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 《Unfinished Scene 끝나지 않은 장면》 백연수 개인전

《Unfinished Scene 끝나지 않은 장면》 백연수 개인전, 김종영미술관, 2025.08.29 – 11.02, 이미지_양승규
  • Date: 2025.08.29 – 11.02
  • Place:  김종영미술관
  • Location: 서울 종로구 평창32길 30
  • Hours: 화 – 일, 10:00 – 18:00
  • Contact:https://instagram.com/kcymuseum

슬리퍼, 소나무, 2014, 각 37 x 20 x 33cm, 이미지_양승규

현관은 발돋움으로 가득했다. 그것들은 벗겨진 포장지처럼, 혹은 탈피한 동물의 외피처럼도 보였다. 양껏 꽉 찬 양태가 사물의 본모습을 감추면서도 드러내는 듯하다. 표상의 증표는 거리낌 없는 자태를 웅크리게 하더니 또 무관심이다. 어쨌거나 그곳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모진 말일랑 하지 말어’ 파쇄된 종이에 적힌 말이 으슥한 골목을 비추며, 그곳에 밑동이 깨졌지만 제 역할을 수행하는 데 이상 없는 가로등을 일게 하였다.
주머니 속에 접힌 지폐가 늦은 기상을 예고할 때 누군가의 새벽은 오밤중을 기어코 세워 둔 일로 문책을 받을 것이다.
빈자리에서 깊은 생각의 똬리를 보았대. 정신이 없다 뿐이지, 기호까지 없는 건 아냐.

Stusy of Stuff 사물의 조형 연구, 각종 나무, 2023 – 2025, 가변설치, 이미지_양승규

세월의 멍듦에 물들어 파랗게, 때론 여념이 없을 정도로 푸르게 질린다. 한 글자 이름과 외자 인생. 낯빛은 지나치게 정돈된 모습으로 입술을 우물거렸다. 무언가를 외우는 시늉일 수도 있겠으나, 고독한 파란(波瀾) 앞에서 기껏해야 흉내라니. 중얼거림은 같은 말을 반복하지 않는다.
낡은 창고에 부딪힌 젊음, 해가 갈수록 익숙해지는 강과 하늘의 높이차. 크다고 할 수 없는 창을 열었다. 그러자 생활은 비로소 새로운 국면을 맞아 생의 의지가 도드라져 보이기도 하고, 말수는 불변의 가치를 이제 막 이해하기 시작했다.
뒤로 도는 것만으로도 생경함을 느낄 수 있다면, 회전의 흔한 사유를 하나 얻게 되는 것일까.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이 자욱하게 눈앞에 칠해졌다.

Stusy of Stuff 사물의 조형 연구, 각종 나무, 2023 – 2025, 가변설치, 이미지_양승규

삶의 끝자리로 향하는 걸음과 걸음, 그리고 그 둘 사이의 거리가 도통 진정되지 않는 보폭으로 거리를 옭아매었다. 그곳에서 허전함을 느끼는 이의 터전은 줄곧 비었다가 이제 막 갖은 대상으로 채워졌다. 지독한 허기에 허겁지겁 음식을 몰아 먹는 광경이 뜰채로 건져 올리기도 전 때맞춰 솟았다. 그 앞에서 엉거주춤한 까닭은 허리를 길게 빼고 멍한 표정과 느릿한 반응을 절로 갖추었다.
한 권의 책이 둘로 나뉠 때 횟수 대신 정확히 숫자를 숫자 위에 쌓고, 더 이상 볼 일 없다는 식으로 서랍을 닫았다. 그 안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 단순히 궁금해하기보단 의문을 얼마간 애석해하였다. 양손은 동시에 한가롭거나 분주했다.
복잡한 신변이 즉물적으로 악쓰고 있다.

바나나, 느릅나무,2019, 30 x 30 x 86cm, 이미지_양승규

한없이 반짝거리던 두 글자 밤을 기억한다. 양변이 이해할 수 없게 우글거리는 도로를 지나 오래된 집터에 다다른 후 선망의 관계로 지속된 만남을 해체하면, 예의 밤의 중간 정도는 한몫 톡톡히 챙길 수 있었다. 빛나는 주머니가 호소적으로 느껴지는 건 지금 내가 신중한 소나기와 성급한 장마의 중간쯤 위치했기 때문일까. 묻지 않는 대답은 도무지 하지 않는 사람을 서서히 닮아가는 중이다.
“생각해 보면 갑작스러운 건 없는지도 몰라요. 단지 화가 났기 때문에(그 당시의 상황이라던가 아니면 지난 저녁 메뉴 같은 것에) 급작스럽다고 느끼는 거죠.”
가는 사람 붙잡고 가로수에 묶인 헝겊을 바로 가리키는 바 울적한 이들은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다.

일상의 사물 연작, 나무,2017 – 2019, 가변크기, 이미지_양승규

선반에 놓인 물병은 꽤 오래전부터 그곳에 놓인 듯한 인상이었다. 기껏해야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내가 어제 물병을 선반에 놓았기 때문에 이는 분명하다), 어째서 그와 같은 인상을 주는 걸까. 알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이렇게 무심함은 특정한 조건을 제한다.
발치엔 사람들로 북적이는 거리의 원형이 있고, 그 존재를 구슬려 무언가를 꾀하려 하지만, 속임수는 어느 정도의 수준을 원하는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변화가 집을 비운 것이다. 아무도 모르게 접은 생활의 귀퉁이가 원상태로 돌아오며 나는 이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면서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함을.
목조 건물을 관통하는 시대상을 홀대하였다. 어쩐지 홀연한 기분이다.

seunggue Yang
seunggue Yang

새로운 아침을 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