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 《6 Murals 여섯 벽화》

《6 Murals 여섯 벽화》 피코 개관준비전 _PCO
  • Date:2025.03.06 – 04.04
  • Place: 피코 PCO
  • Location: 서울시 중구 서애로 15-6, 3층
  • Hours: 화-토, 12:00 – 19:00
  • Contact: @pco.seoul

이재환, “WALL DOGS MUST QUICKLY EXPEDITE HEFTY, OVERSIZED SIGN JOBS.”, 2025, 벽에 유성 스프레이 페인트, 수성 페인트, 피코 레귤러 스텐실(《6 Murals》 전용 활자체), 265 x 322cm
이미지_양승규

어두운 골목. 유일한 가로등만이 빛의 근원이었다. 어둠을 틈타 더러운 설치류나 이름 없는 벌레가 바닥을 기어다니며 주린 배를 채울, 혹은 갈증을 덜 목적으로, 그 군더더기 없는 희망으로 바닥에 얼굴을 대었다. 빛의 수혜로 쇠붙이는 불규칙적으로 번쩍거리며 세상 모든 군상에 끼어들려 노력했다.
‘허물없는 사이에도 주저하는 바가 있다.’ 벽에 적힌 글자는 교훈이나 경고 대신 개인적인 감상을 드러내고 있었다. 글자 위로 달빛이 지나가기도 했지만, 먹구름은 밤에도 무럭무럭 자라나 모든 통행을 막았다. 무력감을 느낄 새 없이 급변하는 정경은 무거운 공기에 고립되었다. 땅에 구멍을 뚫는 일이 주위의 정적을 헤집어 놓았는지 무질서한 고요가 곳곳에 즐비했다.
이곳을 등지고자 백주를 향한 독백을 시작했다. 그것은 갈라지는 소리와 기나긴 행렬 같은 침묵으로 구성되었다. 무슨 말로 으슥했던 때를 반으로 가를지, 생각하는 사이에 덜컥 대낮에 들었다. 

최윤희, 우리는 무리 속에서 만나지, 2025, 벽에 수채, 페인트, 퍼티, 거즈, 280 x 441.7cm
이미지_양승규

“어딘가를 건너는 중이었습니다. 당시는 나는 걸음이 많았기에 이 넉넉함을 생각하면 의식의 일부가 따뜻해지곤 했습니다. 이는 안도감이라거나 다행 같은 부류의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나아갈수록 스쳐 간 것들은 선명해지고 눈앞은 희석된 안료처럼 옅어져만 가 이게 맞는지 영 자신이 없더군요.”
그럼에도 멈추지 않은 건 대안 없는 삶의 구김 없는 방편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는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구간을 지났다. 그 둘은 아직도 알 수 없는 상태로 존재하며 수시로 시위를 당김으로써 나를 어딘가로 몰아넣는다. 그럴 때면 나는 또다시 같은 말을 반복하고, 뒷말을 잇고, 시위 당기는 소리를 들으며, 같은 말을 반복하고, 뒷말을 잇고…

단독의 실현은 값싼 언어를 마주하게 했다. 그것의 존재 양상을 바꿀 구매는 이루어지지 않았어도 이에 별 상관하지 않는 듯한 모습에 무의미의 위상은 더욱더 올라가는지도.

최윤희, 그리고, 분홍색, 2025, 벽에 수채, 페인트, 278 x 568 x 20cm
이미지_양승규
고근호, 무엇이 널 정의해?, 2025, 벽에 목탄, 연필, 콩테, 페인트, 261.2 x 456cm
이미지_양승규

마룻바닥이 열렸다. 그 속에서 무엇이 나왔고, 그곳으로 무언가 들어갔다. 공평한 교환이었을까. 아니면 어느 무리의 이동이었을까. 새벽은 불명확한 인식을 주기 충분했고, 이에 어떤 반항도 없이(혹은 미약한 반응으로) 앞선 묘사를 휘둘렀다. 오늘이 도래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내일은 멀었다. 쉽게 너스레 떠는 이들은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지난여름 지저분한 냇가 주변을 지난 적이 있었다. 코를 틀어막을 정도로 악취가 나지는 않아도 오래 머물만한 곳을 아니었다. 새의 울음이 기분 나쁘게 들렸고, 무성한 잡풀은 불온하게 보였다. 어쩌다 이곳에 왔는지 궁한 자초지종을 얼마간 노려보고 나서 더러운 냇가를 떠났었는데, 아직도 그날의 정경이 일부 남아있는 듯하다. 의식의 각성이 영영 지속될 것 같은데, 그간 경험에 비추어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곧 잠에 빠질 것이다. 저절로 스위치가 내려가고, 쥐 죽은 듯 고요한 주변이 펼쳐진다. 눈을 뜨면 아침을 발견할 터다.
 

