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 《무형의 경계》

무형의 경계_파이프갤러리
이미지_양승규
  • Date: 2025. 02. 04 – 02. 28
  • Place: 파이프갤러리
  • Location: 서울 용산구 대사관로 21 2층, 3층
  • Hours: 화 – 토, 10:00 – 18:00
  • Contact: @pipe_gallery

임재형, 영원과 하루, 2024, Oil on canvas, 112.1 x 62.2cm
이미지_양승규

연못을 읽었다.
운수는 찬 겨울에 부딪혀 두세 부분으로 갈라졌다. 곧은 심지가 여간 말썽이 아닐 때마다 나는 무량함에 기운을 빼앗기고, 이에 상실감보다는 무력감을 느낀다. 바라지 않던 무감각하며 집채만 한 소동하며 잠은 이루는 중에도 그저 멀다. 도약이란 말로 꾸민 선두가 송두리째 사라지는 상상은 어디에 제 뿌리를 두고 있을까. 그것을 수완 좋은 사람에게 맡긴다면 번영을 거듭해 머릿속 변두리조차 번화가가 되고. 예의 상상은 질리도록 눈에 띄는 대상으로, 쉬이 발에 차이는 돌부리로 변모해 뜻밖의 태고를 짓누르게 될 것이다.
굴뚝을 평한 여느 기둥의 사연은 까칠까칠한 풀밭이다. 그곳을 군락으로 삼은 생명체의 판단은 야위고 파리하다. 발걸음의 재촉으로 앞당길 사안이 덩그러니 시로서 존재한다면 안색의 총칭은 두툼한 말허리의 외형쯤 되리라. 지표에 일렁이는 수면은 어느 대양의 겉껍질인지 알 수 없다. 그곳에 난파되었던 도선의 잔해가 물비린내와 함께 뭍으로 기어와 거의 허물어진 방편을 가리키는데 사방이 낡은 가옥이었다.

기막힌 노릇이기도 해. 몸 성한 데가 없는 게 이리도 큰 곤란이며 횟수로 세 자리를 뛰어넘은 회상에 상기된 수를 가져다 대고, 이에 맞춰 불붙은 볼. 표정에 형태가 없어 이를 그저 관념으로만, 제법 숱하기도 한 개념으로만 파악한 채 주둥이가 기묘한 병에 천장을 달았다. 둥근 것이 어찌어찌 돌아갔다. 손아귀에 씻지 못할 자국이 남기도 했다. 그것 앞에서 공중의 위생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로 서식지를 옮겼으며, 정착과 동시에 주관성은 단독으로 빛났다.

임재형, 영원과 하루_일부
이미지_양승규
임재형, 연못, 2023, Acrylic and oil on canvas, 91 x 91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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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불을 켜고 오전에 잠긴 주변을 보면서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갈증을 느낀다. 이는 실제적인 느낌이지만, 생명에 지장은 없어 한편으론 절망이다. 하소연이 빗발 한 아무개의 밤도 곧 아닌 밤중에 들 터다. 그때가 되면 넓이에 치중한 사유를 지천으로 던질 수 있을까. 입안은 건초의 땅이다. 그곳은 풍경조차 메마르다. 뻣뻣한 깃발이 지름길 노릇 하려 드는 통에 몇몇 구실은 학을 떼며 자취를 감추었다. 언젠가 때가 되면 이를 다각으로 구술하리라.
불기를 띤 날붙이에 데어 부리나케 사라진 요행을 떠올리면서도 어딘가 불명확한 감정에 사로잡히는 것.
해를 금한 날에 인공의 빛으로 이룬 백주가 유독 손 언저리를 감싼다. 자신에 붙은 성취를 모두 떼어내 그곳으로 보내려는 듯한 의도가 다분하게 보이는 행위였다. 그것이 일탈로 간주할 일은 당분간 없으며, 소식 없던 이는 도리어 소식뿐인 자로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도는 식으로 변모한다. 주위의 균일한 밝음이 쉽사리 발에 얹혔다.

산 높이의 장대가 응달에 덩그러니 존재하는 것과 코앞에 닥친 불행을 곁눈으로 보는 일 사이에 들어찰 볕뉘가 있는지 고민이었다. 싱거운 순간은 떼로 엮어도 싱겁다. 금방이라도 넘칠 것 같은 물잔에 인 소용돌이가 수도 없이 흘러 한 뙈기 미급으로 향한다. 부족과 만족의 경계는 흐릿한 양상으로 느릿하게 이동한다.
때 묻은 훗날에 안과 밖을 보냄으로써 터무니없는 안팎을 일부 덜어내련다. 두서없기로 유명한 뒤뜰의 유난도 정숙을 눈앞에 두었다.

임재형, 연못, 2024, Acrylic and oil on canvas, 130 x 194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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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밑과 처마 위는 공교로운 공간이다. 그곳으로 던지는 눈길은 말을 아껴 만든 침묵 같은 것. 날 좋을 때 바닥의 제한이라니, 맞지 않은 처사일 뿐만 아니라 돌연 그 처리가 애매하게 굼떠 한여름에도 춥다. 늑장 부린 대기는 갈수록 무거워진다. 나 없는 동안에 너로 빗댄 부지가 어느 공사를 관망하며 때론 한없게 이를 바라보는가. 고정된 의미에 물려 당분간 이동이라곤 없는 삶이 하루마다 요구한 대가는 속이 비었다. 그것의 곰살맞은 외형만 오도카니 존재한다.
말수는 적지만 말투의 종류는 많은 사람이 멧비둘기 울음을 두고, 그 주위를 돌며 이리저리 생각한다. ‘사물의 원형은 어쩌면 타원의 형태인지도 모른다.’ 그와 논한 흔적은 흠잡을 때 없는 이동이었다. 우린 속에 숨겨도 고스란히 겉으로 드러나는 자국에 팔을 여러 번 둘렀다.
비로소 낡은 파동을 새것으로 바꿀 시기가 되었는지, 차츰 고요가 들끓는데 나는 여전히 앞뒤 자른 소문과 서먹하다.

언 못에 도랑 정도 크기의 도량이 떨어졌다. 앞선 충돌로 훼손된 건 좁은 자아였다. 아무리 형편이 좋지 못해도 그보다 넓은 거처를 마련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 사내는 상당히 굴절됐지만, 편협할 순 없었는데 이는 예의 충돌로 손상된 자의식 때문이라고 못가에 떨어진 허송을 주우며 되풀이했다. 되돌릴 수 있는 낯섦 중에 기록적인 건 어제였다. 이에 갱신은 없기를 바라며 녹슨 가지 얕은 뭍에 두었다. 평소보다 이른 시간, 예상대로 모든 현상은 얄궂다.

임재형, Dual, 2022, Acrylic on canvas, 60.5 x 50 cm
이미지_양승규
임재형, 창, 2023, Acrylic on canvas, 100 x 91cm
이미지_양승규
seunggue Yang
seunggue Yang

새로운 아침을 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