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Date: 2024. 08.14 – 10.20
- Place: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 Location: 경기도 파주시 문발로 253
- Hours: 수 – 일 / 10:00 – 19:00
- Contact: 031-955-4100

이미지_양승규
바깥은 떠도는 것 특유의 생생함으로 가득했다. 내면과 외면을 구분하지 않기로 결심한 후부터 세상은 좀 더 살만한 곳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불편함을 감수함으로써 불공평함을 쓰러트린다면 깨진 가로등 불빛이 체면을 차려 발밑의 환상은 그늘 없이 반짝거릴 터다.
얄팍한 속임수에 속지 않는 건 모진 감정을 모조리 솎아냈기 때문이었다. 등 뒤로 파란 하늘은 선명하게 우거져 있고, 눈앞에 낀 대상은 구름이라기엔 너무 낮고 안개라고 하기엔 다소 높아, 희뿌연 무엇이라고 할 작정이다. 서로 공존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음을 인식해 그것이 갤 때까지 천천히 아득한 정경을 집적한다. 비로소 둥근 마음가짐을 가슴팍에 두른다. 짐작도 못한 온기가 쨍한 소리의 자아를 삼키려 들까. 모든 모서리가 주머니에 파고드는 상상을 한다.
낮 동안의 맑음은 밤이 되면 여실한 부재가 되었다. 가끔 그것에 꽃이 폈지만, 향은 없었고. 앞선 부재는 일종의 상실로 작용하며 꽃잎보다 잎사귀가 한껏 도드라진 모습으로 사물의 양태를 규정했다. 허심탄회한 말로 감각과 맞닿은 감정의 시비를 가린다. 잘잘못의 비롯됨은 넉넉하지 않은 형편과 닮은꼴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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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부정한 자세가 견딘 사항은 중요한 대안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대수롭지 않은 의견이었다. 좋고 싫은 건 곧게 손바닥을 펴 알맞다고 여겨진 기호에 딱 들어맞았고, 신중을 기하던 버릇은 무관심에 주저앉듯 쓰러졌다. 다신 경험하지 못한 넋두리를 조용히 방관한 것에 뒤따른 책임이란 가격표가 떨어진 상품과 잔액을 알 수 없는 카드의 어울림일지도.
신용을 잃은 마당에 맨발로 두드린 땅바닥의 서늘함이 갈수록 믿을 구석이 되었다. 그것에 적당한 감상을 표하고 상처가 아문 자리에 숨을 뱉었다. 살갗은 어느 때보다 내성적으로 보였다. 말을 걸기도 전 미리 피한 자리에 바싹 말라버린 물웅덩이 자국이 남아있다. 빈손에 누가 될까, 한 번도 깍지를 끼지 않은 사람의 울음은 어쩐지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는 듯하다. 눈앞의 의자에 조금도 시선을 주지 않고, 손끝이 닿을 리 없는 저편만 지그시 바라보는 입장. 그것은 온종일 걸치고 성한 곳투성이인 신체를 거리낌 없이 되뇌었다. 중얼거림은 원만한 관계가 내지른 탄성, 그 감탄 속을 한량없는 계절이든, 막다른 길의 시간이든, 빈틈없이 메우길. 집적에 대한 자격을 홀로 논한다. 외딴 행방은 따사로울까, 하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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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고는 어물쩍 살아가는 이를 가리켰다. 순전히 자신뿐인 지목에 그는 덜거덕거리는 문이 되기도 하고, 눈총에 주눅이 든 신호등이 되기도 했다. 임시로 마련한 공간에서 이 정도면 만족하는 평온을 느끼며 누런빛을 좇았다. 그의 동공은 이상적인 면모를 발견한 것처럼 확장되었으며, 사무적인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 그것은 실무로 누군가 애써 정립한 질서가 다분히 묻어난다. 방치될 가능성에 대하여, 그것에 대응하여 그는 팔 벌려 뛰었다. 땀이 이마에 배어 나와 얼굴은 금방 번들거렸고, 숨은 곧 거친 삶의 일부를 이해하게 되었다. 전진이 결여된 움직임은 얼마간 지속되다 목적을 잃은 듯 멎었다. 이 일련의 과정은 평소에 포함될 수 있을까. 꿈 깊은 사내의 안부가 슬쩍 귓가를 스친다. 쓴맛에 예민했는지, 단맛에 유난 떨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오늘은 한가로이 내일로 떠나고, 괜히 입맛을 다시며 일 년의 한가운데를 조준했다. 예정되었다는 듯 실없는 웃음이 나왔다.
“나의 일탈은 버젓이 일상에 메여 기껏 향한다는 곳이 눈 감아도 훤한, 짐작할 것도 없이 뻔한 공간이었소. 그곳의 휑함을 모독이라 느낄만한 이유는 없어도 어딘가 뒤틀린 심사로 기분을 정당화하며 정한 바 없는 숙명과 땅을 칠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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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드린 바닥에서 알 수 없는 대상이 떨었다. 그 떨림을 고스란히 느낀 후 아무렇지 않은 탈락을 예고했지만, 바싹 마른 입술이 그것을 거두었다. 의식 없이 이루어진 일에 서두름을 입히는 건 예사로운 일이었다. 두 시와 세 시 사이, 그 윤곽들을 위한 시간에 호기롭게 무더위와 맞서며 2층으로 찾아들어 간다.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시끄럽다고 여겨지지 않는 건 공간에 울리는 음악 소리의 독립성 때문일 터다. 그것은 자신조차 삼키며 어디에도 결부되지 않은 결과를 곳곳에 내비쳤다. 이곳에 노출되었다고 그는 생각했다. 갈라진 사상의 틈 사이로 이국의 바람이 불어왔다.
‘오늘만큼은 수더분한 생각으로 하루를 채우고 세상 아름다운 꿈을 꾸리라.’ 고전적인 느낌이 자욱한 결심은 언제 뿌렸는지 모를 시도의 결실을 볼까. 이윽고 저 멀리 날아간 나비(어제 저녁부터 활개 친 듯 보인다)의 뒷모습을 허락에 가두고, 허가된 상상과 차츰 잦아드는 숨을 빌린 끝에 두었다. 누구에게 임시로 가져온 것인지 함께 기억을 선명하게 밝힐 이와 양껏 취한 벼랑을 끌어안고.
먹은 마음의 절반은 잃듯 구석에 내버려두고, 하늘 위 구름의 빈번한 등장을 상징의 끄트머리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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