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Date: 2024. 11.06 – 11.17
- Place: WWW SPACE 2
- Location: 서울 마포구 월드컵로 165-3
- Hours: 수 – 일 / 13:00 – 19:00
- Contact: @wwwspace2
사회의 생산성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이에 눈곱만큼도 관심 없던 사람들은 이유 모를 희망에 차 있었다(그렇다고 생산성의 변화에 제 의중을 가져다 댄 이들이 절망에 빠진 것은 아니었다). 아침은 눈부셨고, 거리는 이름 가진 꽃들로 가득했다. 마치 익명이란 미처 경험하지 못한 환상 같았다. 하늘에 구름이 껴도 그것의 푸름은 여전히 그곳에 자리했으며, 이 당연한 사실을 자기만의 자랑거리라도 되듯 주변에 떠벌리는 이들이 종종 보였다. 앞선 행동이 공동체에 폐가 된다기보다는 오히려 무의미를 떠올리게 했는데, 이 점에서 그들의 쓸모가 빛을 발했다고 할 수 있다. ‘투박한 전사의 올곧은 믿음’, 이 말은 전염병과 유행, 그 어디쯤 놓여 착실하게 퍼져 갔다. 사람들의 입을 타고 역량껏 돌아다닌 말은 시장에 가닿았다. 진열된 상품의 기세가 소비를 억누르고, 이 상황을 타개할 묘안마저 억압하는 통에 그곳은 실제성을 잃고 추상적인 영역으로 변모했다고 한다. 앞선 말의 접근이 가능해진 건 형세와 어울린 걸음 때문이었을까. 사변에 제 발을 걸친 사상의 퇴보는 마치 끌려가듯, 꼴이 말이 아닌 상태로, 거래를 망친 장사꾼처럼 이루어졌다.
통근 열차 속 사람들은 도통 말이 없었다. 내부가 시끌벅적했다면 현실과 동떨어진 공간에서 개념을 먹어 치우고 있는 의식을 끌어다 눈앞에 두었을 것이다. 적막한 이동이었다. 시선의 유무가 그리 중요하지 않은 세월의 일부에 섞여 든 듯한 기분이 온몸에 고루 퍼졌다. 부쩍 철 든 사람처럼 침묵은 자신을 삼갔다. 늘 그런 태도가 느지막이 드러나 회상의 회로를 복잡하게 꼬았다고 옆에서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그의 인상은 거대한 익명의 일부를 담당한 듯했고, 말투는 마치 속 빈 세계의 구성 방식을 설명하듯 장황했다. 그 나름의 노력에도 – 어디까지나 제멋대로인 생각이지만 – 기존에 확립된 분위기는 깨지지 않았다. 무익한 대상들에게 받은 환호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열차에 몸을 싣고 앞으로 나아가는 순간만큼은 시간의 이동을 이해 근방에 둘 수 있었다. 이곳의 사람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수면 부족이었으며 그중 절반은 앞선 부족이 자아의 완성을 저해하는 결핍으로까지 이어졌다. 열차에서 내리기까지 모두 한 번은 머리를 긁적였다. 각기 다른 사람들의 동일한 목적지가 어떤 맹목성을 시사하는지, 골독하는 생활. 그것은 때로 시를 쓴다.
모노톤의 지배하에 있는 듯한 공간에서 그는 시간을 보냈다. 작별의 뉘앙스는 없고 단지 지독한 소모만 있었다. 벽은 자신의 거죽으로 통창을 선택했다고 그는 생각했다. 바깥이 훤히 보이는 실내 장식에 대한 묘사로도 예의 소모의 기세를 누그러뜨릴 수 없다. 단조로운 느낌은 의문의 꼬리를 잘라 – 머리였을지도 모른다 – 평상에 두었다. 그 위로 굴곡 없는 상징이 잠깐 차려진다. 통상 그랬다는 듯이. 그는 복합적인 의미에 빠진 채로 체중이 줄어들지는 않았는지, 별 시답지 않은 생각을 시작했다. 승리에 도취한 걸음의 무수한 수효가 상상을 어지럽힌다. 개진(凱陣)*의 행렬이 끝없이 이어진 머릿속은 그간 주목받지 못했던 포화를 찾아 자신의 품에 포함했고, 행진이라 이름 붙은 모든 것 – 설령, 그중에 구성이 단독인 것도 있다 해도 – 을 포괄했다. 모든 게 대수롭지 않을 때 나는 찾아갈 곳이 없다. 그가 말했다. 앞에 대상이라도 있다는 듯이. 그는 단지 새것이라고 볼 수 없는 책을 손에 쥐고 있을 따름이었다. 누군가의 사유지 끝은 범람했고, 그는 끝내 이를 알지 못했다. 책의 무게를 오롯이 한 손으로 감당하며 날개 펼친 그것에 얼굴을 묻었다. 그가 돌아간 무는 이로써 투명한 벽면을 칠했다. 누군가의 솜씨는 번영을 이루다 꺼져가는 불씨처럼 사그라들었다. 그는 몹시 곤란한 자기 표정을 남일이라도 된 듯 바라보았다.
*개진(凱陣) 싸움에 이기고 진영으로 돌아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