipe_gallery

lan ha, Elfchen, 2025, Watercolor and ink on Janji paper mounted on wooden panel, 14 x 14, 이미지_양승규

무량하게 쏟아지는 비에 소매는 젖었다. 이국적인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토속적인 말소리가 한숨을 죄었다. 언젠가부터 기후는 정도를 넘어선 듯하다(날씨보단 기후다. 무난함이 내게 기울었다).
몰아서 자는 잠만큼이나 비참한 천성을 천천히 곱씹으며 그저 어떻게 되려나, 하고 있지도 않은 꼬리를 뒷발로 차지만, 애꿎은 허공은 사선으로 그어져 어설피 유영한다.
손끝에 닿은 안개의 모습은 적절함을 넘어선 과잉의 단계로 나아가는 중이었다. 좁은 틈과 작은 방이 앞선 진행에 결 다른 감정을 덧붙였는데, 가혹하면서도 갸륵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검은 숲을 들어본 적이 있니.” 그는 그간의 안부를 전하는 투로 말했다.
“그럴 리가.” 텅 비어버린 우물에 가서 무엇을 하느냐는 식으로 답했다.
무덤덤한 우리가 향할 곳은 강의 하류였다.

lan ha, Elfchen, 2025, Watercolor and ink on Janji paper mounted on wooden panel, 14 x 14, 이미지_양승규

말뿐인 사람의 더 없는 넋을 평해본다. 이와 동시에 사물의 뒷면을 바라본다. 행동의 결여가 그에게 무엇을 선사했는지 예의 넋은 알고 있을까. 우리는 이를 짐작해야만 하는 상황에 몰려 그저 곤란할 뿐인가. 이러다 문득 나는 속이 깊은 품위를 원하게 될지도 모른다.
창백한 사유의 외형은 한 마디로 궁한 상황을 대변하고 있었다. 그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이를 본 것 같기도 하다.
‘그는 무리의 선두에 서며 결국 꼬리로 돌아가게 될 자신을 살펴 짐작한다. 그 과정에서 먼눈을 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속절없지는 않아 소리의 수리도 마다하지 않고 모든 것을 받들며 지낸다.’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 묘사는 어떤 불확실함에 기댄 채 단적으로 울음 하고.

방파제를 방패 삼아 한껏 오른 열도 우습게 여긴 뭇이란 공동에 부조리한 파도가 들어찬다. 찬동의 역사를 찬찬히 분석하는 이의 분수는 가엽기도 하지. 말로서 존재. 까다로운 슬픔.
횟수가 담지 못한 수의 번안을 나는 보았다. 그것은 일종의 소실과 같아 내용은 내내 제 상실을 각색하고.

Teufer, Long divided must unite, long united must divide, thus it has ever been, 2025, Ink on fused translucent and silk, 160 x 80cm, 이미지_양승규

마음껏 겉돌라고 해도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물의 근원을 재촉하는(이때 어째서란 의문은 대차게 고꾸라진다) 주변은 본디 비상을 염두에 둔 상자와 같다고 그는 생각하며 뻐근한 몸의 일부를 인식했다. 순수한 사고 체계가 어떤 작용을 일삼는다.
입구가 정면으로 보이는 곳에 자리 잡고 세상사 관심 없다는 눈을 하고 있지만, 이곳에 들어오는(공간을 의도적으로 변주하는) 이들의 등장에 눈을 뗄 수는 없는 노릇이라 그에게 자리 이동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사안이었다. 불길이 지체 없이 번지는 것을 보았을 때 느껴지는 다급함이 그의 유일한 동작으로 부동을 부정했다.
긴 팔로 두른 책상 모서리에 오래된 각별이 움터도 비탄의 언어는 사라질 줄 모른다. 거리감이 조용히 바닥으로 침잠하는 시간을 기탄없이 두드리며 모자란 숫기를 견디는 인물이 되리라. 그는 자연스레 앞선 다짐을 착복한다.

Teufer, Gravity, 2025, Ink on fused translucent and silk, 160 x 80cm, 이미지_양승규

“먼 곳을 볼 때마다 나는 목적을 잃기도 해. 무조건 그런 것은 아니라서 괜히 우스운 모양새를 피할 순 없지만. 자초한 일에 묻은 얼룩은 흉하지도, 길하지도 않지. 오직 그것만이 나의 굵은 밧줄이야. 당분간 이를 거머쥐고 놓지 않을 작정이야.”
시절의 반절은 쪽빛을 띠었다. 그러다 홀린 듯이 붉거나 체념적으로 검은 발버둥을 쳤다. 순식간에 그랬다지만, 보는 눈이 많아 혼신의 떨림은 끝없는 징검다리를 걷는 듯하였다. 사람들의 인식에서 인식으로 디딘 발과 이와 동시에 완성되는 보폭은 와전 없이 전해졌다. 불길한 징조같이. 때론 불멸의 사상같이.
잠깐 눈가를 괴고 내일을 넘겨짚었다. 단조로운 예상이 유독 평화롭게 여겨지는 건 비탈의 숙명인지도. 지나고 나서야 자신의 좋음을 발하는 시기가 아득하면서도 보잘것없었다. 허공의 무게는 늘지도 줄지도 않는다. 흰 벽을 대안없이 마주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는 무의미가 있다.

seunggue Yang
seunggue Yang

새로운 아침을 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