박예림, 앞으로가, 2025, 벽에 유화, 오일 파스텔, 유성 잉크, 철가루, 비파 분말, 262 x 422cm
이미지_양승규

모이 쪼는 새들을 빈 광주리 안에 담아 놓았다. 그것은 웬만한 마당보다 넓었기에 살기 괜찮은 환경이 되리라. 저리로 물러가고 이리로 다가오는 확장성을 배편으로 보내고 상당히 정적인 경향을 마주했다. 생각은 아직 이를 드러내지 않은 짐승이었다.
관념에는 관념을, 개념에는 개념을 대었다. 3일 간격으로 의식에 나타나는 공동(空洞)이 특정한 부표를 불러일으키려 할 때 넘실거리는 대양을 갖추지 못한 정신은 피로 물들고 피로에 상접했다. 지겨운 정성도 이젠 정상이 아닌 까닭에 제풀에 지쳐 떨어진 허수를 알음알음하여 찾는 수고를 더 이상 마다할 수는 없을 터다.
흔들릴 때마다 향을 쏟는 꽃의 범람을 위해 제 비옥함을 전부 소모한 땅은 곧 음침한 벌판으로 여겨지며, 잇따른 눈총에 대비하여 고작 속이 멀건 대상 하나 마련하는 데도 허덕일 것이다.
비로 묻은 몸짓이었다. 떨림은 충동과도 같고. 움푹 파인 집단이 서서히 회로를 돌린다.

박예림, 앞으로가, 2025, 벽에 유화, 오일 파스텔, 유성 잉크, 철가루, 비파 분말, 262 x 337cm
이미지_양승규
박정우, 경계선, 2025, 석고보드, 퍼티, 형광 아크릴 물감, 가변크기
이미지_양승규

시선은 자욱한 못에서 나왔다. 안광은 깊은 동굴로 거처를 옮겼으며 안개와 구름은 안팎의 구분 없이 어디든 존재했다. 보편과 무지로 채운 일상은 형광 안료를 뒤집어쓰고 골목에서 골목으로 이어지는 기행을 칠했다. 바위틈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기묘한 울림을 주었다. 산세가 우그러진 정경은 이에 화답하듯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그에게 다가왔다. 불쾌한 연락으로 가득 찬 찻장은 은밀함을 감추고자 단단히 입을 걸어 잠갔다. 그 앞을 인상착의가 좀스러운 이가 여러 번 지나다녔다. 뒤편에 난 쪽문으로 간밤의 잠이나, 위태위태한 균형, 홀로 선 작대 같은 것들이 들어와 어질러진 바닥이며 얼룩투성이 창문이며, 빛바랜 손잡이 등을 점검했다. 순수한 인식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저 멀리서 둔탁한 소리가 들릴 때면 그는 둔덕에 오르는 광경을 머릿속에 그렸다. 뒤로 고꾸라진다고 해도 별 탈 없을 것 같은 높이가 서른 번 정도 쌓인 언덕을. 상상은 촘촘한 망에 걸린 볍씨처럼 얼마간 무방비하게 이어지다가 끊겼다. 오그라든 어깨에 만남이 성행한다.

이환희, 슈퍼셋, 2025, 벽과 바닥에 석고보드용 조인트 컴파운드, 유화, 268 x 728 x 25cm
이미지_양승규

어디로 떠날지 정하지 않았다. 우선 옷가지 및 세면도구 일습을 챙기고 밖으로 나왔을 뿐이었다. 아무도 없는 집, 그중에서도 방 안은 기념할 만한 것 하나 없는 채로 굳어 있을 터였다. 억측은 때론 가장 빠른 길을 안내했지만, 이번에는 예외라는 듯 모종의 신호를 보냈다. 앞으로 다가올 일의 수가 경어체를 사용했다.
낯선 곳으로 이동하는 데 어려움보다는 이물감이 들어 헛기침을 누차 반복하며 손끝의 앙상한 감각을 느꼈다. 해방을 가장한 도망 혹은 무엇도 아닌 이동으로 방향을 온전한 의식 속에 욱여넣고, 쓴웃음도 비탈지다, 이러다 곧 어딘가에 닿겠다, 무심코 뱉은 말을 바닥에 떨어뜨린 동전이라도 되는 듯 황급히 주워 담았다. 문밖으로 나와 스물 내지 스물다섯 디딘 걸음은 어제 쓰다 남은 것들. 주머니 속에 낸 창으로 항시 어두운 밤하늘만 보인다. 저마다의 함성을 기록하는 나날에 돋친 피뢰침은 한 번도 번쩍거린 적이 없었다. 아직 시작밖에 두른 것이 없는 여정에 마른하늘이 옮겨붙길 바란다. 스스럼없는 투로, 약간 상기되도 좋으니.

이환희, 슈퍼셋, 2025, 벽과 바닥에 석고보드용 조인트 컴파운드, 유화, 268 x 728 x 25cm
이미지_양승규
seunggue Yang
seunggue Yang

새로운 아침을 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