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Date: 2025.11.01 – 12.13
- Place: 휘슬
- Location: 서울 용산구 회나무로 13길 12 1층, 지하 1층
- Hours: 화 – 토 13:00 – 19:00
- Contact:https://instagram.com/whistle_seoul

여름은 여름을 증명한다. 이에 맞춰 사철은 비대해진다. 독립된 여름과 결부된 여름 사이에 거대한 망막이 곧 넘칠 듯 울렁거린다.
화려한 웃음은 눈가리개 수목을 더듬으며 그것의 활성화를 꿈꾸지만, 이에 가사 없는 노래가 끼어드는 통에 현실은 실로 웅장하게 되풀이된다. 떠돌이의 비음이 늘 그렇듯 사유와 아무 관계 없는 현상이 둘로 나눠 그들로, 이 과정을 연거푸 하여 무리로, 묵묵한 집단으로 한 점에 현현한다. 자조 섞인 눈길이 앞선 나타남을 휘저어도 명백함은 그대로.
‘어두울 때 다녀가. 못질은 여전히 서툴구나.
여느 속함 속에서 어느 달관한 미명을 보았다고. 그럴듯해, 나직한 울적임은 바닥을 기며 기진한 움직임만 양산하는 설움의 총체. 혹은 그 반대로.’

온화한 하늘은 평면의 부정을 이끄는지도.
제 처지가 우스운 건지, 아니면 몹시 화가 난 건지 쉬이 정할 수 없는 이의 목적은 가냘픈 삶과 그것이 취한 행위일 것이었다. 곧 있으면 부서질 선반이 나름 울상이며 올곧은 품격에 관한 글자 몇을 성가신 투로 주워 담고, 담벼락에 어깃장 놓아 금방이라도 초연한 사물이 되려 한다. 그 앞에서 목도함은 자신에게서 조금도 빗나가지 못한다.
사납거나, 가진 것을 다 내놓거나 해야 할 거야.
공중은 원래 텅 빈 것이고. 불안한 형세를 아랑곳하지 않는 고소한 냄새에 이끌려도, 이는 각도를 어떻게 하든 당김이 될 수 없는 엶이다.

그 화원은 처음부터 재인 양 오로지 그것의 빛이다.
날개 달린 나비들이 허구를 물고 사방에서 사방으로 이동한다. 굳이 덧붙인 단어가 뜻 모를 활개 치고, 뜨거운 열정은 먼저 속부터 삭일 것이다.
향연은 어떤 완결을 염두에 둔 듯 지루해도 버틴다. 마음속에 종일 뚜벅뚜벅 걷던 사람이 아직도 걷고 있는지 알 만한 이들은 마음이 없거나 단지 속뿐이다. 부재와 고립이 보이는 날에 보통이 아닌 평균이 몰려올까.
열고 들어갈 문. 달아나듯 뛰쳐나온 출구와 그 반대의 입구. 누구도 서성이지 않는 통로의 주변에 먼 곳을 잃은 시선이 사뭇 온당하지 못하게 존재하여 부랑자의 속을 들끓게 한다. 그의 눈에 비치는 건 한때 솎아 내던 자신이라고 터부는 말한다.

묘약 같은 가르침의 뒤를 젊음이 잇는다.
‘약속한 때보다 느지막이 도착한 게 어디서 소란이냐.’
귓전을 때리는 소리가 장날을 한 손에 쥐고 흔들 때 나는 고함과 동일하다. 계속 뒤로 물러나는 건 그럴 수 있다. 정면을 놓지 못해 결국 생활이 된 뒷걸음질이 나지막한 음성으로 동굴을 채운다.
‘몸서리칠수록 원형에 가까워지는 사각의 실상을 나는 알고 있다네.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닐세. 정확한 때를 기억할 수 없어 곤란한 점이 있지만, 바로 이것이 앞선 사각의 성질을 가까이에 두게 하였지. 눈 닿는 곳엔 머지않아 나의 발끝이 닿고, 그곳에서 정든 대상을 조금 떨어트려 놓으려고도 하고, 갑작스레 몸을 떨기도 하는 모든 것.’
나의 시늉은 선언과 같았다. 이 말의 경도(硬度)는 얼추 바닥이다.

아득한 의식을 쥘 수만 있다면 하고 그는 생각했다. 명성으로 가득한 이곳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아 바닥에 사선으로 누웠다. 무의미를 떠올리자, 시간은 경험한 적 없는 형태로 변했으며 어째서인지 이 변화가 끝이 아닐 거라는 인상을 풍겼다. 그는 여전히 시간을 토해내지 못한다.
느끼는 바는 많아도 전과 다름없는 생활이 지독한 장마처럼 이어졌다. 지금 내리는 게 비가 아니라면 무엇이냐. 공허한 바탕이 그의 내부에서 소용돌이친다.

빈털터리에게 주중과 주말은 사물의 시작과 끝이었다. 그가 읊조린 말은 곧 그를 떠나 한때 새것이었지만, 이젠 더 이상 그러지 않은 사물로 이동하며 눈 녹듯 한 발화를 떠올린다. 그는 꼭대기에 오른다. 도중에 잠시 멈추기도 하지만, 내디딘 걸음에 가짓수란 없다.
시작을 경험한 이들의 낮엔 밤과 교류한 흔적이 발견된다. 그들의 생활상은 적당히 정교하고 여유 부리듯 투박하다. 간혹 바닥에, 길가에, 어느 화단에 대뜸 누워있는 사람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의미 부여에 지친 까닭이다. 그렇다고 무의미에 근접하고자 하는 시도는 아니며 오로지 얼마간 그대로 있고자 하는 일종의 고백이라고 할 수 있다. 저 멀리서 공기가 지는 소리가 들린다.

인생을 좌우할 선택이 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와 같은 선택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이룬다고, 혹은 이끌었다고 생각하자 그는 뺨 한쪽이 욱신거리는 것을 외면할 수 없었다. 상투적인 기로에서 그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선택은 선택으로서 제 자리를 보전할 뿐이다.
지금까지 줄곧 상상한 일이 느닷없이 벌어진다면 그는 보기 드물게 공간을 차지함과 동시에 홀연히 수중을 떠날 터다. 건설 장비를 이유 없이 휘두르며 곧 주저앉을 바닥 찾는 낭인의 넝마. 물건의 값을 치를 뿐인 주머니. 낮은 지붕 밑으로 기어코 기어들어 간 후 웅크리는 것이 무엇인지 천천히 몸에 익히는 사변적 존재. 유독 두드러지는 목주름이 앞선 나열을 삼킨다. 적막한 주변이 적도를 향해 치우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