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 《형상 회로: 동아미술제와 그 시대》

《형상 회로: 동아미술제와 그 시대》, 일민미술관, 2025.08.22 – 10.26, 이미지_양승규

이제, 청계천 모뉴먼트, Acrylic on canvas, 193.7 x 336cm 이미지_양승규

말투를 적시며 뛰는 사이 울먹이는 무언가를 봤다지. 눈은 쉽사리 감고 뜨면서도 고개는 쉬이 돌리지 않는 것은 무의식과 의식의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겠다. 전부터 그렇다.
요즘은 무심코 누구를 따라가기 일쑤야. 그와 말 한 번 나눈 적도 없지만 말이야. 당분간 시간이라는 건 앞자리를 파헤쳐 나이를 쌓는 굴착기 정도로 여기고, 역시 정적보다는 소음이 낫다고 거짓 없이 왼편에 적으며 사뭇 흔들기도 했던 정직.
찌푸린 인상도 서슬 퍼런 시기를 견디는 것이 지루했던지 사방에 의표를 찌르네.
경계가 뭉툭한 바깥을 경계하며 실내를 외친 한기가 물씬 감도는 저녁 내지 새벽은 이제 없다고 하더군.

곽정명, 풍경, Pigment on paper, 93 x 170cm, 1986 이미지_양승규

그의 풍경은 쏟다가 만 물잔이었다고 사방을 쏘다니던 이들에게 회부되었다. 자세는 그대로인 채 여러 번 자리를 고쳤다. 사물을 정확하게 파악하지만, 이를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상황은 마땅한 사람을 찾아 기대를 엎기도, 확신을 아무 데로 확산시키기도 하였다. 어깨에 몰린 힘이 흔적 없이 사라진다.
휑한 구석이 있는 광장에서 애써 찾았지만, 아직도 빈틈을 발견하지 못하고. (의도는 알 수 없지만)이를 증명하는 사람들이 날개 접은 새처럼 걸었다. 오로지 가능성에 초점을 둔 걸음이 주변에 뿌려진다 한들 흔적은 재빨리 달아나 개념적인 도망만 공적으로 공중에 부유한다.
여러 마디로 평할 세계가 단지 시적으로 느껴지는가. 기시감은 또 웬 말인가.

공성훈, 개, Oil on canvas, 112.1 x 145.2cm, 1998 이미지_양승규

타고난 성향에 걸려 넘어진 이후로 그는 뒤로 걷는 것을 포기했다. 결심에 앞서 많은 창작이 쓰러졌고, 대다수 배경이 기울었다. 단념에 이르기까지 이틀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비로소 다음이란 것이 그에게 없어졌을 때 그가 수선한 마음가짐은 곧 뒤로 걷는 것은 눈을 감고 걷는 것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었다.

기약 없는 날이 언제까지나 이어질 거라고 생각하는 게 억양을 되짚는 일이라면 난 그저 인기쟁이의 숲으로 갈 테다. 일상이 기댄 환상이라는 봉투 속에는 무엇이 있어야만 할까, 하고 세상 부적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종료된 상황에, 지나간 관계에만 알맞지 않은 것이다.
찬성을 향한 인사가 필요하다고 느낄 때 한 번도 이를 경험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저 혼란이라며 설움이니, 나를 겨냥한 살림이니 하는 것을 곱씹었다. 열띤 토론에서 벗어남으로써 탄생한 생각의 끈은 쉽게 꼬이지 않을 것이다. 오래된 책 한 권에 묻어둔 망설임은 단지 그렇게 안타까운 것만은 아닐 터인데, 그럼에도 순전히 이를 가엾게 여기는 것은 개인적인 흥미가 아니라면 무엇일까.

집을 나서기 전 밖을 내다보고 오늘은 그늘 보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개는 젓지 않았다.
애석하지는 않지만, 심기가 불편한 일을 열심히 수거했던 어제가 자아낸 감흥이 뒤늦게 나를 덮친다. 하품 한 번에 품을 수 있는 이들의 꿈을 재빠르게 두드리기도 하는 나다.
‘이제 곧 누구를 만나려고 하는데, 이렇게 뒤숭숭한 기분이 드는 건 처음이다. 이런 느낌은 예정된 만남에서 비롯된 것일까, 아니면 대수롭지 않은 우연일 뿐인가.’
주머니에 찔러 넣은 손. 순식간에 얼어붙은 가로등 불빛에 그을린 테두리가 나의 문턱이었던 적에 주변에서 접하곤 했던 말수는 어딘가 도드라진 면이 있었지.

박광수, 집 유령 거미, Acrylic and oil on canvas, 2025 이미지_양승규

가다 만 길에 가담하였다. 깊숙한 관계가 이렇게 시작되었고, 끝맺을 때는 분별 있게 하늘을 털었다.
온몸이 지른 비명에 섞인 안도의 수가 규칙적으로 불어난다. 양껏 이룬 잠이 이틀 연속으로 긴 여정을 예고한다. 기록의 행진에 막다른 성격을 보인 무언가.
억지로라도 힘을 토하며 숨이 겹게 비틀거리던 나는 이제 반도 남아 있지 않은 하루를 똑똑히 목격한다.
눈에 어린 조각 몇이 이젠 존재하지 않은 원형을 제때 감싸는데, 몹시 하염없어하는 저편은 왠지 불안한 인상을 주는 듯하다.
비에 젖은 생활상은 잊힌 대상으로서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는지 밤낮은 고려 없이 소모되었다. 이에 끼어들 소질이란 게 있을 리 없음을 모두 입을 모아 외치고, 상실의 기미를 뉘우치고.

김세은, 연말도로, 겨울, Water mixable oil, cement pigment and acrylic spray paint on canvas, 280 x 170 x 3cm / 연말도로, Water mixable oil, cement pigment on canvas, 280 x 170 x 3cm / 연말도로, 연말도로, Water mixable oil, cement pigment on canvas, 310 x 160 x 3cm, 2023

잠은 자지 않고 그저 뒤척이는 것이었다.
잠 따위 포기하고 다른 것을 하는 선택지는 개념으로서 존재했다.
누워 있는 자리가 마르도록 끌어낸 빛은 벽과 같은 볕이면서도 출구를 상정한 작업의 일환이었다지.
본 적 있는 외로움. 자주 가던 평원. 높은 곳으로 뻗은 사다리.
외딴 정원에 까닭 모를 비질만 종일 수선댄다.

seunggue Yang
seunggue Yang

새로운 아침을 여는 것이다.