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Date: 2025.09.11 – 09.30
- Place: ykpresents
- Location: 서울 중구 을지로43길 13
- Hours: 화 – 토, 13:00 – 18:00
- Contact:https://instagram.com/yk_presents

멍한 시절에 함양할 거라곤 무엇도 없었다. 이제 막 한 자릿수에서 벗어난 나무들은 옹기종기 작은 사회를 이루었다. 겉만 번지르르한 이는 속이 꽉 찬 상자를 들고 분주하게 이동했다. 그에게 이동은 뿌리가 반쯤 드러난 습관과 같았으며 이는 시기별로 다소곳한 적막을 사뭇 신경질적으로 끌어당겼다. 반항. 숲의 이름으로 썩 마땅하지 않아 대안을 생각한다.

몸을 움츠린 주제에 요구 사항이 많은 벽과 때 묻은 건조함이 동네의 거리란 거리를 다 헤집고 다닐 때, 여태껏 시린 감각을 보유한 창고는 제 끝을 들썩거렸다. 동적인 정황은 이에 합류하도록 정중하게 권유하는 듯하다.
작동을 멈춘 시계가 손목을 구렁텅이에 빠트릴지도 모를 일이다, 하고 소리 내 말해보는 것. 우물의 밑바닥을 얕보다간 하늘을 등지게 될 것이다, 하고 시시껄렁한 예언을 도로 삼키는 것.
먼발치에 놓인 가로수가 넉살 좋게 신호를 뱉는다.

오래된 이의 감흥은 무엇보다 새로웠다. 그것은 금방 잔에 따른 탄산수를 떠올리게 하여 한동안 맑고 서늘한 날씨를 누릴 수 있었다. 방 한구석에 겉돌고 있는 천 조각은 무척 상징적인 무늬를 입고 내면에 스민 대화를 천천히 감내했다. 불확실한 일을 불분명하게 내버려두고, 곤란하다 못해 한쪽 발로 서는 것으로 위태로움까지 겸비한 이와 촘촘한 변명을 붉히는 과정은 변덕이라는 수납장 맨 아래에 담겨 양껏 부스럭거린다. 이는 낭비다. 일종의 지독한 여름과 같은 분위기일까.

바닥에 넘어지자마자 익숙한 사람의 뒷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의 정직은 장식이 과도했었는데 지금은 어떠한지, 자연스레 그리워하며 관계를 일부 덜었다.
그동안 손꼽았던 순간을 마주한 후 절로 펴지는 한두 손가락이 한없이 길게 느껴졌다지. 적당한 모래바람 하며, 번쩍거리는 보도블록 하며.
소나기와 억수, 장대 같은 장마, 이 모두가 나를 어디로 데려가 줄지도 모를 일이다. 무언가를 이보다 깊게 바랄 수 없을 만큼 바라고 있지만, 그 끝이 낯선 시선을 잔뜩 경계한 우산살이라면 지금이라도 예고 없이 쏟아지는 비를 멈출 수 있을 것이다.

동굴을 머리에 뒤집어쓴 듯한 시선을 험준함으로 갈음한다. 언덕배기의 사고(思考)는 까마득한 일상과 기꺼이 어울리며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견고한 무엇을 목도하고 있다.
상기된 뺨에 드리운 음영이 세 갈래로 나뉜 길을 형상화할 때 이에 못 미친 외길은 두 발로 벌목된 산을 넘고 도중에 양지바른 곳도 지나며 제 외곬을 인식한다. 이는 여전한 사투지만, 그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에서 상당한 아쉬움이기도 하다. 놓쳤다, 잡은 갈피는 걸핏하면 달아나려고 든다. 신중해지자. 오전이 제아무리 어두워도 밤만 할까.

빗질하는 사람들. 절반의 날씨. 안개를 깨운 소식과 경황없는 입구. 들꽃 앞에 화분이 있다. 그 반대가 되어도 상관없을 터였다. 옷장 안 곱게 개인 수건은 어렵사리 수요의 층위를 나타내고, 바지런히 수선을 떨었던 한때를 규명했다.
성과 없는 일이 불어나자, 이에 달라붙으려 애쓰는 눈이 불가피하게 희었다. 이 변모가 신호가 되어 공백은 추위에 결백을 호소하듯 떨었다. 떨림에 딸린 우수(憂愁)가 얄궂은 상황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이에 부딪치자 정작 아무 생각 없던 이가 급히 깨우침에 초점을 맞춘다.
벽돌 다발의 밑동은 유독 회색에 가까웠다.

이곳에서 한도 끝도 없이 존재할 수 있을 것만 같아. 오후의 적당함을 당연한 권리라도 되듯 누리면서, 언제까지나. 시간은 영원에 종속되며 그렇게 볕은 잊힌 광휘를 기억하고.
시간이 가는 걸 전혀 지루해하지 않으며(이에 얼마 정도 체념하긴 하지만) 용케 앉아 있다지. 그동안 쓰임이 확실한 볼펜은 검은 속내로 누리끼리한 종이를 긋고, 전하지 못한 말은 중심이 조금 들린 사건이 되며, 뒤틀린 예감마저 기대에서 벗어나 오롯함을 이루지.
내보일 것 없는 삶이 한편으로는 즐겁기도 했다. 이젠 대수롭지 않은 사람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들이 동시에 나타나질 않기를 짐짓 바란다.

나보다 한 살 아래의 사내에 관한 이야기를 창밖에 걸고 솜씨 좋은 인생에 대해 생각했다. 계단은 왼쪽에서 오르는 것보다는 오른쪽에서 오르는 게 더 이치에 맞다. 이때 중앙은 고려되지 않는다.
한 자리에 우두커니 세 시간가량 서 있다가 문득 잊고 있었다는 듯 이동한다. 그렇게 세계의 균형까지는 아니어도 어느 지역의 쏠림을 방지한다.
아침 식사 시간의 불규칙함은 바닥과 상당한 면적을 공유한 장대로서 드러날까. 그 자격이 존재에 불응할 때 내일은 불편한 기색으로 뒷걸음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