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지_양승규
- Date: 2024. 08.31 – 10.19
- Place: 제이슨함
- Location: 서울시 성북구 성북로31길 73
- Hours: 화 – 토 / 10:00 – 18:00
- Contact: 0507-1301-4934

이미지_양승규
예정에도 없던 시도에 감정의 산물을 느낀 후로부터 한쪽이 짧은 – 아니면, 반대쪽이 긴 – 걸음을 갖게 되었다. 불안정한 꼴은 어렵지 않게 세상을 살아갔고, 그렇게 삶의 저변을 넓혔다. 외다리를 지나는 것쯤이야, 싱겁게 하품을 삼키는 정도의 수고일 뿐이다. 손에 깍지를 낄 때마다 형태에 가둘 수 없는 대상이 늘었다. 수의 증가보다는 단순히 몸집이 불어난 거로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도 별다른 애석함은 없을 터다. 부재는 소분해도 여전히 전과 다를 바 없고, 익숙함은 한 칸 위로 이동한다.
세계를 가로지르는 여정의 길은 구불구불하기도 하고, 타협 같은 건 없다는 듯 곧게 뻗어있기도 한다. 그 위에서 생활을 끝없이 옮기는 사람이 홀로 마주한 건 대체 무엇이며, 그는 결국 어떤 시기를 통과하고 있는 걸까. 정답지 않아도 충분히 두터울 수 있는 관계가 전염병처럼 퍼져간다. 무더위에 축 늘어진 팔다리로 인적 없는 해변에서 헤엄을 사로잡고 떠남이라곤 찾을 수 없는 공중에서 공기의 움직임을 소원하나, 대뜸 불어닥친 바람에 이는 절대 아니라고 한다. 차이가 도려낸 건 환부를 붉히는 무수한 행진. 밤하늘을 밝히는 빛이 우물을 겸한 자루에서 끄집어낸 방식은 사뭇 정교하다.

이미지_양승규
사람의 입에서 자연의 소리가 들리는 것과 그 반대의 경우(예를 들면 숲이 넉살 좋게 안부를 물어온다거나 하는) 중 선택하라고 한다면 마땅하다는 듯 전자가 될 것이다. 폭소할 때마다 폭포 소리가 나는 이와 만나는 건 무척 근사한 일이 틀림없다. 이는 기호의 문제라기보단 숙명적인 잣대와 관련된 사항이라고 혼잣말하며 침묵을 독대한다.
“그것은 언제나 눈앞에 있다지. 이다지도 분명하게. 의구심이 섞일 틈이 있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엔 도약할 구멍 여럿이 생길지도.”
오후는 꾸밈을 덜었다. 원체 수수한 모습이라서 혹시나 있을지도 모를 장식을 염두 밖으로 내모는 듯했다. 가능성은 마르지 않는 강으로 대변될까. 그 밑바닥은 평소에 빛 한 줌 들지 않지만, 가끔 빛기둥이 천천히 하강하며 대낮을 선사한다. 번쩍이는 섬광이 기억으로 기록되었다.
분명한 의도가 때론 고립을 불러일으켰다. 외딴곳에 방치된 사람의 눈에 서글서글한 인상이 맺혔다. 그의 소외는 연기도 없이 타올랐다. 그을음은 어림도 없는 요구 조건 같았다고 그는 생각했다.

이미지_양승규
그 새벽은 자국이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심심풀이로 그은 사선이 언제까지고 살아갈 것만 같았다. 숨은 희게 눈에 띄었지만, 이를 대수롭지 않게 취급하며 희끄무레한 밤을 향해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구름 낀 하늘에 달빛은 존재와 비존재를 거듭했고, 생에 대한 의지와 좌절은 다소 무례하게 여겨졌다. 고약한 심사가 질질 다리를 끌었다.
지체 없이 휘두른 비약이 지면에 비친 볕에 의해 잦아든 시간. 사물은 온전히 자기 빛깔을 회복하고, 묘한 문턱을 넘나들던 왕복이 해진 의미에 걸려 한쪽으로 고꾸라졌다. 잠들어도 깨어있는 손과 상시 분주한 버릇은 함께 무언가를 꾀어내고 있을까. 장담할 순 없지만, 정답의 존재는 부정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시시껄렁한 기분이 들었다. 패색 짙은 평화는 분분한 보화. 말수는 깊숙한 구덩이를 여럿 가지고 있다. 그중 하나에 값을 매길 수 없는 외면을 담아 놓으면, 이레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을 설칠 터다. 어느 날 돌연 신맛이 사라진 것에 대해 조금의 의견도 없다. 상실은 결부된 대상에 따라, 아니면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황폐한 소도시로 비칠 수 있음을 나는 안다. 새벽의 일부를 한쪽 뺨에 대고, 반대편에 바람을 불어 넣었다.

이미지_양승규
서로 유사하지만, 단지 그럴 뿐인 대상들로 세계는 채워지고 볼품없이 지속된다. 앞선 계속에서 파열음이 들린다면 순조로운 건 사실 기분 탓이라는 선고를 훌쩍 자신에게 내릴지도 모를 일이다. 저 너머의 풍경은 달갑지 않은 사태를 불러일으킨다. 이는 결국 진귀한 사건으로 홧김에 기록될 테지만, 무던한 성격에 가로막혀 한껏 속에 일기도 전 사그라든 화의 꼴을 기억한다면, 기록이란 애초에 불가능하다고 조금 쓸쓸하게 깨닫고 마는 일종의 슬픔을 느낄 것이다.
사람보다 많은 건물이 내게 시사하는 것은 겉과 속이 일치한 대상의 걸음이었다. 그는 하늘에 낀 구름쯤은 쉬이 걷어낼 손을 가졌다. 두렵거나 어설픈 건 그의 인식에 들 수 없는 듯하다. 항상 많은 수의 그림자를 바닥에 드리우며 시간을 정확히 겨냥하는 눈초리로 계절의 표면에 닿았다. 시린 것과 욱신거리는 것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그는 마무리 짓지 못한 문장을 품에 쥐고 살며 끝이 흐린 혼잣말을 자꾸만 반복하는 형국이었다. 쌀쌀맞은 이웃에게서 상냥함을 끄집어 내리라는 다짐은 어느 저녁에 누워있을까. 그의 안부는 내성적인 보폭으로 저 먼 모퉁이를 돌았다. 이윽고 그것이 마주할 건 막다른 길과 잇따른 사방. 그는 초라한 지붕이 즐비한 지역을 삼키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