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Date: 2025.08.13 – 10.09
- Place: 아라리오갤러리
- Location: 서울 종로구 율곡로 58
- Hours: 화 – 토, 11:00 – 18:00
- Contact:https://instagram.com/arariogallery_official

짊어진 불안과 상관없이 잠 못 드는 밤은 없었다. 기상 시간을 정해두면 본격적으로 수면에 돌입하는 때는 대개 비슷했다. 그럴 수밖에 없어 그는 때론 상황을 낙관하기도 하였다.
‘나도 모르게 현 상황을 과장하고 부풀리는지도 몰라. 이 과정의 연속은 또 다른 생태의 연쇄를 일게 하는… 뭐, 그런 이도 저도 아닌 비약이라든가 아니면 때 없는 방편과 같은.’
단순하게 희망적이었다.
예의 불안은 정도를 넘어선 건지 알 수 없지만, 두려움을 빙자하게 되었다.
의지할 대상을 찾는 건, 그것이 활자가 되어 이를 지독하게 탐독하는 건 관념이나 나나 마찬가지야, 라고 그가 말했다.
탐탁지 않은 심사는 거꾸로 선 채 그의 면면을 고꾸라뜨린다.

곱고 깊은 무게를 보았다. 제 명줄을 괴고 어렵사리 지내는 척하는 이의 웃음은 반듯하게 누워 있다.
다부진 마음과 몰아쉬는 숨이 뼈아픈 안색이 되리라는 것을 그저 희게 받아들이는 중이다. 손아귀는 신체 중에서 가장 많은 먹을 토하는 기관이었다.
마침, 맑게 갠 오후가 그간의 아침을 증명하듯, 어떤 변용을 감당하듯 굴었다.
부재는 부적절하거나 불명확한 부분의 총체로서 먼발치를 가로지른다. 그렇게 되찾은 희구가 모든 말을 덧쓰고 날밤을 죄었다.
번질나게 드나든 소매는 낡고 불온한 인상을 주었다.

머릿속이 젖도록 가만히 놔두는 사이 꼭 그만큼 나이를 먹었다. 누군가는 방치를 방지하기 위해 나름의 수를 썼지만, 그의 손은 항상 부재의 방편이 되었다.
기록적으로 슬픈가. 기본이 범람한다. 뻔한 결과가 불을 볼 때 이제 막 맞닿은 겉치장과 외벽은 갈수록 험한 길이 되리라.
막연함에 부표가 없어 휑한 느낌은 가중되고. 연이은 황망함에 초점을 태운 이의 꿈자리가 사납다. 까닭 없이 서럽다. 혹은 그 반대가 무리하게 춤춘다.
비로소 올려다본 지붕이 쓰임새로 가득한 무언가라면 이를 말없이 부정할 수 있을까, 하고 물러섬의 또 다른 형태를 취해도 보고. 고독하게 안면을 깎고.

남들이 높다고 평한 높이에 올라 대책 없는 바람을 쥐고 홀연함을 뉘우친다. 그것이 크나큰 잘못이라도 된 양 굴어대는 나는 반성의 기미로 온갖 것을 빌리곤 한다. 고뇌하는 자에게 저 산을, 끝을 목도한 이에게 그림자를. 앞선 것들을 무작정 꾸는 것은 아니고 나름의 생각이 있어 이를 실행에 옮기는 것인데, 그럴 때마다 뚜껑 없는 주전자와 창문 없는 방이 나를 에워싸는 듯한 기분에 빠진다. 좀스러운 일이다.
맥없는 잔치. 이 말에 깃든 벌판을 내달리며 그저 앞만 보는 처지의 단추를 아래에서 위로 잠갔다. 도중에 여러 번 보수를 바라는 일이 아님을 드러내야 했다. 결심과 나란한 자긍심을 내보이며.
불과 하루도 지나지 않은 일을 아득하게 느끼는 건 마음의 대수롭지 않은 번영이겠지. 그것은 발작과 발악 사이에서 쉼 없이 쇠락해 가, 영문 모를 일은 당연하다시피 발길을 재촉하고.

대로변에 얹힌 사람들. 비교적 나쁘지 않은 솜씨와 고양된 골목. 그는 순서대로 슬퍼하자면 처음과 끝은 아니고, 중간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번호쯤 되리라. 제 순번이 오기 전에 아무렇지 않게 되어서 할당된 소비를 주머니 속에 구겨 넣고, 건너편 상자 – 사뭇 거대하기까지 한 상자 – 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두 글자로 줄여 바닥 면을 넉넉히 칠한다. 이 행위가 한 평 남짓 주위에 시사한 바는 상징의 성장은 유백색으로 비친다는 것이다.
미흡한 이들은 좌우로 고개를 돌렸다. 드디어 변변치 않은 구덩이에서 벗어난 사람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겉보기가 같다 보니 결국 알맹이까지 동일한 경우의 반대는 기준 밑에서 단속적으로 소리를 감추고, 포장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