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 《먹고사는 것》 경제엽 개인전 2025 OCI YOUNG CREATIVES

<먹고사는 것> 경제엽 개인전(2025 OCI YOUNG CREATIVES), OCI미술관
이미지_양승규
  • Date: 2025. 06.12 – 07. 26
  • Place: OCI미술관
  • Location: 서울시 종로구 우정국로 45-14
  • Hours: 화 – 토, 10:00 – 18:00
  • Contact:https://instagram.com/jaeyeopkyoung

경제엽, 이른 아침, oil on canvas, 145 x 280cm,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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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사는 일에 갇힌 지 오랜 시간이 흘렀다고 생각했지만, 순간의 반도 흐르지 않았다. 생각은 때로 그르다.’
아침을 이르게 붙들고 간밤에 사로잡혔던 감정을 게워 내려고 했다. 이 시도는 쉽사리 불에 타지는 않을 거야. 낙관적인 사람의 인생관을 말투로 들었다. 하루 동안 때워야 할 끼니가 대체 몇이며 서로가 얼마 담기지 않은 인사는 미처 준비하지 못한 선물처럼 공교롭다. 빈손은 곧 악수의 조건. 좋은 일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것이 횟수로 서너 번이 넘는다면 기운차게 시작할 일은 평상을 엎고 돌연 버선발로 보폭을 만들어낼지도.
타박상을 일게 하는 벽돌의 생태를 지나 간판으로 수고를 대신한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이른 시간부터 거리를 구성하는 사람들은 마지못하더라도 제 역할에 힘쓰는 듯하다. 빛과 그림자, 소리 없이 흐른다.

경제엽, 아무데나, oil on canvas, 150 x 350cm,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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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이 빚어낸 언어는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깊게 사유한다. 그 궁리가 어떻든 간에 허기를 채우느라 급급한 사람의 손짓은 다분히 즉물적이었다.
식당에 빈자리가 많은 걸 보니, 밥때에서 상당히 벗어나 있는 듯하다. 절박한 표정 몇이 일상을 내던지지만, 그럴 때마다 일상의 복판에 있다는 실감은 속 아프게 존재했다. 의자를 앞으로 당기고 뒤로 미는 소리가 그저 싱겁게 들렸다. 출구와 입구를 겸한 문이 반쯤 닫히자, 이곳은 광장을 반으로 가른 후 여러 가능성을 앗아감으로써 조성된 공간이라는 생각이 요란하게 떠들어댔으나, 물컵이 바닥에 부딪혀 생긴 굉음에 급히 입을 다물었다. 이렇게 생겨난 침묵은 별다른 제지 없이 자기와 타자를 넘나들었다. 모두가 이런 형국인데, 당장 이곳을 박차고 나간다 해도, 밖은 어차피 차일피일 미룬 일의 시작일 터다. 피차 마찬가지인 처지가 아무 데나 존재한다.

경제엽, 늦은 점심, oil on canvas, 145 x 300cm,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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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은 진정을 바라지 않은 듯 옆으로 누웠다. 방금 먹은 음식물이 역류하려나, 하는 걱정도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공통과 차이는 식전과 식후에 마시는 물 정도의 관계성을 지키려고도, 잃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가만히 내버려두면 보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이의 환상이 붉게 물든다.
“굳이 마주하지 않아도 뻔한 일을 빤히 바라보던 때가 있었다. 배곯지는 않지만, 궁핍한 건 여전한 시기였다. 부족은 은근히 사람을 불러 모으는지, 거리낌 없는 시선은 항상 쌍으로 존재했다. 누구 옆엔 누가, 아무개 옆엔 아무개가 있는 풍경은 점으로도, 선으로도 존재를 증명하지 않았으며 단지 그 둘 밖의 모든 것을 손쉽게 취했을 뿐이었다.”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무거운 책임이 고된 노동에 의해 증발한다. 조금의 흔적도 남지 않은 이유는 늦은 점심에 캐물어야만 알지도. 점점 늘어지는 볕 하며, 어디로든 갈 수 없는 서글픔 하며.

경제엽, 회식, oil on canvas, 145 x 296cm,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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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 다 모여들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예상과 다르게(혹은 기대와는 반대로) 모두 모였다. 저마다 한두 차례 말을 테이블 위에 얹고, 외진 인사를 벗어 의자 안으로 넣었다. 모두가 일제히 의자의 뚜껑을 여는 풍경은 기이하면서 익숙한 감각을 불러일으켰다. 일상 중에 종종 머문 위치를 확인하곤 하는데, 이를 위한 필요조건으로 예의 감각은 꼭 들어맞았다. 그것이 나보다 앞서 존재한 듯한 정황을 부조리하다고 느끼기보단 그저 궁금해하였다.
이곳에 모인 이들은 예외 없이 저녁을 잃었다. 평범한 상실이 대화를 흔들고, 행위의 여부와 관계없이 동일한 결과를 수저 위에 놓자, 사람들은 먹는 일에만 집중했다. 이 순간만큼은 사는 건 그저 거추장스러운 치장을 하고 고된 육체노동을 하는 듯하다.
‘소중한 것은 언제나 증명을 요구하지만, 그럴 때마다 변변한 대답조차 하지 못한 일로 속을 끓였다.’

경제엽, 마감, oil on canvas, 150 x 500cm,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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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에 종속된 사람들은 좀체 귀갓길을 발음하지 못하고 더운 숨만 뿜었다. 벌어진 북새통에 환기가 바깥과 끈끈한 유대를 과시했다. 똑바로 선 이들은 없었지만, 어정쩡하게 앉거나 선 사람들로 내부는 가득했다. 그중 절반은 속을 채우고 나머지는 오히려 속을 게웠다. 그럼으로써 무엇도 달라지지 않았지만, 변화는 곧 맞이할 번성에 들뜬 마음을 추스르고 있었다.
눈이 붉어질 정도로 화를 내는 사람들, 자신마저 떠나갈 정도로 웃는 이들. 그들의 사정은 사경을 헤맨다. 설움이 겉으로 드러나는 방식은 앞선 두 부류의 사람들로, 그들에게 평할 감상은 모르는 이와의 겸상을 극도로 경계한다. 시간에서 끄집어낸 규칙도 소용없는 지금은 당장이라도 책임만을 논할 것 같다. 뒤엉켜 살아가는 사람들의 회포를 단단히 쥐었다.
“빈손이 아닌 게 어디야.” 가장 외로운 사람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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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unggue Yang
seunggue Yang

새로운 아침을 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